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가 ‘글’을 망가뜨린다



  요새 갑자기 ‘필사’가 유행으로 번진다고 느낀다. 아니, 요새라기보다 여러 해 된 듯싶다. ‘필사’뿐 아니라 ‘색칠 그림책’도 유행을 넘어 어마어마한 장사가 되기까지 한다. 나는 이 모습을 보면서 곰곰이 돌아본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베껴쓰기’를 한 번도 시키지 않으며, ‘색칠하기’ 그림책은 사 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남을 따라하는 짓’하고는 늘 등을 돌린다.


  왜? 왜 필사나 모사를 안 하는가?


  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글을 써야 할 뿐, 다른 사람 글을 베끼거나 흉내내야 할 까닭이 없다. 나는 내 이야기를 내 글로 담을 뿐, 다른 사람 이야기를 베끼거나 흉내내면서 겉멋이나 겉치레로 흘러야 할 까닭이 없다.


  한국말사전을 펼친다. ‘필사(筆寫)’는 “베끼어 씀”을 뜻한다. ‘모사(模寫)’는 “원본을 베끼어 씀”을 뜻한다. 이 말뜻부터 잘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필사나 모사를 한다거나, 색칠하기 그림책을 보거나 쓴다면, 우리는 “내 것”이 아닌 “남 것”을 따라할 뿐이다. 이는 배우기하고 멀다. 어깨너머로 배운다든지 스승한테서 배우는 길하고도 멀다.


  내 글씨가 ‘악필’인 까닭은 컴퓨터나 손전화를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이다. 아니, 컴퓨터나 손전화‘만’ 쓰기 때문에 내 글씨가 엉망이 된다. 컴퓨터나 손전화를 많이 쓰더라도 손으로 연필을 잡고서 글이든 편지이든 즐겁게 쓴다면 내 글씨는 ‘내 나름대로 예쁜 글씨’가 된다.


  우리가 할 일은 필사나 모사가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글쓰기’나 ‘편지쓰기’이다. 내 이야기를 나 스스로 써야 한다. 이때에 비로소 글쓰기이다. 내 이야기를 내 이웃하고 동무한테 띄워야 한다. 이때에 바야흐로 편지쓰기이다.


  우리는 저마다 ‘나다운 글씨와 글’을 찾아서 누리면 된다. 우리 글씨는 ‘악필’도 ‘달필’도 아니다. 우리한테는 저마다 새로우면서 재미나고 아름다운 숨결로 노래하는 다 다른 글씨가 있다.


  필사나 모사가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필사나 모사는 ‘베끼기’나 ‘흉내내기’이기 때문에, 그만 ‘표절작가’하고 비슷한 길로 가고야 만다. 표절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작가 스스로 제 이야기를 쓰지 못하고, 그만 다른 사람 이야기를 몰래 훔치면서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려고 하는 이들이다. 이들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누리는 이 삶에서 고작 다른 사람 이야기를 몰래 훔친다고 하면 어떤 기쁨이나 보람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컴퓨터나 손전화가 퍼지기 앞서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른 글씨를 쓰면서 다 다른 글맛을 주고받았다. 책이 나오기 앞서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른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 다른 삶맛을 나누었다. 컴퓨터나 책은 나쁘지 않다. 다만, 우리가 이를 슬기롭게 다루면서 즐길 수 있어야지 싶다. 필사나 모사가 아니라 ‘내 글 쓰기’하고 ‘내 이야기 쓰기’로 가야지 싶다. 2016.7.1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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