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플라시보다 - 원하는 삶을 창조하는 마음 활용법
조 디스펜자 지음, 추미란 옮김 / 샨티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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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54



할머니는 어떻게 ‘약손’이 될 수 있는가

― 당신이 플라시보다

 조 디스펜자 글

 추미란 옮김

 샨티 펴냄, 2016.4.20. 23000원



  조 디스펜자 님이 쓴 《당신이 플라시보다》(샨티,2016)는 ‘플라시보’가 무엇인가를 놓고 과학으로 꼼꼼하게 따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을 쓴 조 디스펜자 님은 뇌·신경학·세포학 과학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 디스펜자 님은 여느 과학자하고는 좀 다르지 싶습니다. 무엇이 다른가 하면, 이녁이 겪은 일이 달라요.


  이녁은 어떤 일을 겪었는가 하면, 1986년 어느 날이라고 하는데, 철인 3종 경기를 뛰다가 그만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자전거 사고를 치렀다고 해요. 헤엄치기를 끝내고 자전거를 달리는데, 그만 뒤에서 자동차가 달려들어 이녁을 들이받았고, 들이받은 데에서 그치지 않고 18미터나 질질 끌고 가다가 자동차가 멈추었다고 해요.


  이 자전거 사고로 조 디스펜자 님은 일어서지도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척추뼈가 부서졌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손을 쓰기 어려웠다고 해요. 뼛속에 어떤 물질을 집어넣어서 굳히거나 버티도록 해야 한다고 했대요. 그러지 않으면 척추뼈가 와르르 무너져서 두 번 다시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때에 조 디스펜자 님은 병원 치료나 수술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침대에 실린 채 집으로 돌아와서 ‘마음속으로 그림 그리기’를 했다고 합니다. ‘부서진 척추뼈’가 아닌 ‘튼튼한 몸’을 마음속으로 그렸다는데(그렇다고 이 ‘마음속으로 그림 그리기’가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았답니다. 침대에 누운 채 꼼짝하지도 못 했으니 늘 이 일만 하면서 차츰 잘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 달이 지날 즈음 침대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고 해요. 이러고 얼마 뒤에는 다시 예전처럼 일할 수 있었고, 끔찍한 자전거 사고를 치른 지 석 달 뒤에는 ‘다시 자전거를 타는 몸’이 되었는데, 부서진 척추뼈가 제대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믿기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참말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고 해요.



나는 하루에 두 번 각각 두 시간씩 내면으로 들어가 내가 의도한 결과의 그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완전히 치유된 척추 그림이었다. 물론 나는 내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살고 있고 또 산만한지도 알게 되었다. (24쪽)


나에게는 내 안의 지성과 접촉하고 그것을 통해서 내 마음으로 내 몸을 치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27쪽)



  ‘플라시보(placebo)’는 ‘위약 효과’라고도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약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는 예부터 “할머니 손은 약손”이나 “어머니 손은 약손” 같은 말을 해요. 약을 쓰지 않아도 할머니나 어머니가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살살 어루만지면 어느새 아픔이 가신다고 해서 ‘약손’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다치거나 아픈 몸’을 낫게 할 적에는 약만 써서는 보람을 얻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나 병원 시설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치거나 아픈 사람 스스로 ‘생채기를 씻고 일어서려는 마음’이 없다면 다치거나 아픈 데에 안 낫는다고 하거든요.


  《당신이 플라시보다》를 쓴 뇌 과학자인 조 디스펜자 님은 이녁 스스로 ‘끔찍한 자전거 사고’를 겪어야 했을 적에, 이 사고를 수술이 아닌 ‘마음 다스리기’로 나은 일을 겪은 뒤, 뇌 과학·신경학·세포학을 새롭게 바라보았다고 하지요. 이녁이 과학자였기에 ‘어떻게 마음으로 꿈을 그리는 것’만으로 이녁 몸을 새롭게 고칠 수 있었는가를 과학 이론으로 풀어내려고 했답니다. 여기에 양자역학 원리를 받아들여서 ‘아픈 사람이 아픔을 스스로 씻는 길을 과학 원리를 바탕으로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야기해’ 주려고 했구나 하고 느낍니다.



매일 자동 인형처럼 살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가? 그렇다면 정확하게 들은 것이다. 같은 생각이 같은 선택을 이끈다. 같은 선택이 같은 행동을 이끈다. 같은 행동이 같은 경험을 창조한다. (116쪽)


새로운 선택은 또 새로운 행동을 부른다. 새로운 행동은 새로운 경험을 부른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감정을 창조하고, 새로운 감정과 느낌은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당신을 고취한다. 바로 그때 ‘진화’가 이루어진다. (120쪽)



  조 디스펜자 님은 《당신이 플라시보다》라는 책을 빌어서 우리가 ‘생각·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가 하고 묻습니다. 우리 스스로 ‘늘 똑같은 생각’인 채 ‘늘 똑같은 하루’를 보내지 않느냐 하고 묻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까닭은 ‘새로운 생각’을 스스로 품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물어요.


  이 물음을 찬찬히 받아들이면서 참말로 내 생각과 마음을 새삼스레 되짚어 봅니다. 기쁨이란 먼 데에 있지 않겠지요. 나 스스로 기쁘게 생각해야 기쁨이고, 나 스스로 기쁘게 생각하지 않으면 기쁨이 아닐 테니까요.


  이를테면,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면서 소꿉밥을 흙으로 지어서 나한테 내미는데, 빙글빙글 웃으며 두 손으로 ‘흙밥(소꿉밥)’을 내미는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고 생각한다면, 나는 아이들하고 즐겁게 소꿉놀이를 하면서 웃을 만합니다. 이와 달리 ‘집안에 흙덩이를 들고 들어오다니!’ 하고 나무란다면, 나한테는 기쁨도 웃음도 샘솟지 못할 테고, 아이들한테도 기쁨이나 웃음이 아니라 ‘서운함’을 심고 말 테지요.



우리는 정말 이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이렇게 살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걸까? (154쪽)


당신이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이는 곳에 당신의 에너지가 놓인다.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거기에 의식이나 마음을 둔다면 당신은 그 가능성에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278쪽)



  우리는 스스로 어떤 마음이 될 때에 즐겁거나 기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면서 지낼 때에 즐겁거나 기쁠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힘들다’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면 뭘 해도 힘들어요. 밥을 짓든 잠을 자든 그저 힘들어요. 이와 달리 ‘신난다’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면 뭘 해도 신나요. 밭일을 하든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서 나들이를 다니든 신나요.


  내가 스스로 어떤 마음이 되는가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진다고 할까요. 내가 스스로 어떤 마음이 되는가를 나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면 내 삶은 엉망이 된다고 할까요. 내가 스스로 기쁜 마음일 적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어떤 일을 겪더라도 스스로 기쁨이지만, 내가 스스로 안 기쁜 마음일 적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어떤 일을 마주하더라도 안 기뻐요. 어려운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지요. 참으로 쉬운 지식이나 이론이지요. 그런데 이 쉬운 지식이나 이론을 ‘쉽기 때문에 너무 쉽게 잊고’ 지나치는구나 싶습니다.



완전한 치유는 양자장 속에 미지의 가능성으로서 이미 존재한다. 우리가 그것을 관찰하고 깨닫고 구체화시킬 때까지 말이다. (338쪽)


감정과 생각이 급기야 습관적 혹은 자동적이 되고, 그 시점에서 태도가 형성된다. 태도들이 모여 믿음이 되고, 관련된 믿음들이 모여 인식이 된다. 이런 과정이 오래 반복되면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점이 형성된다. (400쪽)



  남이 나한테 뭘 해 주기 때문에 기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똑같은 일을 놓고도 이때에는 기뻐도 저때에는 안 기쁘구나 하고 느껴요. 다시 말해서, 내 마음이 기쁨일 적에는 작은 들꽃 한 송이를 보더라도 웃지만, 내 마음이 기쁨이 아닐 적에는 어마어마한 장미꽃다발을 받아도 웃지 않아요. 내 마음이 기쁨일 적에는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노래를 부르지만, 내 마음이 기쁨이 아닐 적에는 주머니에 돈이 가득해도 ‘아직 돈이 모자라!’ 하는 생각에 젖어 조금도 노래를 못 부르고 안절부절하기 마련이지 싶어요.


  《당신이 플라시보다》라는 책은 우리가 스스로 마음속에 ‘이루고 싶은 꿈을 스스로 그려서 담으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느낍니다. 대단한 꿈이든 수수한 꿈이든, 우리가 스스로 마음속에 ‘꿈을 그려야 꿈을 이룬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꿈을 안 그리는 사람은 이룰 꿈이 없어서 꿈을 못 이룬다’는 얼거리가 되는구나 싶어요. 꿈을 그리기에 언제나 그 꿈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씩 걷는 셈이고, ‘내가 그 꿈을 어떻게 이뤄? 말도 안 되지!’ 하는 생각을 마음속에 심으면, 그만 나는 내 꿈을 그리지 못하면서 아무 꿈도 못 이루는 삶, 늘 똑같은 몸짓만 되풀이하는 나날이 되는 셈이지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할머니 약손’처럼 따사로운 사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이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고, 내 몸을 고요히 가꾸는 길로, 언제나 따스하고 넉넉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이 되자고 생각합니다. 예부터 할머니는 아이를 따사로이 보살피려는 사랑을 마음으로 한가득 품었기 때문에 언제나 상냥하고 넉넉한 ‘약손’이 되어 우리를 보듬어 주었으리라 느껴요. 2016.5.1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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