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담아듣지 않는 책읽기



  나는 여러모로 책을 쓰기도 하고 사진책도서관을 꾸리기도 하기에 나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곧잘 찾아오거나 전화를 합니다. 이때에 나는 그분들한테 여러모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만 나는 그분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줄 적에 ‘한자말을 한 마디도 섞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한테 말하듯이 ‘한자말이 없이 쉬운 한국말로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렇지만 막상 신문이나 잡지나 책이 나올 적에 들여다보면 “따옴표”를 친 자리에 ‘내가 안 쓴 한자말’이 버젓이 나오기 일쑤입니다. (한자말을 안 써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안 쓰는 낱말이나 말투가 뚱딴지처럼 뜬금없이 거시기하게 좔좔좔 흐른다는 소리입니다)


  내가 한 마디도 두 마디도 쓰지 않은 한자말이나 일본 말투나 번역 말투를 버젓이 “따옴표”를 붙여서 글을 쓴 기자나 작가나 편집자한테 묻고 싶지요. 이보셔요, 그대는 내 말을 어떻게 들었나요? 귀로 들었나요, 발로 들었나요? 녹음기로 녹음도 하셨는데 어떻게 내가 안 한 말을 마치 내가 한 말처럼 종이에 떡하니 찍어서 보여줄 수 있는가요?


  그러나 그분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그럴 수밖에 없을 때가 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서로 마음을 열고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저 좋을 대로 아무렇게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묻고 또 묻고 거듭 물으면서 ‘제대로 알아들을’ 때까지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가 안 한 말’이나 ‘내가 한 말’이 무엇인지 모를 수밖에 없을 테지요.


  책을 읽을 적에도 글쓴이 뜻이나 마음이나 생각을 엉뚱하게 건너뛰거나 넘겨짚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우려는 마음이 없고, 사랑하려는 마음이 없으며, 서로 이웃이 되어 사이좋게 꿈꾸는 노래를 부를 마음이 없으니, 자꾸만 ‘귀담아듣지 않는 몸짓’이 불거지는구나 싶습니다. 2016.6.2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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