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종료 일기
오리하라 사치코 지음, 도노랑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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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44



지난 열 해는 참말 있었을까?

― 동거종료 일기

 오리하라 사치코 글·그림

 도노랑 옮김

 AK 코믹스 펴냄, 2016.8.25. 9000원



함께 산 지 10년째 되는 애인에게 차였습니다. (10쪽)



  만화책 《동거종료 일기》(AK 코믹스,2016)는 첫머리를 “애인에게 차였습니다”로 엽니다. 그런데 애인도 “10년째 되는 애인”한테 차였다고 엽니다. 이 만화를 그린 분은 처음에는 ‘성우’가 되려고 시골을 박차고 나와서 서울(도쿄)로 갔고, 알바를 하면서 성우 꿈을 키우다가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귀어 한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한집에서 산 지 일곱 해째가 될 무렵 누리사랑방에 ‘동거일기’를 만화로 그려 보았고, 이 ‘동거일기’ 만화가 제법 사랑을 받아서 꾸준히 만화를 그렸다고 해요.


  그런데 이렇게 ‘동거일기’를 세 해째 그리던 어느 날, 남자친구한테 ‘새 애인’이 생겼다면서 그만 둘은 갈라지기로 했다고 합니다.



매번 비슷비슷한 이 일상 블로그도 4년이나 되고 보니, 나조차 잊고 있던 포스팅도 있다. 앞으로 5년 10년, 내 페이스대로 쭉 업데이트할 거라 생각했다. 동거 10년째 되던 해의 그날 전까지는. (45쪽)


드디어 깨달았다. 왜 그때 눈물이 안 났는지. 그때 난 온통 짝꿍 생각만 했을 뿐. 그 같은 시각에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는 미처 생각 못했던 거야. (64쪽)



  《동거종료 일기》를 그린 분은 남자친구하고 갈라서기로 한 뒤에도 ‘동거일기’를 그대로 그리기로 합니다. 아마 안 그릴 수 없었겠지요. 눈부시게 젊은 날 한집에서 서로 쌓았던 기쁨과 즐거움을 담은 만화이거든요. 앞으로는 혼자 벌어서 혼자 살림을 하기도 해야 하니 만화를 안 그릴 수도 없을 노릇이라고도 했는데, 한집이 두집으로 갈리기 앞서 옛 남자친구한테 ‘우리가 갈라서는 이야기’까지 만화로 다 그리겠다고 밝혔답니다. ‘나를 차는’데, 이만 한 것(만화 그리기)쯤은 네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대요.



바보는 나였다. 이별은 싸워서 헤어지는 게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80쪽)


예전에 혼자 살 때는 외로움 따윈 느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원래부터 혼자인 것과 둘을 알고 난 뒤의 혼자는 다르다. (94쪽)


얼마 전까지는 필요했지만 지금 현재는 불필요한, 그런 물건이 잔뜩 있었다. 10년치 쓸모없는 물건이 없어지자 방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116쪽)



  한집에서 살아온 열 해라는 나날은 무엇일까요. 옛 남자친구는 왜 곁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릴까요. 마음은 움직이기 마련이니 한집에서 오래 살았어도 쉽게 갈라설 만할는지 모르지요. 한집에서 사는 사람한테서는 느끼지 못하는 즐거움을 다른 곳에서 찾아내어 갈라서자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만화책 《동거종료 일기》를 그린 분은 한집살이를 마친 뒤에도 이녁 만화를 누리사랑방에서 지우지 않습니다. 옛 남자친구가 갈라서자고 밝힌 때부터 겪은 일도 스스럼없이 털어놓습니다. 동거일기를 그리던 무렵에는 이 만화가 앞으로도 두고두고 누릴 즐거운 이야기였다면, ‘동거종료 일기’로 바뀌고 나서는 이 만화가 이제는 새로운 마음으로 훌훌 털고 일어서야겠다는 다짐 같은 말인 셈이리라 느낍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펑 하고 사라졌다. 그 10년의 세월은 실제로 존재했던 걸까? (130쪽)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블로그였지만 3년 조금 넘는 사이 어엿한 궤적이 되어 있었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하찮은 것들뿐이지만, 그 이전의 7년치까지 합쳐서 전부 10년 간, 하루하루가 이렇게 하찮고도 재미있었다. 분명 내 경험 따윈 특별한 것도 뭣도 아니겠지. 하지만 각자가 할 수 있는 각자만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나만이 그릴 수 있는 것을 그려 나가고자 한다. (139쪽)



  문득 돌아보니 나는 곁님하고 열 해를 살아왔고, 큰아이는 아홉 살입니다. 나는 두 아이를 건사하면서 날마다 새로운 살림을 짓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뛰놀며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보노라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가를 모를 만큼 바빠요. 《동거종료 일기》를 그린 분은 한집에서 둘이 살기만 했을 뿐 아이를 낳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기에 집안에 새로운 기운이 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두 사람이 한집에 살면서 스스로 새롭게 마음을 가꾸지 않는다면 열 해라는 나날은 어쩌면 늘 엇비슷하거나 똑같은 쳇바퀴가 될 수 있습니다.


  가만히 따지자면, 갈라서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이가 있어도 갈라섭니다. 오래오래 서로 아끼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이가 없어도 둘이 오붓하면서 애틋하고 온삶을 누립니다. 아이가 집에 있느냐 없느냐로 두 사람 사이가 달라지지는 않겠지요.


  처음에 시골집을 떠날 적에는 성우라는 꿈을 품었고, 서울(도쿄)에서 알바를 하던 무렵 짝꿍을 처음으로 사귀면서 둘이 이루는 살림을 누렸습니다. 이제는 혼자서 만화를 그리며 스무 살이던 때에 처음 도시에 발을 붙이던 나날하고는 다르지만, 어느 모로 보면 비슷하게 새로운 길을 걷습니다.


  《동거종료 일기》는 그야말로 이제 마침표를 찍고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겠지요. 나이만 먹은 서른 살이 아니라, 나이와 함께 ‘둘레를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는 눈’을 새삼스레 가다듬는 서른 살로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서 만화로 담겠지요. 2016.8.2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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