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은 말 - 시인의 일상어사전
권혁웅 지음, 김수옥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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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45



나이도 모르면서 “너 몇 학번이야?”라는 반말

― 외롭지 않은 말

 권혁웅 글

 마음산책 펴냄, 2016.3.25. 13000원



  오늘 나는 시골에서 살지만, 아직 도시에서 살던 무렵을 문득 떠올려 봅니다. 도시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으레 나한테 이렇게 묻습니다. “몇 학번이시지요?” 그러면 나는 언제나처럼 “저는 대학교를 안 나왔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학번을 묻는 분은 다시 “아내 분은 몇 학번이시지요?” 하고도 묻기 마련입니다. 이때에 나는 다시금 “곁님은 고등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학번 숫자하고 어느 대학교를 나왔는지 궁금해 하던 사람은 멋쩍은지 한동안 말이 없습니다. 이른바 ‘접점’이라고 하는 서로 이어질 만한 끈이 없는 이 사람들은 뭔가 하고 여기는 투입니다. ‘한놈은 대학교를 안 나왔고 한놈은 고졸도 아닌 고퇴라고?’ 하고 여길는지도 모릅니다.



귀요미도 이런 용어다. ‘그녀가 귀엽다’는 것은 그녀가 ‘예쁘고 곱고 애교가 있어서 사랑스럽다’는 뜻이지만, 그것은 사실 그녀에게 속한 속성이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내가 부여한 속성이다. (29쪽)


변한 건 당신이다. 기억은 마모 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형상을 깎아낸다. (47쪽)



  시를 쓰는 권혁웅 님이 쓴 《외롭지 않은 말》(마음산책,2016)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에는 ‘시인의 일상어사전’이라는 이름이 더 붙습니다. 권혁웅 시인 나름대로 ‘한국 사회 유행말’을 풀이해서 들려주는 이야기꾸러미예요. 이를테면 ‘교회 오빠’나 ‘친구 누나’나 ‘귀요미’나 ‘꿀벅지’나 ‘넘사벽’이나 ‘먹방’이나 ‘모태솔로’ 같은 말을 두고서 사회에서 주고받는 생각을 슬쩍 짚다가는 시인 나름대로 생각한 이야기를 곁들입니다. ‘네가 처음이야’나 ‘나 요즘 살쪘지’나 ‘너 몇 학번이야’나 ‘늙으면 죽어야지’나 ‘방법이 없네’나 ‘언제 밥 한번 먹자’ 같은 말이 겉뜻하고 속뜻이 얼마나 벌어지는가 하는 대목을 짓궂거나 재미나거나 의뭉스럽게 건드립니다.



여자가 나 잡아봐라, 하고 외친다고 해서 남자가 아무 여자나 추격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가 빛일 때에만, 그러니까 빛의 속도로 달아날 때에만 남자는 슬로모션으로 그녀를 따르기 시작한다. (50쪽)


안타깝게도 ‘높임’이란 ‘낮춤’과 한 짝이어서 우리말에는 존대만큼이나 하대가 발달했다. 신분제 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 말싸움의 결론이 늘 “당신 몇 살이야?”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며, 이것이 학벌과 결합해서 나온 말이 “너 몇 학번이야?”다. “학번이 깡패다”라는 단정과 짝을 이룬 말이지만 실은 이상한 질문이다. 몇 학번인지도 모르면서 왜 처음부터 반말일까? (62, 63쪽)



  여러 가지 이야기 가운데 ‘너 몇 학번이야’ 같은 말을 다루는 대목에서 쓰겁게 웃습니다. 권혁웅 님 말마따나 한국 사회는 아직 신분이나 계급으로 갈린 얼거리입니다. 그래서 높임말 못지않게 낮춤말이 발돋움했어요. 이를테면 한자말 ‘변’은 높임말로 여기고 ‘똥’은 낮춤말로 여기지요. 한자말 ‘식사’도 높임말로 여기면서 ‘밥’은 낮춤말이라도 되는 듯이 여겨요. 회사나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과장이나 부장이나 사장쯤 되는 분들은 ‘밥’을 먹지 않아요. 언제나 ‘식사’만 하시지요.


  그나저나 나이가 몇 살인지도, 학번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왜 처음부터 반말”로 “너 몇 학번이야?” 하고 묻는 사람이 많을까요? 왜 나이도 아닌 학벌까지 앞세우면서 목소리를 높이려고 할까요? 그나마 학번이라도 있으면 한숨을 돌리고, 학번조차 없으면 ‘대학교도 못 나온 놈’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오, 각선미 죽이는데? 가슴이 좀 작군. 입술이 섹시해. 남자들은 늘 이렇게 여성들을 대상화해 왔다. 그런데 그 각선미 죽이는 아가씨가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던 거다. 난 루저라고. (96쪽)


‘요즘은 자꾸 빨간 게 좋아’서, 2016년 현재 여당마저도 빨간 옷을 입고 다닌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색맹들께서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렇게 말한다. 종북, 종북, 종북. 정신의 딸꾹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131∼132쪽)



  재미나면서도 의뭉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권혁웅 님은 2016년 오늘날 ‘빨갛게 물든 옷’을 입고서 허리를 깊게 숙여서 절을 하는 여당 정치꾼 이야기를 살며시 섞습니다. 왜 한입으로는 ‘빨갱이’나 ‘종북’을 외치면서, 왜 한손에는 ‘빨갱이 옷’을 걸치고 ‘빨갱이 깃발’을 펄럭일까요? 참말로 “정신의 딸꾹질”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런 딸꾹질은 어쩔 수 없는 우리 사회 모습일는지 몰라요. ‘차카게 살자(착하게 살자)’ 같은 말이라든지 ‘바르게 살기’ 같은 말은 착함이나 바름하고는 동떨어진 자리에서 흔히 쓰이거든요. 착하게 살기로 하지 않으면서 ‘착함’을 외치는 사회요, 바르게 살지 않으면서 ‘바름’을 사람들한테 윽박지른 정치이니까요.



〈우정의 무대〉는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모아서 만든 이상한 극장이다. 프로그램 제목이 내세우는 덕목은 ‘우정’이며, 사회자가 경례할 때 내세우는 구호는 ‘충성’인데, 무대 위의 공연이 보여주는 콘셉트는 ‘섹시’이고,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요구되는 감정은 ‘모성애’다. 거기에 홍보 영상 속 사병들이 내보이는 저 눈빛은 적의 어떤 도발에도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살기’다. (224∼225쪽)



  어제 낮에 큰아이하고 밭뙈기를 일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반장 선거를 할 적에 으레 ‘1등이 반장’이라면 ‘2등이 부반장’을 맡습니다. 반장 선거는 다른 말로는 ‘부반장 선거’이기도 해요. 그리고, 이 선거에 나온 모든 아이들이 으레 ‘총무부장’이든 ‘청소부장’이든 뭔가 하나씩 맡기 마련이에요.


  이런 얼거리처럼 나라에서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군수를 뽑을 적에 ‘1등만 뽑지’ 말고, 2등도 3등도 4등도 모두 나라살림을 함께 맡도록 자리를 나눈다면 어떠할까 싶더군요. 이를테면 51:49로 한 사람이 붙고 한 사람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셔요. 51로 붙은 사람만 일을 하기보다는, 51인 사람은 ‘반장’ 노릇을, 49인 사람은 ‘부반장’ 노릇으로 서로 도우면서 일을 할 적에 나라살림이 아늑하면서 다툼도 가시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만히 본다면 오늘날 선거는 민주 제도이기는 하지만 다른 모습으로는 ‘1등 뽑기’이기도 합니다.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안 되고 말아요. 우리 사회가 보이는 모습은 바로 ‘1등주의’에 ‘성적주의’에 ‘경제개발주의’이거든요.


  먼저 심은 씨앗도 나중 심은 씨앗도 함께 돋고, 오늘 심은 씨앗도 어제 심은 씨앗도 모두 돋아요. 어버이도 씨앗을 심고 아이들도 씨앗을 심어요. 함께 기쁨으로 짓는 살림이 되고, 서로 사랑으로 나누는 말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오늘도 아이들하고 밭을 더 일구려 합니다. 시골은 온통 봄일로 바쁜 사월 한복판입니다. 바쁜 봄철이라서 국회의원 뽑는 일은 ‘미리’ 느긋하게 했습니다. 2016.4.1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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