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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양자역학 7일 만에 끝내기 ㅣ 만화 7일 만에 끝내기
후쿠에 준 지음, 목선희 옮김 / 살림Friends / 2016년 2월
평점 :
책읽기 삶읽기 242
양자역학을 ‘이레’ 아닌 ‘7분’ 만에 끝내기
― 양자역학 7일 만에 끝내기
후쿠에 준 글
목선희 옮김
살림프렌즈 펴냄, 2016.2.28. 9800원
‘만화 7일 만에 끝내기’ 가운데 하나로 나온 《양자역학 7일 만에 끝내기》(살림프렌즈,2016)를 읽기 앞서 생각합니다. 양자역학을 이레 만에 끝낼 수 있다고? 그런데 양자역학을 끝내는 데에 이레나 걸리나? 아니, 양자역학을 고작 이레면 끝낼 수 있나?
양자역학을 다루는 책인 만큼, 나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보려 합니다. 양자역학은 이레 만에 끝낼 수 없다는 생각 하나에다가, 양자역학은 이레 만에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레 만에 끝낼 수 없는 양자역학이라면, 이레가 아닌 일흔 날이 걸려도 끝낼 수 없을 테고, 이레가 아닌 일곱 해가 걸려도 끝낼 수 없겠다고 느낍니다. 거꾸로, 이레 만에 끝낼 수 있는 양자역학이라면, 일곱 시간이면 끝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일곱 분, 그러니까 ‘7분’ 만에라도 끝낼 만하리라고 생각해 봅니다.
물질을 물리화학적으로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점차 원자나 분자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26쪽)
지금까지 발견된 많은 증거로부터 내릴 수 있는 유일하게 정확한 관점은 ‘빛은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64쪽)
사진은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사진찍기는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사진읽기는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사진을 잘 찍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요? 사진을 잘 읽는 데에는 또 얼마나 걸릴까요?
어떤 사람은 사진을 마흔 해나 쉰 해를 찍었는데에도 ‘사진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진기를 손에 쥔 지 1분이 지났을 뿐인데에도 사진을 그냥 잘 찍습니다.
살림은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살림을 배우기는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살림을 제대로 익히자면 스무 해나 서른 해는 걸려야 할까요? 두세 해쯤 걸려서 살림을 익히기는 어려울까요? 두어 달 만에 살림을 익힐 수는 없는 노릇일까요? 이틀이나 사흘 만에 살림을 다 익히는 사람은 없을까요?
흔히 ‘과학’은 어렵다거나 ‘수학’은 괴롭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학이나 수학뿐 아니라, 종교도 학문도 다 어렵거나 괴롭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이든 수학이든, 또 살림이든 사진이든, 또 아이키우기이든 밥짓기이든, 또 집짓기이든 뜨개질이든, ‘하루아침에 이루는’ 것은 없을 만합니다. 그리고, 어느새 문득 깨달아서 즐겁게 하기도 합니다.
미시 세계에서 전자의 위치나 운동량은 처음부터 관측할 수 있는 물리량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이젠베르크는 원자핵의 주위를 전자가 ‘궤도운동을 한다’는 고전물리학의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106쪽)
미시 세계에서는 모든 현상이 근본적으로 불황적적이고 확률적으로 일어나지만 우리가 ‘관측’을 하면 그때마다 무수히 많은 가능성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큰 상태가 결과로 표현된다. (138쪽)
《양자역학 7일 만에 끝내기》는 일본에서 나온 ‘만화 7일 만에 끝내기’ 꾸러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일본 한자말이 많이 나옵니다. 양자역학에서 가장 크게 헤아리면서 다루는 낱말인 ‘보다(바라보다)’를 이 책에서는 ‘관측’이라는 한자말로 나타냅니다.
그러면, 양자역학에서 가장 크게 헤아리면서 다루는 낱말인 ‘보다·바라보다’란 무엇일까요? 이는 바로 ‘내가 보지(바라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거나 하나도 안 이루어진다’를 나타냅니다. 내가 보기에(바라보기에) 비로소 무엇이든 이루어집니다.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내가 볼 적에 어떤 것이든 다 이루어집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배울 수 있습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배울 수 없습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학교 문턱을 밟지 못했어도 스스로 배웁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수만 권에 이르는 책을 갖다 주어도 하나도 못 배웁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돌이나 나무도 모두 책으로 삼고 스승으로 삼아서 배워요.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책이 아무리 많아도 이녁한테는 그냥 ‘돌이나 나무’와 똑같을 뿐입니다.
빛에너지가 연속적이라면 어두운 곳에서 장시간 노출해야 사진이 찍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별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짧은 순간에도 별을 볼 수 있다. 이 현상이 바로, 별빛은 에너지 덩어리인 양자로써 아득히 먼 우주 저편에서 날아왔다는 증거이다. 빛이 양자가 아니었다면 우리 인간은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146쪽)
우주와 시공간이 탄생했을 때 모든 입자의 질량은 제로0였다. 물질입자도, 매개입자도 모두 광자와 같았다. 우주가 팽창하고 온도가 내려가면서 시공간과 물질입자 그리고 매개입자가 나뉘어졌다. (200쪽)
《양자역학 7일 만에 끝내기》는 양자역학이 태어나기 앞서 서양 과학이 어떻게 흘렀고, 고전물리학이 어떻게 퍼졌는가 하는 대목을 넓게 다룹니다. 그리고 이 책이 일본에서 나온 만큼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본 과학자’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서양에서 나오는 양자역학 책에서는 구태여 ‘일본 과학자’ 이야기를 이 책처럼 자주 길게 다루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일본 과학자를 몰라도 된다는 뜻이 아니고, 일본 과학자 가운데 훌륭한 이들 발자취를 몰라도 된다는 뜻 또한 아니에요. 이 책이 ‘일본에서 일본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나온 터라, 일본 물리학자 이야기가 자주 많이 나올 수밖에 없을 뿐입니다. 양자역학을 배우는 길잡이책으로서 알차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 대목에서는 ‘그냥 번역만 하기’에는 좀 아쉽다고도 할 수 있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일본 어린이는 이 책에서 다루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본 과학자’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저 훌륭한 사람처럼 물리학자(과학자) 꿈을 키워야지’ 하는 생각을 북돋울 만합니다만, 부록이나 붙임말로 따로 ‘한국 물리학자’ 이야기라든지, ‘양자역학과 얽혀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온누리 모든 과학자’ 이야기를 알려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관측하기 전에는 모든 가능성이 더해진 상태지만, 관측을 하면 무한한 가능성 중 각 상태의 확률 크기에 따라 단 하나의 상태만이 선택되는 것이다. (214쪽)
그러고 보면, 이 책이 아무리 일본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일본 글쓴이 스스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본 과학자’ 이야기는 부록으로 밀고, 몸글에서는 ‘양자역학 알맹이를 더 깊이 다루는 데’에 마음을 쏟지 못했다고도 할 만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인슈타인이 끝까지 외친 말, “사랑하는 하느님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말만 다룰 뿐, ‘고전물리학’을 버리고 새로운 물리학인 양자물리학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이 외친 말은 다루지 못합니다. 아인슈타인과 논쟁을 오랫동안 하면서 고전물리학을 버리고 양자물리학으로 나아간 이들은 1920년대부터 “하느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실 것인가를 지시하는 것은 우리들의 과제가 될 수 없습니다(하이젠베르크 쓴 《부분과 전체》 110쪽)”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머잖아 “하느님은 주사위를 던진다”는 대목을 깨닫지요. 오늘날 양자역학 이론에서는 “하느님은 주사위놀이를 매우 자주, 아니 늘 즐긴다” 하고도 말합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주사위놀이’에서 ‘주사위’란 ‘생각(이론)’입니다. ‘놀이’란 ‘삶(실험·경험)’이고요. 생각을 하나 내놓으면(주사위를 던지면, 또는 이론을 세우면), 이 생각(주사위·이론)에 따라서 어떤 일이 생기고(삶이 이루어지고, 또는 경험을 하고), 이 생각에 따라서 생기는 어떤 일을 보면(관측·관찰)서, 새로운 이야기(결과·실험결과)가 태어나요.
이러한 양자역학 원리를 쉬운 말로 다시 간추리자면, ‘내가 어느 한 가지를 생각하기에 나는 스스로 내 삶을 새롭게 짓는다’입니다. 내가 어느 한 가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겪지 못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배울 수 있지만,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배울 수 없다고 해요.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한 가지 생각’을 씨앗으로 심기에 삶에서 새로운 일을 겪고, 이 겪음이 바로 배움으로 나아가요. 그렇지만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부터 아무 생각이 없기에 수많은 일을 겪더라도 그 수많은 일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자꾸 똑같은 일(경험)만 되풀이하는 얼거리가 된다고 합니다.
‘관측’이라는 행위를 할 때, 혹은 양자역학적인 ‘선택’이 이루어질 때마다 가능한 모든 우주가 관측 시점으로부터 나뉘어, 이 모두가 실제로 존재하는 우주가 된다는 것이다. (220쪽)
이제 《양자역학 7일 만에 끝내기》를 덮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양자역학을 이레 만에 떼든 안 떼든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고 느껴요. 양자역학을 이레 만에 떼어도 좋고 안 떼어도 좋습니다. 다만, 양자역학에서 밝히면서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깊고 넓게 곰삭이고 싶습니다. 우리 집에서 우리 아이들을 기쁘게 사랑하려는 숨결로 하루를 새롭게 짓자고 하는 생각을 씨앗으로 심고 싶어요. 그래서 나는 이 씨앗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내 삶을 새롭게 겪고, 아이들이 씩씩하고 곱게 자라도록 곁에서 지켜보고 보살피면서, 이 결에 맞추어 새로운 이야기가 무럭무럭 태어나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주사위놀이를 하는 하느님’처럼 ‘삶을 짓는 바탕이 되는 생각을 늘 즐겁게 씨앗으로 심는 어버이’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관측하기에 결과가 생긴다’는 이론처럼, ‘생각하기에 삶이 태어난다’고 하는 얼거리를 슬기롭게 헤아리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마음이에요. 즐겁게 내 길을 고르고(선택), 즐겁게 내 삶을 바라보며(관측), 즐겁게 내 살림을 짓는(결과) 하루가 되기를 꿈꾸면서 아이들하고 웃음꽃을 피우려 합니다. 2016.3.3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