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책읽기
1초가 길다면 얼마나 길까요. 1초가 짧다면 얼마나 짧을까요. 오늘 〈갓 오브 이집트〉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여러 가지를 헤아려 보는데, 하늘(air)을 다스리는 이집트 님(신)이라는 호루스는 작은아버지한테 빼앗긴 눈 가운데 하나를 되찾을 수 있던 때에 살짝 망설이다가 눈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길’로 몸을 던져요. 그야말로 삶하고 죽음이 엇갈리는 1초나 0.1초나 0.001초라고 하는 동안에 아주 살짝 망설이다가 아주 빠르게 몸을 던지지요. 나는 이 대목을 보다가 ‘내가 겪은 삶하고 죽음 사이’를 떠올렸습니다. 나는 살면서 몇 차례 ‘삶하고 죽음 사이’를 오간 적이 있는데, 이때에 느낀 1초(또는 0.1초나 0.001초)는 매우 길었어요. 자동차에 치여서 자전거가 찌그러지고 내 몸이 하늘로 붕 떠서 길바닥에 떨어지기까지는 옆에서 보자면 고작 1초도 안 되었을 테지만, 나는 이 1초도 안 되는 겨를에 그야말로 수만 가지 생각을 했고, 내가 그때까지 살아온 모든 발자취를 다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할 적에 흔히 몇 시간이나 몇 분쯤 쓸까요? 우리가 읽는 모든 책은 ‘글쓴이로서는 짧아도 몇 달이나 몇 해’를 바친 책이고, ‘펴낸이로서도 적어도 몇 달이나 몇 해’를 땀흘린 책이에요. 그런데 이런 책을 우리는 고작 몇 시간이나 몇 분쯤 들여서 다 읽을 수 있어요. 첫 줄부터 끝 줄까지 말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몇 시간만 들이면 ‘한 사람이 몇 해에 걸쳐 이룬 모든 땀방울’을 샅샅이 읽어내거나 알아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살짝 훑더라도 온마음을 기울인다면 책 한 권이 아니라 열 권이나 백 권도 빠르게 읽어내거나 알아낼 만하다고 느낍니다. 삶하고 죽음 사이에 놓이면서 수만 가지 생각을 아주 빠르게 떠올리는 마음이 된다면 이처럼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 앞에 열 해나 백 해라는 제법 긴 나날을 놓더라도 마음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으면 책 한 권이나 글 한 줄도 엉성하게 짚다가 그만 알맹이 하나 못 건지리라 느껴요. 2016.8.3.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