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귀족 4 세미콜론 코믹스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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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41



마치 별나라에서 온 만화가 같은

― 백성귀족 4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김동욱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6.7.15. 8000원



  만화책 《백성귀족》을 그린 아라카와 히로무 님은 일본 도쿄에서 삽니다. 처음부터 도쿄에 살던 이녁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일본 훗카이도에서 태어나 어버이 곁에서 시골일을 하며 자랐다고 해요.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도 여러 해 동안 어버이 곁에서 시골일을 함께 하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며 늘 시골바람을 쐬기도 했을 테지만, 봄부터 겨울까지 수많은 시골일을 거들면서 ‘일꾼 한 사람 몫’을 했고, 틈틈이 온갖 시골놀이를 누렸다고 해요.


  만화가 한 사람이 만화로 담는 이야기는 언제나 ‘만화가로 오늘 이곳에 있기 앞서 어릴 적부터 보낸 삶과 살림’이기 마련입니다. 어릴 적부터 늘 보고 듣고 겪고 마주하면서 지낸 삶과 살림이 만화책 한 권으로 녹아들어요.


  누군가는 시골살이를 따분하거나 고되거나 지겹게 여겨서 떠올리기도 싫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시골에서 했던 힘겹거나 벅찬 일도 그무렵이나 요즈음이나 ‘힘겨우면서 재미나던 일’이라든지 ‘벅차면서도 보람차던 일’로 여길 수 있어요. 어릴 적부터 스스로 겪은 삶이 만화책으로 고스란히 다시 태어날 뿐 아니라, 어린 나날을 어떻게 바라보려 하는가에 따라서 만화책에 담을 이야기가 새로워지기도 합니다.



“전 비 오는 날 좋은데요. 물론 맑은 날도 좋고.” “맞다. 밭이 있는 농가 입장에서 보기에는 은혜로운 비겠네요.” “그런 것도 있지만, 비가 오는 날은 밭일을 쉬는 관계로 집에 틀어박혀 만화를 그릴 수 & 읽을 수 있으니까!” (21쪽)


“아라카와 선생님! 화성 개척단을 모집해요! 우리 참가해요!” “싫수!” “왜요! 개척 농민의 자손으로서 피가 끓어오르지 않나요?” “개척 농민의 자손이니까 그렇지!” (29쪽)



  《백성귀족》 넷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앞선 세 권에서도 이와 비슷했는데, 만화를 그리는 아라카와 히로무 님은 ‘시골일이 힘들면서도 즐거웠다’고 생각합니다. 만화책에 붙인 이름 그대로 시골일은 ‘백성이 하는 일’이면서 ‘귀족처럼 누리는 일’이라고 여겨요. 그야말로 온몸과 온마음을 바쳐야 해내는 시골일인데, 이 일을 해내고 나면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기쁨을 누린다고 합니다.


  시골(훗카이도)에서 살 적에는 ‘남새를 돈 주고 산 일’이 없이 가장 좋은 것을 늘 거저로 먹었다지만(모두 손수 심어서 거두었을 테니까요), 만화가가 되어 도시(도쿄)에서 살림을 꾸리면서 ‘작고 맛없는 남새를 무척 비싸게 사야 하는 일’을 겪는 동안 크게 놀랐다고 하지요. 게다가 도시에서 매우 비싸게 팔리는 메론조차 시골에서 살 적에서는 ‘너무 흔해서 먹다가 지쳐 소한테 주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이녁이 시골에서 나고 자라며 도시에서 살림을 꾸리기에 ‘새롭고 재미나게’ 느끼거나 겪으면서 만화로도 새롭고 재미나게 담을 만하구나 하고 느껴요.


  그러고 보면 어릴 적 흔히 즐기던 소꿉놀이도 ‘어른이 되어 만화가로 만화를 그릴 적’에 무척 재미나면서 새롭게 그릴 만합니다. 냇가나 도랑에서 물고기를 낚거나 가재를 잡는 일도 얼마든지 새롭게 그릴 만한 이야깃감이 됩니다. 연탄공장 옆에서 살며 탄가루를 맡아야 하는 삶도, 기찻길 옆에서 살며 기차 소리에 새벽이나 밤마다 잠을 못 이루던 삶도, ‘어른이 되어 만화가로 만화를 그릴 적’에는 무척 다르면서도 새롭거나 재미나게, 때로는 슬프면서 아프게 그릴 수 있어요.



“지구의 두 배 가격에 사겠습니다.” “팔죠!” “잠깐! 저건 지구에 보낼 식량이라고요!” “하지만 지구보다 비싸게 사 준다잖아!” (34쪽)


“지구 식으로 길러 봐도 될까요?” “좋으실 대로!” “땅이 아까우니까 한 곳에 꽉꽉 몰아넣고 키워야지! 스트레스로 딴 애들 손발 물어뜯으면 안 되니까 미리 절단! 그러고 보니 간이 맛있다던가. 좋았어, 푸아그라화!” (35∼36쪽)



  《백성귀족》을 그린 분은 ‘시골살이 이야기’를 즐겁게 잘 빚습니다. 《은수저》라는 만화책도 이와 같은데, 시골에서 겪는 시골살림은 얼마든지 멋진 이야깃감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 문제나 정치 문제나 경제 문제만 다루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떤 문화나 예술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남녀 사이에 툭탁거리는 사랑놀이를 그려야 하지 않습니다. 수수하거나 투박한 살림도 얼마든지 멋지면서 재미난 이야기로 새롭게 태어날 만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결대로 이야기가 태어나거든요.


  《백성귀족》 넷째 권에서는 ‘화성으로 삶터를 옮겨서 개척농민이 되어야 한다면?’이라는 얼거리로도 재미난 생각날개를 펼칩니다. 지구별 시골에서 개척농민으로 살던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화성에서 개척농민으로서 새롭게 땅을 일구면서 산다면 어떤 살림이 될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배꼽을 잡을 만큼 익살스럽게 그립니다.


  ‘지구사람한테는 아무렇지 않은’ 집짐승 기르기가 ‘화성사람한테는 너무도 무시무시한’ 모습이 될 수 있다지요. 화성에서 화성사람이 ‘개척농민이 거둔 곡식과 열매’를 지구사람이 내는 값보다 더 돈을 치러서 사겠다고 하면 지구에 곡식과 열매를 안 보내고 그냥 화성에 팔겠다지요.



이듬해 또 호박이 난다. → 먹는다. → 싼다. → 또 난다. “소가 호박을 키우고 있어!” “이것이 목장 내 순환 농법! 뭐, 그래도 이 호박, 퇴비를 듬뿍 먹고 자란 거라 맛있다고 들었어요.” “안 드세요?” “맛있다고 들었어요!” (41쪽)


“현대 낙농은 펑펑 먹이고 펑펑 짜내는 방식이라 소의 육체적인 피폐화도 심해요. 거의 쓰고 버리는 상황에 가깝죠.” “얼마 만에 못쓰게 되나요?” “요즘은 초대형 낙농가를 기준으로 평균 1.6회 출산 정도라고 들은 적이 있어요.” (52∼53쪽)



  마치 별나라에서 온 만화 같은 《백성귀족》은 익살스러운 이야기만 그리지 않습니다. 익살스러운 이야기 사이사이에 ‘오늘날 농업’이 어떤 모습인가 하고 넌지시 보여줍니다. 자립이나 자급자족하고 멀어진 오늘날 사회에서 농업은 어떤 길을 걷는가 하는 대목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익살스러운 만화가답게 ‘할머니가 끓인 맛있는 호박국’이 왜 맛있었는가를 이야기로 풀어내되, 이 맛있는 호박을 나이가 제법 들 무렵부터는 차츰 멀리했지만 그래도 맛있다고 하는 대목을 아기자기하게 엮습니다. 하기는 그렇지요. 쓰레기가 없는 시골에서는 똥오줌이 모두 흙으로 돌아가서 훌륭한 거름이 되고, 이 훌륭한 거름으로 맛난 곡식하고 열매를 얻어요. 돌고 돌면서 깨끗한 시골살림이 되며, 깨끗한 시골살림에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살림을 누려요.


  우리 밭에서 난 옥수수를 아이들하고 함께 따서 먹습니다. 우리 밭에서 거둔 매실로 담근 효소를 아이들이 스스로 물을 타서 시원하게 마십니다. 우리 밭에서 자라는 까마중을 아이들이 신나게 훑고, 우리 밭에서 그동안 맛나게 누리던 솔(부추)이 바야흐로 흰꽃을 터뜨리니 날마다 솔꽃을 반가이 바라봅니다. 손도 몸도 흙투성이가 되어 일할 적에는 땀을 옴팡지게 흘리지만, 해님과 바람과 빗물을 듬뿍 맞아들여 알차게 맺은 열매는 언제나 활짝 터뜨리는 웃음꽃으로 누립니다. 2016.8.1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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