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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탄생을 위한 출산 동반자 가이드 - 자연주의 출산을 생각하는 산모와 동반자가 알아야 할 모든 것
페니 심킨 지음, 정환욱 옮김 / 샨티 / 2016년 3월
평점 :
책읽기 삶읽기 252
노래하는 두 아이, 나무 밑 두 아이
― 출산 동반자 가이드
페니 심킨 글
정환욱 옮김
샨티 펴냄, 2016.3.10. 22000원
노래나 악기 연주 외에 간단한 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는 것도 좋다. 아기가 소리에 익숙해지도록 같은 이야기를 거듭해서 읽어 주는 것이 가장 좋다. (49쪽)
두 아이를 늘 돌보는 아버지로서 《출산 동반자 가이드》(샨티,2016)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큰아이가 아홉 살이고 작은아이가 여섯 살입니다. 집안일하고 집밖일을 모두 도맡는 아버지로서 굳이 《출산 동반자 가이드》를 읽을 까닭이 없다고 여길 수 있지만, 우리 집에 ‘넷째 아이’가 찾아오려 했기 때문에, 아기를 낳고 돌보는 살림을 새롭게 되새기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나는 두 아이를 곁님과 함께 ‘병원 아닌 집에서 낳으려는 살림’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는 모두 ‘병원에서 낳아야 했’습니다. 아버지이자 어버이로서 배움이 모자란 탓이 있고, 곁님이 몸이나 힘이 너무 여려서 견디거나 버티거나 씩씩하지 못한 탓이 있다고 할 만합니다. 두 아이는 병원에서 낳았어도 다음 아이는 꼭 집에서 조용히 낳아서 고요히 돌보겠다는 꿈을 키우면서 지냈어요.
만출 단계가 느려지는 것은 아기가 머리 모양을 만들기 위해 혹은 엄마의 골반에서 가장 좋은 자세를 취하기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임을 기억하자. (134쪽)
아홉 살과 여섯 살인 두 아이는 언제나 내 곁에서 신나게 뛰어놉니다. 내가 집안에서 집안일을 하면 이 아이들은 내 둘레에서 뛰어놀다가 마당으로 나가서 놀기도 하고 마을을 여러 바퀴 달리면서 놀기도 합니다. 내가 집안에 있으면 언제나 다시 집안으로 돌아와서 내 곁에 있지요. 내가 마당이나 밭자락에서 흙을 만지면 이 아이들은 집안에 머물지 않고 마당이나 밭자락으로 나와서 저희끼리 뭔가 새로운 놀이를 스스로 지어내서 놉니다. 밭일을 두 시간 하면 두 시간 동안 나란히 흙놀이를 하고, 밭일을 네 시간 하면 네 시간 동안 나란히 흙놀이를 해요.
잠자리에서 늘 이불을 뻥뻥 걷어차는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은 아버지인 나를 믿는 몸짓일까요? 나는 여태까지 밤마다 아이들 이불깃을 열 차례 넘게 여밉니다. 나는 언제나 밤에 틈틈이 잠을 깨고 일어나서 이불깃을 여며요. ‘틀림없이 이때쯤이면 이불을 걷어찼겠지’ 하고 느끼면서 부시시 일어나지요.
이불깃을 여미다가 가끔 두 아이가 갓난아기였을 적을 떠올립니다. 두 아이가 아기였던 때에는 밤에도 삼십 분마다 천기저귀를 갈았으니, 마치 기저귀를 갈아 주듯이 이불깃을 여미어 주는 셈입니다.
출산 동반자는 가능하면 아기와 함께 지내야 한다. 아기에게는 가까이에서 사랑을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314쪽)
《출산 동반자 가이드》는 아기를 낳는 어머니 곁에서 ‘아버지’ 구실을 할 사내들이 차근차근 읽고 되새기도록 돕는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나는 이 책을 그야말로 틈틈이 읽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려서 아이들을 먹이는 틈에 몇 쪽씩 읽고, 거의 날마다 빨래를 하고 마당에 널어서 저녁에 걷은 뒤 개고 나서 몇 쪽씩 읽어요. 아침저녁으로 아이들하고 공부하는 사이에도 몇 쪽씩 읽고요.
두 아이를 집에서 낳으려고 하던 지난날, ‘학교에서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것을 스스로 배우려고 무던히 힘들었어요. 곁님이 일깨우고 이끌어서 배웠습니다만, 학교에서는 ‘아기를 낳아서 돌보는 살림’을 한 번도 안 가르쳤거든요. 학교에서는 성교육이나 피임법을 동영상이나 이론으로 더러 가르치기는 하지만, 정작 ‘아기 낳기’하고 ‘아기 돌보기’하고 ‘살림 꾸리기’는 가르치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스스로 살피고 찾아서 배워야 했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아기를 낳고 돌보는 살림은 ‘어머니(여자)만 알면’ 되지 않느냐고 여길 수 있어요. 그런데 한집에서 한살림을 짓는 아버지(남자)가 아기를 낳고 돌보는 일이나 흐름을 모른다면 어떠할까요? 사내는 집밖에서 돈만 잘 벌면 될까요? 사내는 ‘돈 버는 구실’ 말고 ‘아버지 노릇’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몰라도 될까요?
《출산 동반자 가이드》라는 책은 사내가 ‘아버지 노릇’을 똑똑히 하도록 돕거나 이끄는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기까지 아버지 자리에서 출산 동반자로서 무엇을 알고 생각하고 살펴야 하는가’를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짚어 줍니다. 출산 동반자, 그러니까 앞으로 아기를 낳아서 ‘함께 사랑으로 살아갈 사람’으로서 무엇을 알고 느끼고 생각할 때에 즐겁게 삶을 지을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을 찬찬히 다루고 들려줍니다.
(예방주사로) 비타민 K를 거부하는 것은 약간은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아기가 VKDB를 갖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병은 흔하지느 않다. (383쪽)
《출산 동반자 가이드》라는 책은 예방주사 맞히는 이야기나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 이야기를 틈틈이 들려줍니다. 다만, 이 책에서는 예방주사나 병원 치료를 ‘권장’은 하되 ‘강요’는 하지 않아요. 아기한테 맞히라고 하는 예방주사로 ‘반드시 예방’이 되지는 않는다는 대목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나는 두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동안 예방주사란 무엇인가를 놓고 참으로 오랫동안 생각하고 살피며 따져 보았습니다. 예방주사를 맞혀야 병이 안 걸릴까요? 아니면, 병원균을 미리 아이들 몸에 집어넣기에 병원균에 감염이 될까요? 우리는 어느 쪽으로도 섣불리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또렷하게 말할 수 있어요.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려는 마음이 된다면, 아이는 사랑을 물려받아요. 아이를 따스하고 넉넉하게 보살피려는 살림이 된다면, 아이는 걱정없이 기쁜 마음으로 노래하고 웃는 튼튼한 몸으로 자라요.
내 곁에는 어느새 아홉 살하고 여섯 살로 자란 두 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4년에 그만 너무 일찍 찾아와서 핏덩이인 채 무화과나무 곁에 묻힌 ‘셋째 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2016년 5월에 다시금 너무 일찍 찾아와서 아주 작고 가녀린 핏덩이인 채 석류나무 곁에 묻힌 ‘넷째 아이’가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우리 집 ‘셋째·넷째’를 가리켜 ‘유산’이라는 말을 쓸 텐데, 나는 두 숨결을 그저 ‘셋째·넷째’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합니다. 지난밤에 우리 집 석류나무 곁을 호미로 파서 아주 조그마한 핏덩이를 땅에 묻으면서 보름달을 올려다보았어요. 아침에는 읍내로 가서 미역하고 소고기하고 수박을 장만해서 돌아오며 뜨거운 봄볕을 마주했어요. 튼튼한 몸으로 자란 아이들을 돌보는 어버이로서뿐 아니라, 네 아이를 낳은 어머니를 보살피는 짝꿍(아버지)으로서 내가 설 자리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출산 동반자’는 ‘살림을 함께 짓는 사람’이고, ‘삶을 함께 누리는 벗’입니다. 남녀 평등이나 가사 분담이라는 이름을 넘어서, ‘사람·삶·살림·아기·출산·양육’ 모두 우리 아버지들이 제대로 바라보고 슬기롭게 알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여성에게 본격 진통 단계는 깨달음의 순간이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진통을 한다는 생각에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꾹 참고 아기가 나올 때를 기다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임신부는 우울해질 수 있다. (109쪽)
아기를 낳는 일은 어머니한테뿐 아니라 아버지한테도 ‘삶을 새롭게 깨닫는 한때’가 되리라 봅니다. 우리 아버지들이, 그러니까 이 땅 사내들이, 어머니(짝꿍·여자) 곁에서 아기를 함께 낳고, 아기를 함께 받고, 아기를 함께 돌보고, 아기와 함께 지내는 살림을 함께 가꾸면서, 아기를 함께 가르치고, 아기랑 함께 놀며, 아기하고 하루하루 함께 누리는 삶이 된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선 이 자리는 무척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달라지리라 느껴요. 내 보금자리를 내가 스스로 사랑으로 가꿀 수 있다면, 우리 사회나 터전도 어느새 사랑이 가득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여자와 남자라는 틀을 넘어서, 수학도 과학도 국어도 영어도 사회도 역사도 배워야겠습니다만, ‘육아·출산·양육’이라고 하는 ‘삶·살림·사랑’을 먼저 제대로 올바로 슬기롭게 따사로이 넉넉하게 배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무화과나무 곁에 묻고, 석류나무 곁에 묻은, 작은 숨결이 일깨운 사랑을 가만히 그립니다. 2016.5.2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