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 - 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24
고성국 지음 / 철수와영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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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27



서로 ‘한마음’이 되려고 ‘이야기’를 해요

―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

 고성국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6.4.19. 12000원



  우리 집 아이들은 요즈음 아침에 일어나서 간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가 하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 꿈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간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떠오를 듯 말 듯하면서 안 떠오르면 그만두고, 그림으로 그릴 수 있듯이 떠오르면 신나게 이야기합니다.


  밭을 일구어 씨앗을 심으면서 서로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어떤 씨앗을 심느냐고 묻고, 나는 어떤 씨앗인가 하고 이름을 말한 뒤에 이 씨앗들이 싹이 트는 모습을 날마다 꾸준히 지켜보아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우리 사랑을 모아서 씨앗을 심어서 돌보자고 이야기해요.


  아직 잘 모르기에 묻습니다. 먼저 겪어서 알기에 알려줍니다. 아직 서로 잘 모르지만 말을 한 마디 두 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조금씩 실타래를 풉니다. 궁금한 대목을 한 꺼풀씩 벗기다 보면 어느새 수수께끼를 환하게 풀곤 합니다.



아이가 다시 묻지요. “꽃이 뭐야?” 대부분의 어른들은 여기에서 막힙니다. 어려운 질문이 아닌데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꽃의 본질에 대해 몰라서일 수도 있어요. 아이가 유도하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아이의 질문을 통해 자신이 ‘꽃’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 혹은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22쪽)



  고성국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철수와영희,2016)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늘 말을 하는데, 이 말하기를 깊이 헤아릴 겨를이 없기도 합니다. 바쁠 적에는 얼렁뚱땅 말하고 지나가요.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이것저것 차근차근 이야기를 못 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학교를 헤아려 봅니다. 학교에서는 으레 교사 한 사람이 말을 이끕니다. 아무리 한 학급이 작더라도, 스무 아이가 저마다 한 마디씩 1분만 말하더라도 수업 진도를 나갈 수 없겠지요. 다시 말해서, 오늘날 학교 얼거리에서 아이들은 수업을 받는 내내 거의 입을 다물며 지내야 한다는 뜻이고, 어쩌다가 한두 마디를 곁들일 뿐이라는 뜻이며, 교사가 혼자서 신나게 말하는 얼거리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길게 말해야 한다면 교과서에 담긴 지식을 알려주기에는 수월해요. 그렇지만 서로 말을 섞지 않은 채 한 사람이 내처 말하기 때문에 ‘다 다른 아이들이 얼마나 잘 알아들었는가’를 살피기 어렵습니다. 몇몇 아이들로서는 잘 모르겠구나 싶은 대목이 나와도 어쨌든 진도를 나가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은 다름을 전제로 합니다. 다른 생각, 다른 감성을 가진 사람에게 내 생각, 내 느낌, 내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다시 말해, 말은 상대의 생각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고 상대의 느낌과 감성을 나의 것과 일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닏. (63쪽)


말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상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상대의 생각과 감성과 정서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64쪽)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을 쓴 고성국 님은 ‘말을 하는 까닭’을 찬찬히 풀어냅니다. 나 혼자 떠들려고 말하지는 않는다고 밝혀요. 내 마음을 밝히되, 나도 네 마음을 들으려고 말을 한다고 밝혀요. 그러니까 ‘혼잣말’이 아닌 ‘이야기’가 되려면, 나는 차분히 내 생각을 밝히고 너도 차분히 네 생각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너는 내가 말하는 동안 가만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나는 네가 말하는 사이에 가만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겠지요.



상대를 잘 알아야 내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안다는 것,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합니다. (81쪽)


대화는 같이 느끼는 것입니다.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90쪽)



  그러면 우리는 왜 말을 섞으면서 이야기를 이루려 할까요? 왜 한 사람이 떠드는 얼거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골고루 말하는 얼거리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일까요? 바로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살림을 짓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함께 보살피고 아끼는 삶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서로서로 마음을 알고 생각을 읽으려고 말을 섞어요. 서로서로 사람됨을 헤아리고 사랑하는 길을 찾으려고 말을 나누어요.


  함께 느끼려는 이야기이고, 함께 알려는 이야기입니다.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서, 함께 생각을 새롭게 가꾸려는 이야기예요.



이기는 게 토론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억지로 내 주장이 관철되었다고 한들 누구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공감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124쪽)


여러분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순간 세상이 열립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음악과 시와 그림에 평생을 매달리는 이유예요. (140쪽)



  ‘토론(討論)’이라는 한자말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각각 의견을 말하며 논의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논의(論議)’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내어 토의함”을 뜻한다고 해요. ‘토의(討議)’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검토하고 협의함”을 뜻한다 하고, ‘협의(協議)’는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 의논함”을 뜻한다 하며, ‘의논(議論)’은 “어떤 일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음”을 뜻한다 합니다. 마지막으로 ‘의견(意見)’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생각”을 뜻해요. 한국말사전에 실린 말풀이를 찾느라 길어졌는데, ‘토론 = 논의 = 토의 = 협의 = 의논 = 의견 주고받음 = 생각 주고받음’인 얼거리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토론·논의·토의·협의·의논’ 같은 한자말을 두루 씁니다만, 어느 한자말이든 “생각 나누기”를 가리키는 셈이에요.


  그러니까,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을 쓴 고성국 님이 밝히듯이, “토론을 하는 까닭은 이기려는 뜻이 아니다”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기거나 지려고 토론을 하지 않습니다. 이기거나 지려는 뜻이라면 ‘말싸움·말다툼’이라고 하는 ‘논쟁’을 하겠지요.


  생각을 나누려 하기에 서로 아끼는 마음이 돼요. 생각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에 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돼요.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 아끼는 동안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생각을 주고받는 사이로 지내는 동안 마을이 아름답게 거듭나고 두레나 품앗이도 즐겁게 이루어요.


  우리는 서로 ‘한마음’이 되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말’이란 바로 우리가 서로 한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사랑을 꽃피우도록 북돋우는 멋진 징검돌이지 싶습니다. 2016.4.1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청소년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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