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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여행은 끝났다 - 12,000km 자전거로 그린 미국 여행기
박현용 글.사진 / 스토리닷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269
뉴욕에서 할리우드까지 자전거로 배움마실
― 서른 여행은 끝났다
박현용 글·사진
스토리닷 펴냄, 2016.6.24. 13800원
2011년 10월 4일부터 2012년 3월 6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할리우드까지 1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자전거로 달렸다고 하는 박현용 님은 ‘자전거 여행기’인 《서른 여행은 끝났다》(스토리닷,2016)를 씁니다.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찍는 꿈을 품고서 미국에서 자전거 여행을 했다고 합니다. 시나리오를 편지로 얼마든지 부칠 수 있지만, 뉴욕부터 할리우드까지 자전거를 달려서 손수 건넬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또 이처럼 여러 달에 걸쳐 자전거로 달려서 건네면 더욱 멋지겠다는 생각했다고 해요.
자전거라는 것이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쑤시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흔히 다리만 아프겠지 생각했는데, 엉덩이, 어깨, 목, 발바닥, 팔꿈치, 손바닥, 손가락 등 신경이 연결된 모든 곳이 아프다. (29쪽)
다음날 비가 그치고 다시 멤피스로 향하는 길에 마주 오는 차량에서 한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욕을 했다. 이렇게 욕을 먹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무슨 이유로 나와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원수라도 되는 듯이 욕을 던지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가 없고, 화도 났지만, 이방인의 뫼르소도 이유가 있으니 이들도 무엇인가 이유가 있겠다 생각을 했다. (68쪽)
《서른 여행은 끝났다》를 쓴 박현용 님은 자전거로 먼 길을 달린 적에 이때까지는 없었구나 싶습니다. 서른 즈음에 이르러 비로소 자전거로 먼 길을 달려 보았지 싶고, 이때에 처음으로 ‘자전거를 오래 타면 온몸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다’는 대목을 깨달았지 싶어요.
자전거 여행을 하지 않았으면 이 대목을 앞으로도 모르고 살았겠지요. 서른을 앞두고 기나긴 자전거 여행을 해 보았기에 ‘하루 내내 자전거를 달리는 일’이나 ‘여러 달에 걸쳐 자전거를 달리는 일’이 몸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가를 새삼스레 배웠지 싶어요.
삶은 온통 배움거리라고 느낍니다. 자전거 달리기도 배움거리일 테고, 자전거가 아닌 달리기로 뉴욕부터 할리우드까지 가려 했어도 배움거리가 되리라 느껴요. 자전거도 달리기도 아닌 걷기로 뉴욕부터 할리우드까지 가려 했다면 이때에도 새로운 배움거리가 될 테고요.
비행기로 날아가면 비행기로 날아가는 대로 배우고, 자동차로 달리면 자동차로 달리는 대로 배워요.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를 타는 대로 배우고, 두 다리로 달리거나 걸으면 두 다리로 가는 대로 배워요.
겨울도 오고 있구나. 앙상한 나뭇가지에 겨울바람이 매달려 있다. 목깃은 순간 싸늘해지고, 두 손으로 지퍼를 최대한 위로 올린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리도 쌀쌀했을까……, 그랬다면 미안하게 됐네.’ (77쪽)
상당히 피곤한 스타일의 경찰이다 생각하며 불만의 한숨을 내쉬며 (천막에서)밖으로 나갔다. 새벽 3시경, 경찰은 뜨끈뜨끈한 코코아와 검은색 빵모자를 나에게 내밀었다. (84∼85쪽)
열 살로 접어들면서 삶을 새삼스레 바라보며 배웁니다. 스무 살로 넘어서면서 삶을 새삼스레 마주하며 배웁니다. 서른 살로 들어서면서 삶을 새삼스레 헤아리며 배우지요. 글쓴이는 앞으로 마흔 살이나 쉰 살이나 예순 살로 다가서며 다시금 새롭게 여러 가지를 돌아보며 배우리라 봅니다.
겨울 문턱에 이르기에 몹시 추운 날씨에 천막을 치며 자는데 새벽 세 시에 경찰이 박현용 님을 깨웠다고 해요. 새벽 세 시라면 추위가 고빗사위에 이를 무렵일 텐데, 하루 내내 자전거를 달리느라 고단했을 테니 일어나기 귀찮겠지요. 구시렁거리면서 일어나니 경찰은 뜻밖에도 ‘추위에 얼지 말라’면서 뜨끈뜨끈한 코코아를 건네고, 자전거를 달리며 얼굴이 얼지 않도록 빵모자까지 내밀었다지요.
휴가를 나온 군인답게 작별인사는 거수경례를 한 군인들은 빅밴드 국립공원으로 향하고 있는 나에게 그곳이 차가 없이는 얼마나 가혹한 곳인지 경고도 해 주었다. (152쪽)
비행기로 쌩 하니 날아간다면 뉴욕하고 할리우드 사이에 사는 사람을 만날 일이 없습니다. 자동차로 빠르게 달릴 적에도 ‘말을 탄 경찰이 건네는 코코아’를 마실 일이란 거의 없지 싶습니다. “차가 없이는 가혹한” 길을 한겨울에 자전거로 달리기에 여러모로 고단하거나 고되거나 고달픈 일이 잇따른다고 할 텐데, 이처럼 고단하거나 고되거나 고달프기에 뜻밖에 만나는 새로운 이웃이 있고, 기쁘게 만나는 새로운 동무가 있어요. 서로 한마음이 되어 걱정해 주고, 서로 한뜻이 되어 어깨동무를 해 줍니다.
2012년 3월로 접어든 무렵이었다. 목표지점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나는 스스로의 위대함에 잔뜩 빠져 있었고, 그것이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원동력이었다. 언제부터 그것이 원동력으로 나를 할리우드까지 오게 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뉴욕을 출발하는 그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188쪽)
자전거 여행을 마친 박현용 님은 ‘시나리오를 손수 건네어 멋지게 영화판에 들어서기’를 이루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 아직 이 꿈을 못 이룬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꿈을 꼭 서른에 이루거나 스물에 이루어야 하지 않아요. 마흔이나 쉰에 이룰 수 있고, 예순이나 일흔에 이룰 수 있어요. 어쩌면 여든이나 아흔이 되어도 못 이룰 수 있습니다.
꿈은 마지막까지 걸음을 내딛기에 아름다울 수 있어요. 그리고 꿈은 마지막까지 걸음을 내딛지 못하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던 나날이 있기에 아름다울 수 있어요.
사람들이 굳이 자전거를 달려서 ‘자동차보다 천천히’ 어떤 곳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까닭은 ‘더 빨리 가야 할 까닭이 없다’는 대목을 온몸으로 새롭게 배우려는 뜻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내 삶을 더 깊이 사랑하며 더욱 차분히 나아가려’는 마음으로 ‘자전거조차 아닌 두 다리로 걸어’서 더욱 천천히 마실길을 가기도 해요.
두 다리로 걸어서 지구를 도는 사람이 있어요. 서울부터 부산까지 굳이 두 다리로 걸어서 가는 사람이 있어요. 오늘날에는 ‘걷는마실’ 이른바 ‘트레킹’이나 ‘도보여행’이 새삼스레 퍼집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으레 걷는마실이었어요. 천천히 거닐며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쬡니다. 천천히 거닐며 어여쁜 마을에서 며칠쯤 느긋하게 머물기도 합니다. 천천히 거닐며 나무 그늘에서 다리를 쉬지요. 천천히 거닐다가 골짝물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시냇물에 발을 담그기도 해요.
이제는 실망스럽지 않다. 그 모든 것이 뭔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연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이 뭔지 아직 모를 뿐이다. 그저 삶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볼 뿐이다. (204쪽)
《서른 여행은 끝났다》를 덮으면서 내가 예전에 해 보았던 자전거마실을 떠올립니다. 나한테 곁님이나 아이들이 아직 없던 2006년에 한 해 내내 사흘마다 15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자전거로 달린 적이 있어요. 충북 충주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달린 뒤, 사흘쯤 쉬고 다시 서울에서 충북 충주로 자전거로 돌아왔고, 이러기를 한 해 내내 되풀이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자전거로 보냈어요.
처음에는 팔다리에 온몸이 쑤시다는 생각이었지만 달이 가고 철이 흐르면서 ‘내 몸’ 말고 ‘길’을 볼 수 있었어요. ‘하늘’을 볼 수 있었으며 ‘바람’하고 ‘나무’를 볼 수 있었어요. 더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가 아니라 더 즐겁게 달리는 자전거가 되도록 조금씩 거듭났어요. 그때까지 잊거나 놓치던 숨결을 가만히 헤아렸어요.
이제는 시골집에서 곁님하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숨결을 마음에 담아요. 삶은 늘 배움거리이고, 살림은 언제나 배움잔치라고 느껴요. 배울 수 있는 눈과 마음과 귀와 손이 되기에 늘 젊은 삶이 되는구나 싶어요. 어떤 일을 겪든 어떤 사람을 마주하든 언제나 배우자는 몸짓이 된다면 참으로 젊은 넋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서른 여행은 끝났다》를 마친 박현용 님은 자전거마실은 끝냈을 테고, 이제 새로운 배움마실로 나아가리라 봅니다. 천천히 나아가면 즐겁게 모든 꿈을 이루리라 생각합니다. 2016.9.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