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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수의 정원 3
사노 미오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47
꽃 한 송이가 나한테 건네는 말
― 귀수의 정원 3
사노 미오코 글·그림
정효진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3.7.30. 8500원
사노 미오코 님 만화책 《귀수의 정원》(서울문화사,2013) 셋째 권을 천천히 읽습니다. 2013년에 셋째 권이 나온 뒤 2016년이 지나도록 아직 넷째 권이 나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귀수’와 ‘정원’을 말하는 만화책인데, 이 만화책은 줄거리나 이야기를 빠르게 읽을 만하지 않기도 하지만, 천천히 되새겨 볼 만하기도 하다고 느낍니다.
만화책에서 다루는 ‘귀수’는 그저 ‘귀수’가 아니라 ‘사람들이 여느 때에 여느 눈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다른 숨결’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다른 차원에 있는 존재’라 할 수 있어요. 어느 모로 보면 사람들이 사는 여느 터전은 ‘가장 낮은 차원’일 수 있어요. 먹고 마시고 노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미움과 다툼과 시샘과 짜증이 얼크러지면서 권력과 전쟁과 명예 같은 것이 드날리는 사회는 그리 아름답지 못해요. 이와 달리 아무런 미움도 다툼도 시샘도 짜증도 없이, 다시 말해서 권력도 전쟁도 명예도 없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흐르기만 하는 데에서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자랄 수 있습니다.
“어머니?” “왜 그러니? 죽은 어미는 더욱 가까이하기 어려운 것이냐?” “아, 아뇨. 왠지 인상이 무척.” “사람에게는 여러 얼굴이 있단다. 이 어미는 알고 있었다. 네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를 보는 성질, 견귀라는 것을.” (25∼26쪽)
“나오는 항상 네 그림을 족자로 만들어 버렸지만, 난 늘 옷으로 만들어 입고 싶다는 공상을 하곤 했단다.” “옷이라고요?” “몸에 걸치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네 그림은 멋지니까. 앞으로도 그림에 힘써야 한다, 카후.” (30쪽)
만화책 《귀수의 정원》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사람 아닌 다른 숨결이 사는 곳’을 만난 뒤, ‘사람’과 ‘사람 아닌 숨결’이 서로 마음으로 이어지면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언뜻 보면 흔한 사랑만화일 수 있고, 가만히 되새기면 ‘사람이 이루는 사회’를 새롭게 돌아보도록 북돋우는 철학만화라든지 ‘삶을 건드리는 만화’가 될 수 있어요.
“그런 모습으로 돌아다니지 마.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쩌려고 그래.” “저런 감수성 없는 자들에게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신위를 모신 선반에 먼지 쌓이는 것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 (43쪽)
“별일이군. 꽃을 꺾어 들어오다니.” “백일홍이 ‘한 가지 꺾어 가셔요’라고 했어.” “이럴 수가. 후손 님은 인간계에 있을 때도 꽃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건가.” “꽃뿐만이 아냐. 최근에는 벌레랑 나비 종류까지 내게 말을 걸어.” “호오.” “하루에 그 생명이 다하고 마는 하루살이는 ‘설령 만나지 못하더라도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위로해 주지.” (46∼47쪽)
만화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생각에 잠깁니다. 만화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고요. ‘귀신을 보는 눈’이나 ‘도깨비를 보는 눈’이나 ‘다른 신비스러운 숨결을 보는 눈’이나 ‘외계인을 보는 눈’이나 ‘유에프오를 보는 눈’이나 ‘숨은 넋을 보는 눈’이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꿈이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보고, 여느 삶자리에서 꿈을 어느 만큼 마음에 품는가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이 만화책에도 나오기는 한데, 꽤 많은 사람들은 오늘 스스로 디딘 삶터에서 ‘꿈꾸기’보다는 ‘사회에 젖은 채’ 살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새롭게 꿈을 꾸기보다는 더 나은 일자리를 찾는 데에 마음을 쏟기 마련이기도 해요.
돈을 더 벌 수 있고, 신분이나 계급이 높아지기를 바랄 수 있어요. 이러한 바람은 나쁠 일이 없어요. 좋은 경험이요 재미난 경험이 되어요. 다만 경험만으로는 꿈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바라는 일’을 넘어서 ‘이루자고 다짐을 하면서 나아가는 길에 뿌리는 씨앗’이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어떤 일을 해내는 데에서 그치는 삶이 아니라, 한 가지 꿈을 즐겁게 품으면서 날마다 여느 자리에서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살림이 될 때에 삶다운 삶이지 싶습니다. 이것을 해내거나 저것을 해내려는 몸짓이 아니라, 내 몸에 깃든 마음을 사랑할 수 있는 숨결이 되어야지 싶어요.
“이 세상에 쓸모없는 감정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피어나는 대로. 바라보면 지고, 바라보면 지고, 당신은 바람처럼 살면 그만입니다.” (60∼61쪽)
“솜씨는 아직 미숙하지만, 자네에겐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진실된 마음이 있어. 그렇다고 거기 앉아 있는 분도 고개를 끄덕이는군.” “네?” “난 견귀가 아니라서 말야. 모습은 뵐 수 없지만, 기척은 느낄 수 있다네.” (99쪽)
예순 살을 살거나 예순한 살을 살거나 대수롭지 않고, 쉰아홉 살을 살거나 예순 살을 살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온마음에 가득한 사랑을 느끼면서 따사롭고 넉넉할 때에 즐거운 삶이라고 떠올리겠지요. 백 해나 천 해를 살더라도 마음 한켠에 아무런 사랑을 싣지 못한다면 따사로움이나 넉넉함하고는 너무 동떨어지고 말아 즐거움이란 그만 싹 잊고 말 테고요.
그러니 참다운 즐거움을 누리려는 착한 마음이라면 귀신이나 도깨비를 볼 수 있을 테고, 귀신이나 도깨비를 보면서 놀라지 않으리라 느껴요. 참다운 즐거움을 누리려는 착한 마음이라면 귀신이나 도깨비하고 말을 섞을 뿐 아니라, 풀하고 꽃하고 나무하고도 말을 섞겠지요. 구름이나 바람하고도 말을 섞을 테고요.
‘두 번 다시 인간계에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시게츠에게 작별의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한 채, 귀수의 정원에 오고 말았군.’ (146쪽)
“뜻대로 이루기 힘든 인간계는 수련도장이나 다름없어, 국화 공주. 인간은 마음의 천창이 닫혀 있는 까닭에 지상이 전부라고 생각해.” “이런. 천창이? 이럴 수가. 그럼 별과 별자리의 진짜 모습도 인간에겐 안 보이나 보군.” “특이하게도 카후는 천창이 반 정도 열린 남자였지.” (155쪽)
꽃 한 송이가 나한테 건네는 말을 듣습니다. 바람 한 줄기가 나한테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햇살 한 줌이 나한테 베푸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흙 한 줌이 나한테 속삭이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연필 한 자루에 묻어난 숲노래를 되새기고, 아이들이 내 손을 잡으면서 빙긋 짓는 웃음에 서리는 따사로운 넋을 헤아립니다.
하늘나라는 여기이고 땅나라도 여기라고 생각해요. 꿈나라는 여기이고 사랑나라도 여기라고 생각해요. 웃음나라는 여기이고 춤나라도 여기라고 생각해요.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스스로 짓고, 내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기에 내가 스스로 짓지 못하는 살림이 된다고 느낍니다. 2016.9.1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