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이야기 8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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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17



아이들이 입을 옷을 그리며 살림을 짓다

― 신부 이야기 8

 모리 카오루 글·그림

 김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6.3.30. 7500원



  요즈음 들어 큰아이는 새롭게 뜨개질에 눈을 뜹니다. 지난해에 어머니한테서 코를 잡는 뜨개질을 익히기는 했는데 얼마 못 가서 다른 놀이에 빠져서 코잡기를 어느새 잊었어요. 이러다가 요즈음 들어서 다시 뜨개바늘을 손에 쥡니다. 어머니가 실을 엮고 속에 솜을 채운 ‘집인형(수제인형)’을 지어서 선물했기 때문입니다. 큰아이는 어머니가 여러 날에 걸쳐서 한 코 두 코 찬찬히 떠서 지은 뜨개인형을 보고는 아주 반했어요. 작은아이도 이 뜨개인형에 몹시 반한 나머지, 어디를 가든 꼭 뜨개인형을 챙깁니다. 이리하여 큰아이는 다시 뜨개바늘을 손에 쥐면서 실엮기부터 합니다. 인형한테 줄 목도리를 조그맣게 뜨고, 아이 손에 끼울 가락지를 신나게 떠요.



“싫어하지는 않지만, 생각대로 잘 안 되니까, 자꾸 짜증이 나서!” “새를 자수로 놓으면 즐거워요!” “아, 네, 그렇군요.” (48쪽)


“어머니가 되면 가족을 부양하니 모든 일에 책임을 가져야만 하지. 태어날 아이에게 입혀 준다는 생각으로 해 보거라.” “아이.” “응? 상상이 안 가느냐?” “그럼 누군가 가까운 사람을 생각하며 수를 놓아 봐.” “그게 더 잘 될 게다.” (53쪽)



  모리 카오루 님이 빚은 만화책 《신부 이야기》(대원씨아이,2016) 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19세기 중앙아시아를 터전으로 삼아서 이야기를 펼치는 만화책입니다. 이 만화책을 그리는 분들(작가와 도움이 모두)은 참으로 ‘죽어 나겠네’ 하고 느끼면서 읽는 만화책입니다. 왜냐하면, 이 만화책에 나오는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입는 옷은 모두 ‘손으로 바느질을 해서 무늬를 박은 옷’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든 배경에 나오는 사람이든 모두 ‘손바느질로 무늬를 알뜰히 넣은 옷’을 입는 사람들만 나오니까, 한 칸을 그리려고 해도 여러 사람이 수없이 그리고 다시 그려야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만화책 《신부 이야기》 여덟째 권에서는 ‘파미르’라는 아가씨가 주인공이 됩니다. 아직 ‘신부’는 아니지만 앞으로 ‘신부가 될 아가씨’이지요. 그런데 이 아가씨는 ‘가시내는 모두 손바느질로 옷이며 옷감이며 깔개며 이불이며 살림이며 떠야 하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랐건만, 뜨개질 솜씨가 영 시원찮습니다. 빵반죽은 무척 훌륭히 잘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차분히 바늘을 놀리는 데에는 아주 서툴어요.



‘뭐, 그대로 하라는 말씀은 없었으니까, 슬쩍 비슷하게 하면 되겠지.’ “간단히 때울 생각만 하다간, 언제까지고 늘지 않을 게다.” (79쪽)


“정말 예뻐요.” “하지만, 아직도 많이 남았는걸요.” “뭐, 처음에만 힘들 뿐이지. 한 번 할 수 있게 되면 그 후로는 점점 편해지거든. 게다가 말이다, 이런 건 매일 쓰는 물건이야. 볼 때마다 참 잘 만들었구나, 생각할 수 있어서 좋지 않으냐.” (91쪽)



  바느질을 하는 젊은 아가씨가 나오는 만화책을 읽다가 우리 아이들을 문득 바라봅니다. 한 코 두 코 잡으면서 실을 엮어서 뜨개질을 익히려는 손놀림을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실가락지일 뿐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실가락지가 발판이 되어 앞으로 깔개도 뜰 수 있고, 목도리도 인형도 뜰 수 있겠지요. 스스로 입을 옷도 스스로 뜰 수 있을 테고요.


  나도 어릴 적에 국민학교를 다니며 실과 수업에서 뜨개질을 했습니다. 다만, 실과 수업을 하던 학기에만 한 달 즈음 하고 그쳤을 뿐이에요. 교과서에 나온 수업이었으니 1980년대 학교에서도 열 살 안팎 아이들이 뜨개질을 배웠어요. 학교 앞 문방구에서 대바늘도 팔고 실도 팔았어요.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목도리나 장갑이나 양말쯤은 으레 ‘집옷’으로 떠서 입곤 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50년대 무렵이라면 ‘옷을 사서 입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으리라 느껴요.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00년대 첫무렵이라든지 1800년대라 한다면, 누구나 제 옷은 제가 스스로 지어서 입었어요.


  여기에서 더 헤아리면, 지난날에는 뜨개질이나 바느질만 스스로 하지 않았습니다. 천뿐 아니라 실까지 손수 얻었어요. 풀줄기에서 섬유질을 뽑아낸 뒤에, 이 섬유질을 말리고 다스려서 물레를 잣지요. 물레를 자은 뒤에는 베틀을 밟아요. 베틀을 밟아서 천을 짜고 나서야 비로소 바느질을 해요.



‘이대로는 안 돼. 무슨 수를 써야 해! 나는, 성격을 바꾸겠어. 나는 나의 이상형인 내가 되겠어.’ (168쪽)



  나는 오늘 어버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옷을 손수 지어서 아이들한테 입히지 못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에 뜨개옷을 제법 지어서 입혔습니다. 이러다가 옷짓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나중에는 그냥 사서 입자고 하셨어요.


  나는 사내로 태어났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옷을 손수 지어서 입자는 생각을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돈을 들여서 사서 입으면 되고, 아니면 이웃한테서 물려받아서 입으면 되리라 여겼어요. 화학섬유로 공장에서 찍은 옷인지, 아니면 들에서 자란 풀에서 얻은 실로 손수 짓는 옷인지 제대로 가리지도 못하면서 살았어요.


  아이들이 입을 옷을 그리며 살림을 짓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들이 늘 손으로 만지면서 놀 인형을 어떻게 지을 때에 즐거울까요. 좋은 옷이나 인형을 ‘돈을 넉넉히 벌어서 사서 쓰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실을 풀줄기에서 섬유질로 얻어서 물레도 잣거나 베틀도 밟는 길까지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실하고 바늘을 장만해서 뜨개질이나 바느질은 할 수 있습니다. 뜨개질하고 바느질부터 하나씩 제대로 새롭게 익힐 수 있습니다. 아이하고 어버이가 처음부터 모두 새롭게 배운다는 마음으로 옷짓기를 할 수 있습니다.


  만화책 《신부 이야기》에 나오는 파미르 아가씨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새롭게 바느질을 하려고 애쓰듯이, 파미르 아가씨가 스스로 ‘새로운 나’로 거듭나려고 하듯이, 나도 올해부터 새로운 살림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많이 서툴고 모자라기에 돈으로 사서 써야 할 일도 있을 텐데, 아직 많이 서툴고 모자라더라도 손으로 기쁘게 지어서 쓰는 살림으로 나아가자고 다짐합니다. 2016.4.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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