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 타카의 일생
헨리 윌리엄슨 지음, 한성용 옮김 / 그물코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수달 타카의 일생
 - 지은이 : 헨리 윌리엄슨
 - 옮긴이 : 한성용
 - 펴낸곳 : 그물코(2002.7.5)
 - 책값 : 12000원


 수달에게도 삶이 있는가?
 - <수달 타카의 일생>을 읽고


 <1> 수달은 슬프다


 .. 데드락(사냥개)이 타콜(수달)의 다리를 물고 흔들어 공중으로
 던져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타콜이 다시 일어서려 할 때, 많은 턱
 들이 그의 몸을 물고, 머리를 박살냈으며, 그의 옆구리와 발, 꼬
 리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목초지에 피는 작은 해바라기들 사이에
 서 그의 몸은 밟히고 뒤틀리고 부서지면서 위로 들렸다 다시 떨어
 졌다. 사냥꾼들의 갈채와 환성이 집요하게 흔들어대며 으르렁거리
 는 사냥개들의 요란한 소리와 섞였다. 타콜은 눈이 멀고, 턱이 산
 산이 부서질 때까지 그들과 싸웠다 .. <349쪽>


 수달은 슬픕니다. 아픕니다. 힘듭니다. 괴롭습니다. 조용히 죽어가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수달뿐이겠습니까. 이 땅에서 범과 여우와 늑대와 이리와 사슴도 마찬가지 길을 걸었습니다. 들과 산에서 뛰노는 사슴이 없는 남녘땅입니다. 들과 산에 사슴이 있다면 채산이 맞지 않아 문을 닫아 버린 사슴농장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높은 울타리를 뛰어넘거나 무너뜨려서 '탈출'한 '고기사슴'이 있을 뿐입니다. 사슴은 사슴농장에서 탈출할 때 한 사슴 등을 받침대로 삼아 다른 사슴이 뛰어서 나오거나, 여러 사슴이 한꺼번에 몸을 울타리 벽에 부딪쳐서 울타리를 무너뜨린다고 합니다. 채산이 맞지 않아 사슴농장을 닫을 때 먹이를 안 주고 사슴을 굶겨죽인다는데, 먹을거리가 없어 죽음에 다다른 사슴은 마지막에 이렇게 안간힘을 쓰며 겨우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충주에서 일을 하며 들과 산에서 불쌍한 사슴을 자주 만납니다. 사슴농장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녀석들입니다. 사슴고기로 키우던 녀석들이라 덩치가 어른 둘을 더한 것만큼 큽니다. 하지만 사람을 어찌나 무서워하는지 모릅니다.

 불쌍한 사슴을 늘 보기 때문일까요? <수달 타카의 일생>이란 책을 읽으면서 가슴아픔과 씁쓸함이 내내 감돌았습니다. 1920년대 영국 어느 마을에서 있던 일을 아주 실감나게 그린 <수달 타카의 일생>은 '타카'라는 수달 한 마리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그런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결과에서 뚜렷하게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시달리는가를 꼼꼼하며 차근차근 담습니다.


 <2> 한국땅에서 거의 사라진 수달이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사냥개와 사냥꾼에게 시달리는 수달. 산속에서는 산림감시원이 놓는 덫과 총을 피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들판에서는 농부와 양치기 눈을 피하며 살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끈질기게 수달 사냥을 하는 사람들 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국땅에서는 어떨까요? 비슷합니다. 아직 몇 마리 남았으나 사람 눈길과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골짜기 깊숙한 곳에서 삽니다. 하지만 그런 깊숙한 곳까지도 기어들어오는 사냥꾼들 득달거림 때문에 늘 쫓겨다녀요. 세상에 가장 무서운 적인 사람들 때문에요.


 .. 덫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던 새끼는 덫을 땅에 박아두었던
 못을 뽑아냈고, 덫을 끌고 배수로 밖으로 나와 어린 나무들 사이
 로 느릿느릿 도망쳤다. 어미는 타카와 다른 새끼를 부르는 휘파람
 을 불었고 그들은 나무 덤불 아래에서 뛰어나와 어미 뒤를 따랐다.
 어미는 새끼들과 함께 작은 길을 달리다가, 검은딸기 덤불울 부수
 고 돌과 뿌리에 부딪혀 소리를 내는, 꼬리에 매달린 덫 때문에
 간신히 뒤따라오는 새끼에게 되돌아왔다. 꿩들은 몸을 숨기고 있
 던 나뭇가지에서 날아올랐고 지빠귀들도 거친 울음소리를 내며 감
 탕나무들 사이에서 날개를 쳤다. 검은딸기 덤불에서 내려앉은 굴
 뚝새와 울새 들은 높은 소리로 불평을 해댔다. 고슴도치들은 가시
 가 있는 공처럼 몸을 말았고, 들쥐들은 참나무 아래 말라죽은 이
 끼 옆에서 몸을 웅크렸다 .. <86쪽>


 <수달 타카의 일생>에는 수달을 비롯한 온갖 들짐승이 나오고 들풀과 나무와 꽃이 나옵니다. 산과 들과 물에서 살아가는 온갖 목숨붙이가 나와요. 풀은 풀대로, 짐승은 짐승대로 자기 목숨을 잇습니다. 수달도 뭇 목숨붙이 가운데 하나로 토끼도 잡아먹고 물오리도 잡아먹습니다. 여우에게 쫓기기도 하고 족제비와 다투다가 내빼기도 하며 까마귀에게 혼줄이 나기도 하는 수달입니다. 저마다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 함께 살아가는 짐승들이에요.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머리를 굴려서 무엇을 만들고, 자기들만 즐겁게 살아가려고 하면서 자연을 무너뜨리고 파헤칩니다. '개발'이란 허울좋은 이름을 내세우면서요. 뭇 목숨붙이가 함께 어우러지는 자연인데, 사람들은 멋대로 자연을 무너뜨리고 파헤쳐요. 그런데 파헤치는 사람은 파헤치는 대로, 파헤친 떡고물을 먹고사는 사람들은 또 그런 사람들대로 자연을 파헤치는 일이 나중에 무엇을 선사(?)할는지 생각하거나 알려 하지 않습니다.

 아. 이런 한국땅에서 수달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니 수달이라는 짐승이 있거나 말거나 우리들 사람 삶과는 아무런 인연도 상관도 없다고 보지 않나요? 아니 수달이 있기나 한지도 모르며,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그저 동물원에서 구경할 수 있으면 그뿐이라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보면 그만이라고 여겨 버리지는 않는지요.


 <3> 어우러지기에 아름다운 자연


 수달을 가까이에서 보지 않거나 못하기 때문에 수달을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어쩌다가 다치거나 아프면 부모나 자식이나 동무가 다치거나 아플 때처럼 걱정하며 돌보는 우리들이잖아요. 하지만 범이 죽고, 여우가 다치고, 다람쥐가 병에 걸리고, 수달이 덫에 치여 다리가 잘리고, 농약에 병든 물고기를 먹다가 왜가리와 두루미가 죽어가거나 도심지 시내에서 배기가스를 마시는 나무가 시커멓게 썩어들어가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 우리들이에요.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삶터와 너무 떨어진 곳으로 내쫓기며 사라지기 때문에 더더욱 들짐승이 살아갈 수 없는지 모릅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이라는 책은 어떤 풀이법을 말하지 않습니다. 짖궂을 뿐 아니라 나쁘기까지 한 사람에게 시달림을 받으며 온삶을 괴롭게 보내는 수달 이야기를 참 덤덤하게 펼칩니다. 그러면서 수달뿐 아니라 뭇짐승이, 또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지구라는 땅덩어리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죽고 또 되풀이하는 못 목숨붙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지루한 보여주기(묘사)만 가득한 책이라고 여길 수도 있어요.


 .. 수달들은 이곳에서 베도라치와 망둥이, 그리고 해초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물고기들을 찾아 헤맸다. 수달들은 참새우를 잡
 아 꼬리부터 먹었지만 머리는 절대 삼키지 않았다. 또 이빨로
 바위에 붙어 있는 섭조개를 뜯어내 앞발로 붙잡고 으깨서 살을
 핥아 먹었다. 회색주둥이가 까나리를 찾는 동안 타카는 집게발
 이 하나뿐인 바닷가재가 사는 깊은 웅덩이를 탐험했다 ......
 이 바닷가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위험을 겪었다.
 크라이드와 햄 마을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다란 막대기
 와 갈고리를 매달아 바닷가재를 잡으려 했다. 바닷가재는 여러
 번 발을 잃어, 아홉 번째 발이 뜯겨 나가자 녀석의 뇌도 결국
 은 새로이 발을 자라게 하는 걸 포기했다 .. <137쪽>


 .. 꺾이고 눌린, 속이 빈 갈대 줄기로 만든 보금자리에서 편히
 몸을 편 타카는 날개를 반짝이며 물위에서 나는 잠자리들을 바
 라보았다. 그 옆의 갈대에는 수 년 동안 작은 물고기와 물벼룩
 들을 잡아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그 전날 연못에서 기어나온 잠
 자리 유충이 부서질 듯한 회색빛 가면처럼 붙어 있었다. 햇빛이
 비쳐 유충의 껍질이 바짝 마르자 그 가면은 부풀어올라 등이 갈
 라졌다. 이윽고 거의 투명해 보이는 다리와 머리를 가진 곤충이
 축 처진 짧은 날개를 달고 빠져나왔다. 날개가 뜨거운 열기 때
 문에 쭉 펴지고 단단해지는 동안 그 곤충은 무심한 듯 갈대에
 매달려 있었다. 곤충의 몸은 정오의 용과 같은 숨을 쉬며 주홍
 빛으로 바뀌었다. 그 눈은 여름의 불기운을 받아 광택을 냈다.
 연못도 반짝였다. 볼품없이 몸 아래쪽에 붙어 있던 날개들이
 넓게 펴졌고,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떨렸다. 이윽고 몸에 노
 란색, 검은색으로 줄무늬가 있거나 에메랄드빛으로, 붉은빛으로,
 파란빛으로 빛나며 날고 있는 잠자리 떼에게 날아가버렸다 .. <76쪽>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책에 빠져듭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이란 책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사람들 등쌀에 밀려 어렵게 살아가는 수달 이야기'인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펼쳐서 찬찬히 읽다 보니 '사람들 등쌀에 밀린 수달 이야기'보다 더 큰 이야기가 있더군요. 수달이라는 짐승이 사람들 등쌀에 밀려 얼마나 고달프게 살아가는가를 그리는 가운데 수달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식물 이야기를 다뤄요. 크나큰 자연 품 안에 있는 수달 한 마리랄까요. 사라져가고 쫓겨가면서 괴롭고 고달픈 수달만 이야기하지 않아요. 아름답게 빛나며 따뜻하게 감싸는 한편 매서운 눈보라로 고달픈 삶을 살도록 하는 자연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자연과 어우러지는 수달과 뭇 짐승을 이야기해요.

 지은이 헨리 윌리엄슨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아주 지긋이 바라보고 느낍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살가이 나타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서사시 한 편을 읊듯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우리네 삶터 이야기랄까요.

 수달뿐 아니라 뭇짐승이 괴로워하는 삶터를 아프게 읽으면서도, 자연은 이렇게 수많은 목숨붙이가 어우러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사람만 살아가는 자연이 아니라, 사람과 모든 목숨붙이가 서로를 돌보고 감싸고 함께할 수 있을 때 참 아름답다 하는 것도 돌아봅니다. 37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었지만, 지난 3월 5일부터 한 달 넘게 이 책을 들고 다니며 읽은 시간은 참 즐거웠습니다.

***
요즘 들어 환경 이야기를 다룬 책이 많이 나옵니다. 참 좋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환경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 아닌 생명체 눈길과 눈높이'에서 그 생명체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사는지, 또 사람 아닌 생명체가 어우러지는 삶터가 어떻게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그려나가는 책은 드물어요. <수달 타카의 일생>은 이런 여러 가지 간지러우면서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고 보아 소개하는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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