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사랑한 소년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23
나탈리 민 글.그림, 바람숲아이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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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50



익숙한 것을 버리며 꿈과 사랑을 찾는 아이

― 숲을 사랑한 소년

 나탈리 민 글·그림

 바람숲아이 옮김

 한울림어린이 펴냄, 2015.11.13. 13000원



  아이들은 저마다 자랍니다.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결에 맞추어 차근차근 자랍니다. 한 어버이한테서 태어난 아이라도 똑같은 아이가 없기 마련이니, 모든 아이는 다 다르게 자라기 마련인데, 이 대목을 쉬 잊는 어른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를 거의 똑같이 다루어요.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교과서를 펼치도록 합니다. 똑같은 수업을 똑같은 시간에 받도록 하면서 똑같은 지식을 똑같이 외워서 똑같이 점수가 잘 나오도록 이끌어요.


  학교에서 직업교육을 시킬 적에 ‘모두 똑같은 직업을 고르’도록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모두 같은 일자리를 찾으려 한다면 그만 우리 사회는 무너질 테니까요. 사회를 이루려면 모든 아이가 저마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해요.


  다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을 아이들이라면, 다 다른 일자리에 맞추어 다 다른 살림을 익히고 다 다른 솜씨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 대목을 찬찬히 살펴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이끌 만한 얼거리를 찾아보기가 어렵구나 싶어요.



숲 속의 소년은 나무 그늘 밖으로 나갈까 말까 망설였어요. 이윽고 소년은 한 발짝씩 내디뎌 빛을 머금고 자란 새빨간 꽃을 몇 송이 땄어요. 그리고 친구를 기다렸어요. 바로 마을의 소년이었죠. (3쪽)



  나탈리 민 님이 빚은 그림책 《숲을 사랑한 소년》(한울림어린이,2015)을 읽으면서 ‘다 다른 아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에는 두 아이가 나와요. 한 아이는 ‘숲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이고, 다른 한 아이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예요. 숲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는 숲을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하는데 언제나 ‘다른 동무’를 그립니다. 숲이 아닌 마을만 바라보면서 동무를 기다린다고 할 만해요.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는 딱히 ‘숲 아이’를 그리지 않습니다. 숲 아이를 만나러 숲으로 찾아가기는 하지만, 마을에 다른 동무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숲 아이’는 ‘혼자 따로 떨어진 아이’라고 할 만합니다. 혼자 태어나서 혼자 자라고 혼자 살며 혼자 노는 아이라고 할 만해요. 이러다가 ‘마을 아이’를 만나면서 ‘마을살이를 그리는 마음’을 키워요.



친구는 다시 마을로 돌아갔어요. 그제야 숲 속의 소년은 알게 되었어요. 친구도 자신처럼 나무 이파리들의 가냘픈 숨소리, 날아오르는 새들의 지저귐 같은 해질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요. 그 순간, 숲은 소년에게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선물해 주었어요. (21쪽)



  그림책 《숲을 사랑한 소년》을 ‘숲·마을’ 두 얼거리로 살핀다면, 먼저 ‘숲 아이’는 동무를 숲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어요. 올빼미도 꽃도 다람쥐도 여우도 새도 모두 동무일 테니까요. 숲에 사는 모든 목숨은 숲동무이자 숲이웃이에요. 그런데 숲 아이는 다른 목숨을 동무나 이웃으로 느끼거나 생각하지 못했다고 나와요.


  ‘마을 아이’는 마을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하고 다른 숲 아이를 만나면서 이 아이한테 끌립니다. 마을 아이는 숲 아이한테 다가가면서 숲 아이처럼 ‘숲을 읽는 마음’을 키워요.


  틀림없는 일이리라 보는데, 모든 마을 아이가 ‘숲 아이하고 동무가 된 마을 아이’처럼 숲을 읽는 마음이 되었으리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숲 아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숲으로 늘 찾아와서 함께 노는 동무가 되었기에, 오직 이 한 마을 아이만큼은 숲 아이처럼 숲을 느끼고 읽으며 즐길 수 있었구나 싶어요.



날이 밝았어요. 또다시 찾아온 여름날, 소년은 숲을 떠났어요. 눈부신 햇살 아래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소년을 배웅해 주었지요. 그날은 소년에게 가장 멋진 날이었어요. 마을로 내려가 친구를 만나게 될 테니까요. (24쪽)



  숲에서 살면서 숲을 더 깊이 사귀지 못한다면, 숲 아이는 숲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숲에서 살며 마을만 그리니 마을로 갈 수밖에 없겠지요. 그림책 《숲을 사랑한 소년》을 읽으며 한 번 거꾸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숲 아이가 아닌 마을 아이가 ‘마을을 떠나서 숲으로 갈’ 수 있었을까 하고요. 숲 아이는 어쨌든 동무를 찾아나서려고 제가 태어나고 자란 ‘모든 바탕’인 숲을 씩씩하게 떠나요. 앞으로 새로운 살림을 짓겠다는 꿈으로 ‘포근하고 아늑한 숲’에 아쉬움을 남기지 않아요.


  그림책 《숲을 사랑한 소년》은 책이름 그대로 ‘숲을 돌보고 아끼고 가꾸는 아이’가 나오는 줄거리가 아닙니다. ‘숲·마을’ 두 갈래로 어떤 이야기를 빗대어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이를테면 ‘자라는 아픔(성장통)’을 다룬다고 할 수 있고, 아이가 철이 들면서 어른이 되는 징검돌에서 ‘새롭게 한 발 내디디’려면, 예전 자리를 말끔히 털고 그야말로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는 대목을 밝히려 했구나 하고 느낍니다.


  다시 말하자면, 숲을 잘 알고 숲에서 태어났으며 숲에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꿈을 마음에 담아서 키울 적에는 가장 익숙한 숲을 떠날 줄 알아야 한다는 ‘어른으로 크는 이야기(성장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만해요.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르게 마음앓이하고 몸앓이를 하며 자라겠지요. 똑같은 나이에 똑같이 겪거나 치르닌 마음앓이·몸앓이가 아니라, 다 다른 꿈과 삶과 살림과 사랑에 따라 다 다르게 찾아와서 맞닥뜨리고 받아들이는 마음앓이·몸앓이가 되겠지요.


  익숙한 것을 버리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어른으로서도 익숙한 것을 버리기는 참말 쉽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익숙한 몸짓을 버릴 수 있을 때에 새로운 마음이 된다고 느끼요. 익숙하게 이어온 버릇, 늘 똑같이 이어온 버릇을 내려놓을 때에 새롭게 거듭나는 살림으로 나아가리라 느껴요. 숲을 사랑하는 아이는 숲에서 떠나며 숲을 새롭게 사랑하는 길을 익힐 테고,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며 마을을 사랑하는 아이도 앞으로 숲 아이하고 어울려 지내면서 마을과 숲을 새롭게 사랑하는 길을 배울 테지요. 다 다른 아이들이 한마음이 되면서도 서로 다른 숨결을 곱게 돌보는 길을 헤아리면서 그림책 《숲을 사랑한 소년》을 조용히 덮습니다. 2016.4.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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