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털털 막걸리 - 우리 발효 음료 막걸리 교과서 전통문화 그림책 1
김용안 글, 홍선주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56



울릉섬에는 ‘후박막걸리’일까 ‘호박막걸리’일까?

― 시금털털 막걸리

 김용안 글

 홍선주 그림

 미래엔 아이세움 펴냄, 2016.1.30. 1만 원



  ‘교과서 전통문화 그림책’ 가운데 하나로 나온 《시금털털 막걸리》(미래엔 아이세움,2016)를 가만히 읽어 봅니다. 아이들한테 웬 술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들려주느냐 하고 물을 만할 테지만, ‘교과서 전통문화 그림책’이라는 이름처럼 막걸리는 그냥 술이 아닌 ‘한겨레가 예부터 가까이에서 즐기던’ 살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해요. 흙을 일구어 나락을 거둔 다음 겨를 벗긴 뒤에 쌀을 얻어서 밥을 짓듯이 막걸리도 함께 빚어서, 고된 일을 하고 난 몸을 달랜다든지 손님한테 드린다든지 했어요.



누룩은 따뜻한 방을 좋아해. 누룩은 방에서 15일 동안 푹 쉴 거야. 그때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곰팡이, 효모가 누룩에 붙어. 그래서 누룩에 하얗고 노란 꽃을 피우지. (9쪽)



  막걸리는 여러 가지 ‘발효 음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된장이나 김치처럼 막걸리도 잘 삭혀서 먹는 고마운 밥 가운데 하나이지요. 오늘날에는 집에서 누룩을 띄워서 막걸리를 손수 담기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손수 짓는 밥살림을 헤아리면서 아이랑 함께 ‘집술’을 담가 볼 만하리라 생각해요.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하고 집에서 막걸리나 된장을 빚을 수 있다면, 이러한 ‘집 막걸리’하고 ‘집 된장’을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할 수 있어요. 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한테 아이가 ‘내가 손수 빚은 막걸리예요’ 하면서 선물로 드릴 수 있을 테고요.



막걸리를 만들려면 먼저 ‘고두밥’을 지어야 하거든. 고두밥은 쌀을 잘 불려서 찜통이나 시루에 찐 거야. 찜통에서 김이 폴폴 나고 있어. 항아리는 볏짚을 태운 연기를 쐬어서 소독을 해 둬. 그리고 술밥을 항아리에 담아 두면 돼. 며칠이 지나면 막걸리가 발효되기 시작해. 발효되는 소리가 들리니? 부글부글, 뽀글뽀글 화산이 끓는 소리 같아. (10쪽)



  그림책 《시금털털 막걸리》를 펼치면, 먹걸리를 놓고 깊거나 넓게 살피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막걸리가 어느 때부터 비롯했는가를 헤아리고, 막걸리를 언제 어떻게 즐겼으며, 막걸리를 어떻게 빚거나 담그는가 하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막걸리를 집집마다 빚던 살림이 갑자기 왜 끊어졌는가를 밝히며, 아이들이 저마다 손수 짓는 살림을 익히도록 돕는 이야기를 알려주어요.


  그림책을 아이랑 함께 보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 빈 독이 셋 있는데, 잘 말린 쑥을 태워서 독을 소독하고는, 이 독에다가 ‘우리 집 막걸리’를 한번 빚어 볼까 하고요. 올해에는 아이들하고 ‘집 막걸리’를 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요.


  더군다나 우리 집에는 마당에 우람한 후박나무가 있어요. ‘후박막걸리’를 담가 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매실막걸리’라든지 ‘모과막걸리’를 담가 볼 만해요. 우리 집에는 매화나무하고 모과나무가 있거든요. 늦가을이나 겨울에 뒤꼍 유자나무에서 유자를 따면 ‘유자막걸리’를 담글 수도 있습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시절, 일제는 집에서 술 빚는 것을 막고 강제로 누룩 만드는 곳을 없앴어. 그래서 우리 술과 누룩은 거의 사라졌어. 23쪽)



  그런데 《시금털털 막걸리》에서는 “막걸리는 이름 그대로 ‘막 거른 술’이야. 네가 무슨 일을 막 한다면 그건 대충 한다는 뜻일 거야(6쪽).” 하고 이야기해요. 이 대목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막 거른 술”은 “대충 거른 술”을 가리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막’이라는 한국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어요. 첫째, “바로 이때”나 “갓”을 가리킵니다. 둘째, “함부로”나 “마구”를 가리키지요. 이 두 가지 뜻 가운데 ‘막걸리’를 으레 둘째 것으로 여기곤 하는데, 막걸리를 빚거나 담는 얼거리를 헤아린다면, “마구 걸러서 담근다”거나 “아무렇게나 걸러서 빚는다”고 여기기 어렵습니다. 품이나 겨를이 무척 많이 오래 들거든요. 누룩을 띄운다든지 고두밥을 지을 적에 ‘함부로’ 하지 않아요. 체나 천에 거를 적에도 ‘마구잡이’로 거르지 않아요.


  그러고 보면, ‘막국수’를 ‘마구’로 풀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거친 메밀가루”를 쓴대서 ‘마구’로 여길 수도 있을 만하지만, 국수를 손수 빚어서 삶으려면 이때에도 손이며 품이며 겨를이 참으로 많이 들지요. 예부터 우리가 먹거나 입거나 짓는 살림 가운데 ‘마구(막)’ 하는 일은 없다고 느껴요. 모두 오래 손을 쓰고, 깊은 품을 들이며, 참으로 긴 겨를을 기다리고 지켜보면서 짓는 살림입니다.


  그러니까 막걸리라고 할 적에는 “담그고 나서 막 마실 수 있는”, 다시 말하자면 “갓 걸러서 담근 맛으로 즐기는 술”을 ‘막걸리’라고 할 만하지요. 오래도록 술독에 두어서 아주 깊이 우러나도록 하고 난 뒤에 즐기는 술이 아니라, “담가서 바로 마실” 수 있는 술이 막걸리이거든요.


  그리고 《시금털털 막걸리》를 읽다 보니, “울릉도에서 많이 나는 것은? 맞아, 호박이야. 울릉도에서는 호박을 넣어 노란 호박 막걸리를 만들었어(26쪽).” 같은 대목이 나와요. 이 그림책을 쓰신 분은 ‘울릉도 호박엿’하고 ‘울릉도 호박막걸리’를 말하려 하셨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잘못된 얘기예요. 무엇이 잘못인가 하면, 울릉도에서는 처음에 ‘호박엿·호박막걸리’를 빚지 않았습니다. 섬에서 빚은 엿하고 막걸리가 뭍에 잘못 알려져서 그만 ‘호박’으로 잘못 퍼졌어요.


  우리 식구가 지내는 전남 고흥에서도 비슷한 엿이나 막걸리를 예부터 빚었다고 해요. 어떤 엿이나 막걸리인가 하면 ‘후박나무 껍질과 열매’로 빚는 엿이나 막걸리입니다. 후박나무는 소금기가 묻은 바닷바람이 부는 따스한 고장에서만 자라요. 이 후박나무에서 얻은 껍질하고 열매를 섞어서 빚는 엿이나 막걸리는 뱃사람이 뱃멀미를 하지 않도록 하는 약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후박엿·후박막걸리’이지요.


  후박나무는 전남·경남 바닷가라든지 울릉도나 가거도 같은 섬에서 볼 수 있는 나무예요. 이러다 보니 바다와 멀리 떨어진 뭍에서는 ‘후박나무’를 모르기 일쑤이고, ‘후박엿’을 ‘호박엿’으로 잘못 말했다고 해요. 요새는 울릉도에서 아예 호박으로 엿이나 막걸리를 빚기도 한다지만(사람들이 워낙 잘못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후박나무를 지키려는 뜻으로 웬만해서는 후박나무 껍질을 안 벗기려 한답니다), 예부터 한겨레가 빚은 엿하고 막걸리는 ‘후박엿·후박막걸리’예요. 어린이한테 한겨레 옛살림을 들려주는 그림책인 《시금털털 막걸리》인 만큼, ‘막’이라는 낱말하고 ‘후박막걸리’라는 대목은 바로잡아 주어야지 싶습니다.


  끝으로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막걸리나 술은 ‘빚다’나 ‘담그다’라는 낱말로 나타냅니다. 막걸리나 술은 ‘만들다’라는 낱말로 나타내지 않아요. 이 그림책에서는 거의 모든 자리에서 “막걸리를 만든다”처럼 쓰는데, 이 말투도 “막걸리를 빚는다”나 “막걸리를 담근다”로 고쳐 주어야지 싶어요. 2016.5.1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