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님 1



  어제 낮에 서울에 왔습니다. 국악방송을 찾아갔습니다. 국악방송이 있는 마을에는 높다란 건물이 많아서 아찔했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내가 시골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다가 이 서울이라는 곳에서 길을 찾으면서 머리가 빙글빙글 돌지? 이제 나는 시골사람이 다 되었나? 도무지 길을 못 찾겠네? 국악방송 피디님한테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찾아가야 하느냐고, 길그림을 보고서는 못 찾겠다고 말씀을 여쭙니다. 겨우겨우 국악방송 건물을 찾았는데, 이 다음에는 11층에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가를 모릅니다. 건물 지킴이 할아버지한테 “국악방송 11층에 어떻게 올라가지요?” 하고 여쭙니다. 건물 지킴이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면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되지요.” 하고 말씀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어디에 있나요?”


  녹음 일을 마치고 합정역 쪽으로 돌아가려는데 전철을 타는 데까지 다시 걸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택시를 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한참 걸어가고 또 땅밑으로 한참 내려가는 길이 내키지 않습니다. 택시는 건너편에 잔뜩 있지만 큰길을 또 건너야 하나 하고 생각하는데 마침 제 앞에 택시 한 대가 멎으면서 손님이 내립니다. 창문으로 기사님한테 여쭙니다. “합정역 갈 수 있나요?” 택시를 타고 합정역으로 가는 길에 기사님이 제 차림새를 살피면서 “국악 하시나요?” 하고 묻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저는 국악은 하지 않지만 국어사전을 쓰는 일을 합니다.” 하고 말씀합니다. “국악이 아니고 국어사전이요?” “지난달에 새로운 사전을 하나 썼거든요.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라고 하는 책인데, 새로운 사전을 한 권 썼기에 국악방송에서 이 책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택시 기사님은 요즈음 사람들이 말(한국말)을 너무 엉터리로 함부로 쓴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문득 “한국에서 사전 쓰거나 엮는 일을 사람이 몇 없어요. 아마 기사님은 사전을 쓰는 사람을 손님으로 만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해요.”


  나는 내 일을 ‘직업’으로 여긴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보니까, 사회에서 내 일을 ‘직업’으로 바라보자니까, 내 직업은 ‘국어사전 집필자’입니다. 아마 이러한 직업을 맡아서 일을 하는 사람은 한국에서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겠구나 싶습니다. 내가 나를 자랑할 까닭은 없으나,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보람으로 여길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택시를 타고 합정역으로 가면서 창밖으로 스치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스무 해쯤 앞서 재개발을 할 무렵 길가에 나무 한 그루 없이 메마르던 곳이 이제 스무 해 사이에 나무가 제법 자라서 그늘을 드리웁니다. 내가 걷는 길이란 무엇인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하며 웃습니다. 2016.7.2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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