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른 이름들 민음의 시 224
조용미 지음 / 민음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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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52



별과 내가 아주 커다란 한집에 산다

― 나의 다른 이름들

 조용미 글

 민음사 펴냄, 2016.7.29. 9000원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때때로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삶과 죽음으로 나눌 수 있고, 배고픔과 배부름으로 나눌 수 있어요. 사랑인가 사랑이 아닌가로 나눌 수 있고, 기쁨인가 기쁨이 아닌가로 나눌 수 있어요.


  이도 저도 아닌 두루뭉술한 자리를 말하면서 어느 쪽에도 들지 않으려 할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누군가 나한테 저를 ‘좋아하느냐 안 좋아하느냐’ 하고 물을 적에 좋아하지도 안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말하면 그이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밤에 별을 보려고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문득 생각합니다. 온누리는 ‘별을 볼 수 있는 곳’하고 ‘별을 볼 수 없는 곳’으로 나눌 수 있겠구나 하고 느껴요. ‘별을 많이 볼 수 있는 곳’하고 ‘별을 조금 볼 수 있는 곳’으로 나눌 수도 있을 테고요.



저 커다란 흰 꽃은 오래도록 피어 천 년 후엔 푸른 꽃이 되고 다시 천 년 후엔 붉은 꽃이 된다 하니 (당신의 거처)


나는 어떻게 나임을 증명할 수 있으며 어느 순간 나의 다른 얼굴을 드러내어서는 안 되는가 / 나는 내가 아닐 수 있는 가능성으로 똘똘 뭉친 이 진실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나의 다른 이름들)



  고개를 들어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고 나서 시집 《나의 다른 이름들》(민음사,2016)을 돌아봅니다. 《나의 다른 이름들》을 빚은 조용미 시인은 ‘내가 나인 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하고 넌지시 묻습니다. ‘천 년마다’ 다른 빛깔로 피어나는 꽃을 노래하고, ‘이곳하고 저곳하고 다른 마음’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하는 이야기를 노래합니다.



당신도 혹 이곳에 발붙이고 있어도 늘 저곳을 향하고 있는 마음이 따로 있진 않은지요. 자의식 과잉의 먹구름이 늘 폭우를 동반하고 머리 위를 떠다닌다면 그 정신과 육체는 너무 습도가 높아 목까지 찰랑이는 슬픔이 그득 차 있겠지요 (봄의 묵서)


우리는 같은 것을 보지 못하겠지만, 같은 시간을 겪지도 못하겠지만 / 새들이 날아간 허공 어디쯤 우리의 눈빛이 잠시 겹쳐지는 일도 없겠지만 (풍경의 귀환)



  논둑에 드러누워서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나한테 찾아온 이 별빛은 언제쯤 저 별에서 지구로 보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별빛을 보낸 별에서는 이 지구에서 보내는 지구빛을 언제쯤 받으려나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가만히 반짝이는구나 싶은 별을 바라보다가, 숱한 별 사이를 휙휙 가로지르는 별을 쳐다봅니다. 내가 드러누운 논둑에는 두 아이도 함께 드러누워서 밤별을 올려다보고, 두 아이도 나처럼 ‘별과 별 사이를 휙휙 가로지르는 작은 별빛’을 함께 찾아냅니다. 아이들은 ‘빠르게 날아다니는 별빛’을 볼 적마다 저기야 저기야 하면서 손을 들어 가리킵니다.


  어떤 별일까요. 우리가 보는 별은 저마다 어떤 이름인 별일까요. 과학자가 알파벳이나 숫자를 엮어서 붙인 이름이 아니라, 저 별에 깃든 숨결이 스스로 붙인 저희 별이름은 무엇일까요. 저 별에서는 지구나 달이나 해를 어떻게 느낄까요.



명왕성에서도 몇 광년을 더 가야 하는 우주의 멀고 먼 공간, 아무도 가 보지 못한 태양계의 가장자리,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 / 난 거기서부터 고독을 습득한 것이 틀림없다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



  시인 조용미 님은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 저 먼 별에서, 명왕성에서 한참 더 먼 별에서, 어쩌면 사람 눈에도 망원경 눈에도 안 보일 만큼 아득히 먼 저 별에서 ‘사람 아닌 다른 숨결로 깃들었’다고 느낄 그곳에서 외로움을 배웠으리라 하고 노래합니다.



바람 소리가 물결 소리 같다 / 물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주천)


별이 내뿜는 빛들을 먼먼 우주의 / 어느 한 점에서 바라본다는 건 // 별과 내가 아주 커다란 한집에 산다는 것. / 별과 내가 곧 우주라는 것 (열 개의 태양)



  꽉 찬 사람들로 복닥이는 전철이나 버스를 탈 적에 ‘나는 우주 한복판에 있다’고 느끼기는 어려우리라 봅니다. 꽉 찬 사람들로 복닥이는 전철이나 버스에서 이리 찡기고 저리 밀리면서 ‘마음을 곱게 다스리는 시 한 줄을 노래하기’는 만만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나도 고흥 시골마을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너덧 시간 남짓 달리며 서울로 갈 적에 ‘나는 우주 한복판에 있다’라든지 ‘마음을 곱게 다스리는 시 한 줄을 노래하기’가 수월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이러한 마음이나 생각을 잊고 싶지는 않기에 시외버스에서 눈을 가만히 감고서 ‘여기는 시외버스가 아니라 지구라는 별에서도 우주를 바라보는 한복판이지’ 하고 되뇌어 봅니다. 서울에 닿아 전철을 갈아탈 적에 땀을 흠뻑 쏟다가도, 옆사람이 내 발을 밟느라 아프다고 느끼다가도 ‘나는 언제 어디에서나 시를 노래할 수 있는 기쁜 넋’이라고 되새겨 보곤 합니다.


  한여름 무더위에 부채 하나로 날 수 있습니다. 한여름 무더위로 땀을 흘리며 잠드는 아이들 곁에 서서 밤새 부채질을 해 줄 수 있습니다. 내 부채질은 아이들한테 싱그러운 산들바람을 베푸는 손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여름도 머잖아 끝나면서 다 같이 시원한 새 바람을 쐴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조용미 님은 시집 《나의 다른 이름들》을 빌어서 이 땅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닌 ‘속으로 빛나는 숨결’을 노래하려고 합니다. 시집을 읽으며 아이들한테 부채질을 해 주는 나는 ‘바람 같은 노래를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숨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 이름은 ‘아버지’나 ‘어버이’이기도 하지만, 내 다른 이름은 꿈이나 사랑일 수 있어요. 숲이나 바람일 수 있어요. 새로운 숨결로 거듭나고 싶은 내 다른 이름을 하나하나 혀에 얹어 봅니다. 2016.8.2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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