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소리 13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25



아파도 웃으면서 새 노래로 자라는 사람들

― 순백의 소리 13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6.4.25. 4800원



  노래대회가 있습니다. 노래로 이기느냐 지느냐 하고 겨루는 대회가 있습니다. 서로 즐겁게 노래를 부르거나 나누면서 아름다운 삶을 북돋우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더 목소리를 잘 뽑느냐를 겨룬다든지, 누가 더 악기를 잘 켜느냐를 겨루는 자리가 있어요.


  노래대회에서 으뜸이 되면 이름을 드날리거나 돈을 잔뜩 거머쥔다고 합니다. 노래대회에서 버금을 해도 훌륭하고 딸림을 해도 대단하지만, 으뜸이 아닌 버금이나 딸림이 된다면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아니, 사람들은 흔히 “1등을 놓친다” 같은 말을 써요. 노래부르기에까지 차례를 매겨서 누구는 1등이고 누구는 2등이며 누구는 3등이라고 금을 긋습니다.



‘공기가 으르렁댄다. 타누마의 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다. 프레이즈 하나만으로도 그 탁월한 능력을 알 수 있다.’ (9쪽)


‘선생님, 저도 코스케만할 때는 굉장했는데, 그렇게 기뻐해 주셨던가요?’ (23쪽)



  아이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저절로 우러나와서 노래를 부릅니다. 놀다가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다가 노래를 부릅니다. 게다가 밥을 먹다가도 노래를 부릅니다.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는 길에서도 노래를 부릅니다. 시골버스에서 시골 할머니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목소리를 느끼고는 어느 때에는 “오냐, 잘 부른다. 더 불러 봐.” 하고 웃고, 어느 때에는 “시끄럽게 뭔 노래!” 하면서 꾸짖습니다. 또 어느 때에는 꾸짖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옆에서 “애들 목소리 듣기 좋은데 왜 못 부르게 하쇼?” 하고 다른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나무라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노래란 무엇일까요? 노래는 언제 부를까요? 악기로 켜는 노래는 또 무엇일까요? 악기로 켜는 노래는 언제 켤 만할까요?


  라가와 마리모 님이 빚은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6) 열셋째 권을 읽으면서 ‘노래부르기’하고 ‘악기 켜기’를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 노래하고 악기를 놓고 솜씨를 겨루는 대회를 생각해 봅니다.


  즐거움이 우러나와서 부르는 노래일 때하고, 아주 훌륭하거나 멋지다는 말을 듣는 노래일 때에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노래를 듣는 사람’이 얼마나 즐겁거나 신날까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천재? 장래? 메이저? 머리로 답을 찾아 헤메고, 자기를 비하하며 자신을 누르려 했다.’ (48쪽)


‘타이가 씨의 소리다. 겉치레 없이 즐겁게 연주하는, 타이가 씨의 소리.’ (77쪽)



  라가와 마리모 님이 빚은 만화책에 나오는 젊은이들은 샤미센이라는 일본 악기를 켭니다. 대회에 나와서 으레 1등을 밥먹듯이 하는 젊은이가 있고, ‘천재’라는 아이들한테 늘 꺾이면서 ‘자기비하’를 일삼던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천재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웃하고 신나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마음껏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래대회에 나와서 그저 언제나처럼 ‘우승후보답게 빼어난 솜씨를 선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노래대회에서조차 그저 언제나처럼 ‘이웃하고 신나게 어깨동무를 하듯이 즐겁게 악기를 켜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승후보는 우승후보답게 1등을 쉽게 거머쥡니다. 즐겁게 악기를 켜는 사람은 순위발표를 보지도 않고 대회장에서 나갑니다. 순위발표를 볼 생각이 없었다면 대회에도 안 나갈 노릇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대회에 일부러 나간 그 사람은 ‘오랫동안 스스로 억눌렀던 자기비하’라는 굴레를 깨고 싶어서 대회 무대에 한 번 서 보았어요.



“내 소리가 할배 소리 같드나?” “아니.” “그럼, 내 안에서 할배가 없어졌드나?” “형은 할배의 소리로 자랐다 아이가.” “음, 그래.” (137쪽)


“타이가 씨가 지금, 사와무라에게 샤미센을 지도하시나요?” “나? 설마.” “그럼 누구한테서 배운 거랍니까?” “지금까지의 ‘만남’에서 아닐까?” (186쪽)



  이제껏 열두 권에 이르는 낱권책이 나왔고, 어느새 열셋째 권이 나온 《순백의 소리》를 가만히 되새깁니다. 머잖아 열넷째 권도 나올 테고, 아마 스무 권 즈음까지 꾸준히 나올 듯합니다. 열셋째 권까지 한 권씩 찬찬히 돌아보니, 권마다 조금씩 다르게 삶과 살림과 사랑을 노랫결에 담아서 들려주는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노랫가락에 제 마음과 느낌과 생각을 담는 걸음걸이를 넌지시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노래나 악기는 누구한테서 배울까요? 대단한 스승한테서 배울까요? 아니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람’한테서 차근차근 배울까요? 또는 사람뿐 아니라 바람소리한테서도, 나뭇소리한테서도, 꽃소리나 풀소리한테서도, 벌레나 새나 짐승 울음소리한테서도 배울까요?


  나는 ‘썩 잘 부르는 노래’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닐 적에 음악 실기시험에서 늘 ‘바닥 점수’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노래 못 부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면 되게 좋아합니다. 웃고 춤추며 노래하는 아버지를 아이들이 참 좋아합니다.


  아버지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자전거를 달릴 적에도 노래합니다. 오르막에서 숨이 턱에 닿아도 기운을 내어 씩씩하게 노래를 하지요. 오랫동안 자전거를 달려서 다리힘이 풀려도 새삼스레 힘을 뽑아서 나긋나긋 노래를 하지요. 이 때문인지 몰라도, 아이들은 시골버스뿐 아니라 고속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전철에서도, 참말 언제 어디에서나 제법 큰 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만화책 《순백의 소리》에 나오는 여러 젊은이들은 ‘아픔을 먹으면서 이 아픔을 새로운 노래로 삭이는’ 숨결을 보여주어요. 아이들은, 그저 즐겁게 노는 아이들은, 대회나 겨루기를 모르는 아이들은, 참말로 티없이 맑고 싱그럽게 노랫가락에 웃음을 담아서 사랑을 들려주려 한다고 느낍니다. 2016.5.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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