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기를 권함 - 2004년 2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샨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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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이름 : 천천히 읽기를 권함
 - 지은이 : 야마무라 오사무
 - 옮긴이 : 송태욱
 - 펴낸곳 : 샨티(2003.11.11)
 - 책값 : 8000원


 "천천히 읽기"는 좋은 읽기법
 - 책을 좀더 즐겁게 읽기


 <1> '다치바나 다카시'와 견주는 책


 ..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한 쪽 읽
 는 데 1초, 좀 늦더라도 2,3초'라는 읽기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
 은 불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굳이 심신에 무리를 주면서라도 훈련
 을 거듭하면 나한테도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책을 그렇게나 빠른 속도로 읽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것을 모르겠
 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내가 읽은 재미있는 책, 엉터리 책 그리고 나
 의 대량 독서술, 경이의 독서술>은 서평집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예로 들고 있는 책 가운데 5분이나 15분에 읽어버리고 싶은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매력이 있을 것 같은 책이라면 여느 때처럼 느
 릿느릿 읽고,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손에 들지
 않는다 ..   <18쪽>


 어느 일본 작가가 쓴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란 책을 보름에 걸쳐서 다 읽었습니다. 그 뒤로 닷새 동안 이 책에 담은 줄거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빨려들듯 읽던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라 하루 만에 1/3을 읽었고, 이틀 만에 절반을 넘겼는데, 그 뒤로는 어쩐지 지루하고 느슨해진 느낌에 책을 놓았고, 열흘 동안 들춰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책을 잡은 뒤 사흘 동안 나머지를 다 읽었습니다.

 <천천히 읽기를 권함>을 지은 야마무라 오사무는 '다치바나 다카시'를 비판하고자 이 책을 쓰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다만 다치바나처럼 '많이 빨리 읽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뜻과 소중함이 있겠으나, 자기 같은 사람에게는 '적게 천천히 읽는 일'이 더 알맞아 보이며, 책이 지닌 모든 것을 감동으로 받아들이지만 '빠르기'에 너무 매달리거나 얽매이지 말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문을 열어요.

 야마무라 오사무는 책 앞에 이렇게 묻습니다. "그들(다치바나 다카시)이 주장하고 권유하는 독서법은 그들 외에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일까? (19쪽)"


 <2> 천천히 읽는 까닭


 에밀 파게, 엔도 류키치, 헨리 밀러를 보기로 들며 "책은 감동을 느끼려고 읽기 때문"에 "빨리 읽어서 많은 지식을 얻는 것도 좋겠으"나 천천히 읽기를 말하는 야마무라 오사무. 저도 이런 생각이 참 옳다고 봅니다. 한 권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야금야금 밥을 먹듯 찬찬히 즐기는 맛이야말로 책 한 권을 알뜰히 즐기는 맛이라고 보아요. 때로는 숨돌릴 틈 없이 읽어제끼기도 합니다. 추리소설이나 긴소설을 읽을 때는 줄거리와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에 빠져서 '작가마다 다른 문장과 글맛'을 건너뛸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런 문학도 나중에 차근차근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다시 읽으면 지난날 줄거리에만 푹 빠져서 읽던 때와는 사뭇 다른 감동이 다가와요. 이런 느낌을 야마무라 오사무는 '책과 몸과 마음이 어울리는 일'이라고 말해요.


 .. 눈이 글자를 좇아가다 보면 그에 따라 정경이 나타난다. 눈의
 활동이나 이해력의 활동이 다 갖추어진다. 그때는 아마 호흡도
 심장 박동도 아주 좋을 것이다. 그것이 읽는다는 것이다. 기분
 좋게 읽는 리듬을 타고 있을 때, 그 읽기는 읽는 사람 심신의 리
 듬이나 행복감과 호응한다. 독서란 책과 심신의 조화이다 .. <38쪽>


 그런데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란 책을 보며 한 가지 끊임없이 걸리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천천히'란 말이에요. '천천히'란 말은 "어떤 일을 할 때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느리게'란 말은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이고요. 그렇다면 "천천히 읽기"란 "시간이 오래 걸리도록 책을 읽는 일"이에요.

 자.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아요. 책을 읽는 빠르기는 섣불리 '빠르다-느리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읽는 빠르기는 제가 느끼기에 그저 그렇다고 볼 수 있으나 어떤 이에게는 '너무 빠르다'라 할 수 있고 '너무 느리다'고 할 수 있거든요. 우리 아내나 다른 동무들과 책을 함께 읽다 보면, 제가 아내나 다른 동무보다 책을 느리게 읽음을 느껴요. 한 쪽을 다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제가 더 깁니다. 하지만 저도 꽤나 빠르게 읽는 때도 있어요. '문장과 낱말을 보지 않으려'고요. 말을 만지고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책을 읽을 때에도 번역이 잘못되었거나 엉성하거나 창작이 우리 삶과 문화와는 어긋난 낱말과 문장을 만나면 읽기가 껄끄럽습니다. 그래서 문장이 덜된 글이지만 줄거리가 좋을 때에는 문장은 건너뛰면서 줄거리만 좇으며 읽어요. 이럴 때에는 책이 술술 읽히고 빨리 읽는 편입니다. 하지만 낱말 하나를 알뜰하고 골라 쓴 시나 좋은 문학을 즐길 때에는 참 느릿느릿 읽는 편이에요. 읽은 대목을 두어 번 곱읽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은 이름을 잘못 붙였다고 보아요. 어쩌면 번역을 할 때 좀더 헤아렸어야 옳다고 보는데, '천천히'가 아닌 '찬찬히'라 했어야 맞겠다고 보아요. '천천히'는 그저 "빠르기가 느리다"를 말하지만 '찬찬히'는 "꼼꼼하면서 차분하고 지긋하게"를 말해요. 어느 책을 읽어서 감동을 받고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아무래도 '천천히' 읽을 때보다는 '찬찬히', 그러니까 '차근차근' 읽을 때라고 봅니다. 지은이 야마무라 오사무가 말하는 읽기법도 '천천히'라기보다는 '알맞은 빠르기'인 만큼 "차분하고 꼼꼼하게 지긋하게"를 뜻하는 '찬찬히 읽기'가 더 좋다고 봅니다.


 <3> 책을 왜 읽는가?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 주는 아름다움 가운데 하나는 "책을 왜 읽는가?" 하고 스스로 묻고 스스로 풀이를 찾는 데에도 있습니다.


 .. 필요가 있어서 책을 읽을 때 나는 그것을 독서라고 생각하지 않
 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읽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펴본다'
 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참조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설령 한 권의 책을 읽고 기획서나 리포트를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경
 우가 있어도, 나에게는 그것을 두고 독서라고 말하는 그런 감각이
 없다. 물론 필요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띄엄띄엄 읽기도 하고 건너
 뛰며 읽기도 한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띄엄띄엄 다 읽고 난 뒤,
 나는 그것을 독서한 책의 권수로 세지 않는다. 나만이 아닐 것이다 .. <46쪽>


 이 대목은 참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고 보아요. 저는 이 대목에 별을 둘 그리고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독후감 쓰기 숙제'를 하고자 읽는 책도 '책읽기'라 말하고자 애를 쓴다면 책읽기에 들어가겠으나 실질로 우리 삶과 마음과 생각에 도움을 주고 감동을 주는 책읽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신문을 '읽는다'기보다 '본다'고 더 흔하게 말을 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도 '본다'가 더 가깝다고 하는 까닭도 이런 테두리에서 말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때그때 보고 사라지는 소식과 정보를 얻는 일이 얼마나 '감동'을 주며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느냐, 바로 이런 테두리에서 책을 읽는 까닭을 밝힌다고 보아요. 쓱쓱 훑으며 어떤 줄거리인지만 지식으로 익히는 게 아니라, 어떤 글 편, 노래 한 소절, 그림이나 사진 한 장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곰삭여서 즐기는 일이 될 때에야 비로소 '책읽기'라고 말할 수 있지 싶어요.

 야마무라 오사무는 언젠가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에 30분이라도 낮잠을 자야 한다고 쓴 신문 기사를 보고 웃고 만 적이 있다. (144쪽)"며 "한 달에 몇 권, 몇십 권 읽으라는 것도 얼빠진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물어요. 사람에 따라 낮잠을 안 자는 게 좋을 수 있고, 한 시간을 자야 알맞을 수 있거든요. 책도 한 해에 한 권 읽는 편이 알맞은 사람이 있고 만 권을 읽어도 모자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니, '책읽은 숫자'를 말하는 일은 우스개밖에 안 된다고 여깁니다.


 <4>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


 영화를 즐길 때 조금 빠르게 돌려서 2시간 30분짜리를 1시간 만에 본다면 어떨까요? 군데군데 가위질을 해서 30분 만에 본다면요? 노래를 들을 때 길어서 지루하다며 조금 빠르게 돌리면 어떨까요? 10분짜리 노래를 간주와 전주를 자르고 후렴도 잘라서 2분 만 돌리면요?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이란 어느 책 한 권을 자기 눈높이와 생각과 몸과 마음 상태에 알맞은 빠르기로 찬찬히 읽고 맛볼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책이 수백만 권, 아니 수억만 권도 넘게 있는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모든 책을 다 읽어낼 수 없어요. 책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알맞으면서 재미있고 즐겁고 살가우면서 아름다울 책을 추리고 골라서 읽을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좋습니다. '좋은 책'이라는 책 가운데 1000권을 빠르게 읽어제끼는 일도 나쁘지는 않지만, 10권이라도 차근차근 읽어서 제것으로 삼는다면, 또 그 작품에 깃든 모든 느낌과 이야기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헤아릴 수 있다면 더 나은 책읽기가 아닐까 모르겠어요.

 <천천히 읽기를 권함>은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차분하게 들려주는 한편, 저마다 가장 알맞은 빠르기로, '책 권수는 신경을 끄면서' 살자는 덕목을 펼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 책은 쪽수가 186쪽인데 빈자리가 무척 많습니다. '천천히 읽으라'고 빈자리를 많이 주었는지는 모를 일이나, '천천히 읽는' 일은 빈자리가 많다고 그리 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독자가 알아서 읽을 일입니다. 지나치게 많이 둔 빈자리를 줄였다면 186쪽밖에 안 되는 이 책은 120~130쪽이면 넉넉한 책이 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책값도 8000원이 아닌 6000원쯤만 해도 넉넉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이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만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책읽기법을 말하는 책인 만큼, 책을 꾸밀 때에도 이런 대목에서 한 번 더 생각했다면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책일 될 뻔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낯선 일본 작가 이야기가 끝없이 나오는데,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한국에는 낯선 일본 작가 소개와 작품 세계' 해설(각주)이 줄어듭니다. 아직 우리 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일본 작가라 하더라도 생판 낯선 사람들 이야기가 많은 책이라면 좀더 친절을 베풀으셨다면 더 나았으리라 보아요.

***
책읽기가 아직 서툴거나 낯선 분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는 책입니다. 책읽는 맛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느낄 수 있는가를 말하는 한편,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을 듬뿍 안기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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