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 국민학교에서 역사교과서 파동까지
김한종 지음 / 책과함께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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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50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을 좋아하는 정치·사회

―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김한종 글

 책과함께 펴냄, 2013.10.4. 25000원



학교 교장실에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던 때가 있었다. 대통령의 국정지표를 받들어서 행정을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478쪽)



  김한종 님이 쓴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책과함께,2013)를 읽다가 문득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대통령 사진’은 교장실에만 걸렸던가 하고 갸웃갸웃해 봅니다. 틀림없이 교장실에는 대통령 사진이 걸렸어요. 그런데 교장실에만 걸리지 않았다고 떠올라요. 때로는 교실에까지 대통령 사진을 걸곤 했어요. 그리고 ‘태극기’ 곁에 언제나 ‘새마을 깃발’을 걸었지요.


  어릴 적에 ‘국민학교’라고 하는 이름이 붙던 학교를 다닐 적에는 학교에 ‘대통령 사진’이 곳곳에 붙는 일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니, 언제나 그 사진을 보며 경계를 하거나 반절을 하라고 배웠습니다. ‘국민학생’이던 우리는 길을 가다가 어디에서 대통령 사진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거수경례를 하라고도 배웠어요. 저녁이 될 무렵 마을방송처럼 시내 어디에서나 쩌렁쩌렁한 소리로 ‘국민의례 방송’이 나오면 걸음을 멈추라 했지요. 자동차도 멈추라 했어요. 모두 다 멈추어서 ‘국민의례 방송’이 나오는 쪽으로 몸을 돌려서 반듯한 ‘차려’ 몸짓을 하고 끝까지 기다리라고 했어요.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을 보면 ‘길거리에서 국민의례 방송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하는 사람들’ 모습이 나와요. 어느 학생은 이 방송 때문에 꼼짝없이 멈추느라 버스를 놓치고, 어느 학생은 이 방송이 나와도 헐레벌떡 달려서 버스를 타는 대목이 나오지요.


  이 국민의례 방송은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서슬퍼렇고 무시무시한 정치권력이 칼춤을 추던 때에만 흐르지 않았어요. 내가 국민학생으로서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도, 서울에서 올림픽을 한다던 그무렵까지도 어김없이 흘렀어요.



국민학교와 국민과는 ‘황국신민교육’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전후 일본에서는 곧바로 국민과가 폐지되고 국민학교의 명칭이 이전의 소학교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학국에서는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계속 사용되었다. 종종 국민학교가 황국신민을 길러내는 학교라는 의미이므로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다. ‘국민’이라는 말 자체가 나쁜 의미가 아니며, ‘국민학교’를 다른 이름으로 바꿀 경우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등 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 때문이었다. (22쪽)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은 “국민을 받들겠다”, “국민과 소통하겠다”, “국민을 무서워하겠다” 같은 말을 쏟아낸다. 여기에서 ‘국민’은 국가, 즉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신민이 아니라, 국가, 즉 권력자가 받들어야 하는 존재이다. 역사에서 국민은 실제로 그런 존재가 아니었지만,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가장했다. 실제로는 ‘국가(권력)에 충성하는 국민’으로 길러내기를 원하지만 겉으로는 ‘권력자가 봉사를 하겠다는 국민’으로 포장하였다. (35쪽)



  1996년부터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내리고 ‘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 고쳐서 써요. 학교 이름을 바꾸면 ‘사회적 비용’이 크다고도 했지만, ‘사회 비용’보다 ‘잘못 길든 사회의식’이 그대로 굳어버리는 생채기가 훨씬 크다고 여길 만하리라 느껴요. 생각해 보면, 큰 회사나 정당도 ‘꽤 많은 돈’이 들더라도 이름을 흔히 바꾸어요. 돈이 대수롭기보다는 ‘이름에 얽힌 숨결’이 대수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한국 정치나 사회는 여러모로 얄궂어요. ‘국민학교’라는 이름에서 ‘국민’이라는 이름은 바로 ‘황국신민’을 가리키는 그 ‘국민’이라서 학교 이름을 ‘국민’이 아닌 ‘초등’으로 바꾸었는데, 학교 이름 한 군데만 바꾸었을 뿐, 다른 자리에서는 그대로 ‘국민’이라는 이름을 쓰거든요.


  학교 이름에서만 바꿀 ‘국민’이었다면, 다른 자리에서는 도무지 ‘국민’이라는 이름을 떨쳐 버리거나 없애 버리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학교 이름도 그냥 그대로 둘 노릇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국민’이라는 이름하고 얽힌 슬프고 끔찍하며 아픈 생채기가 있더라도, 오늘날에는 이 이름을 새롭고 아름답게 쓸 수 있다는 씩씩함하고 슬기를 보여줄 수도 있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를 쓴 김한종 님이 밝히듯이, 한국 정치와 사회는 ‘국가(권력)에 충성하는 국민(35쪽)’을 바라기 때문에 학교 이름은 어쩔 수 없이 바꾸었지만 이곳저곳에 아주 쉽고 흔하게 ‘국민’이라는 낱말을 쓰는 셈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역사교과서를 나라에서 함부로 쥐락펴락하려는 뜻을 보이기도 할 테고요.



이승만은 서구적 합리성을 토대로 하는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한국식의 가주방제적 권위를 유지하려고 했다. 대통으로서 펼치는 적절한 정책보다는 ‘독립운동가’라는 권위로 국민의 지지를 받기를 원했다. 이승만은 ‘대통령’이라는 공식 직함보다 자신의 이름 뒤에 ‘박사’라는 직함을 더 즐겨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0쪽)



  인문책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는 한국 근현대사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정치와 사회’가 역사를 놓고 어떻게 ‘권력 지키기’를 하려고 했는가를 찬찬히 짚습니다. 정치와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자’가 ‘역사교육’이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어떤 꿍꿍이와 속셈을 드러내려 했는가를 차근차근 밝혀요.


  왜 ‘이승만 박사’라는 이름이 널리 퍼졌는지 짚고, 왜 ‘국민교육헌장’이 불거졌는가 밝히며, ‘홍익인간’이라든지 ‘신사임당·이순신 우상화’가 왜 나타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실마리를 풀려고 합니다.


  참말로 ‘국민교육헌장’에도 ‘국민’이라는 이름이 나오네요. ‘국민연금’이라든지 ‘국민건강보험’이나 ‘국민신문고’ 같은 데에도 ‘국민’이라는 이름이 나와요.


  국민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이가 어른들한테 “‘국민’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나쁜 뜻이 담겼다고 하는데 왜 자꾸 ‘국민’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써요?” 하고 물어본다면, 우리 정치·사회를 이루는 어른들은 어린이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만한지 궁금합니다. 왜 우리 정치·사회를 이루는 어른들은 ‘국민’이 아닌 아름다우며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이름을 새롭게 찾아내거나 생각하지 못할까요? 2016.4.27.물.ㅅㄴㄹ



박정희 정부의 정책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국민교육헌장을 이용했다. 새마을정신이 국민교육헌장의 정신이라거나, 유신정신이 국민교육헌장의 정신이라는 식이었다. 국민정신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국민교육헌장이 정권을 유지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189쪽)


(최종규/숲노래 -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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