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책



  책을 안 읽고도 책을 쓸 수 있을까? 어쩌면 어떤 사람은 책을 한 권조차 안 읽었지만 아름답거나 놀랍거나 훌륭하거나 멋진 책을 쓸 수 있으리라. 아무 책을 안 읽었기에 어설프거나 어리숙한 책을 쓸 수도 있을 테고. 그런데, 책을 많이 읽었기에 더 훌륭하거나 더 아름다운 책을 쓰지는 않는다. 책을 적게 읽었거나 못 읽었기에 더 어리석거나 더 바보스러운 책을 쓰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면, 책을 읽었느냐 안 읽었느냐는 그리 대수롭지 않다. 책을 쓰려고 한다면 ‘지을 책’에 담을 이야기가 마음속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대목이 대수롭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야기를 써서 책을 짓느냐도 대수로울 테지만, 스스로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면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있느냐 하는 대목이 그야말로 대수롭지 싶다.


  책을 지으려 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지으려 하는 사람이리라 본다. 이야기를 지으려 하는 사람은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을 지으려 하는 사람이리라 본다. 그러니, 교과서나 참고서나 문제집을 놓고 ‘책’이라 하지 않는 까닭을 알 만하다. 교과서나 참고서나 문제집이라고 하는 ‘종이꾸러미’에는 이야기를 지으려고 하는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 깃들지 않으니까. 2016.4.2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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