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어른 - 김지은 평론집
김지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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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42



‘우주를 꿈꾸는 작은 집’에서 어린이책을 읽는다

― 거짓말하는 어른

 김지은 글

 문학동네 펴냄, 2016.1.8. 15000원



  꿈을 꿀 수 있는 삶이란 어떠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날마다 꿈을 꿀 수 있고, 이 꿈으로 한 걸음씩 걸어갈 수 있으며, 이 꿈을 가슴에 품는 삶이란 어떠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그리고, 꿈을 꿀 수 없는 삶이란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느 하루도 꿈을 꿀 수 없고, 꿈이 없어 한 걸음씩 걷는 일이 없으며, 아무런 꿈도 가슴에 품지 못하는 삶이란 어떠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꿈을 꿀 수 있기에 살림을 새로 지을 만하지 싶습니다. 꿈을 꾸면서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면서 기운을 내지 싶어요. 꿈을 꾸는 마음으로 손수 살림을 짓는 동안 사랑이 피어날 만하지 싶고요.


  그리고, 꿈을 꿀 수 없기에 살림을 새로 짓는 데에 마음을 못 쓰겠구나 싶어요. 꿈을 꾸지 못하기에 날마다 똑같은 쳇바퀴처럼 느낄 만하지 싶으며, 꿈을 가슴에 못 품으니 재미도 보람도 즐거움도 누리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어린이들은 반항도 비판도 정해진 한계 안에서나 허용된다는 걸 안다. 그럴 때 그들의 마지막 방어는 ‘거기 없음’을 택하는 것이다.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혹은 ‘저는 없었어요’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15쪽)


어린이의 상처를 직접 어루만지고 함께 굶주리는 일은 어떤 사실이나 보고서도 해낼 수 없는,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33쪽)



  어린이책 이야기를 쓰는 김지은 님이 선보인 어린이문학 비평인 《거짓말하는 어른》(문학동네,2016)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나온 어린이문학을 바탕으로 비평을 들려주는 《거짓말하는 어른》입니다. 책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한국 사회에서 숱한 어른들이 ‘거짓말하는 삶’이라는 대목을 넌지시 짚으려고 하는 문학비평이라고 느낍니다. 참말이 아닌 거짓말로 기울고, 말뿐 아니라 생각도 마음도 거짓으로 기울며, 삶과 살림까지 거짓으로 기울다가, 그만 사랑까지도 거짓스러운 쪽으로 기우는 한국 사회 어른들 모습을 어린이문학으로 비추어서 보여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다른 사람의 행복과 불행에 대하여 제멋대로 짐작해 버리는 것일까. 행복과 불행에 대한 우리의 기준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35쪽)


우리 동화에서 인물의 목소리가 저점 잦아들고 우물거림이 많아진다거나 인물의 동선이 좁은 영역에서 움을 파는 소극적 구성이 많아지는 것은 아이들의 처지는 물론 글을 쓰는 어른들의 우울함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65쪽)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행동에 날개를 달아 준다. 자유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67쪽)



  어린이문학을 비평하는 글은 어린이가 읽도록 쓴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어린이문학 비평은 아무래도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한테 읽히려는 글입니다.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이 조금 더 마음을 열어서 꿈씨앗 한 톨을 심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쓰는 글이지 싶습니다. 이러면서 ‘어린이책을 안 읽는 어른’한테도 어린이책 한 권이 곁에 놓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쓰는 글이리라 봅니다. 그리고, ‘어린이가 읽을 이야기를 글로 짓는 어른’이 읽도록 쓰는 어린이문학 비평일 테지요. 어린이는 어린이문학 비평을 읽지 않더라도 ‘어린이책을 쓰는 어른’이 이러한 비평을 읽으면서 ‘어린이한테 어떤 이야기밥’을 나누어 주거나 베풀 수 있을 때에 어른으로서도 즐거우면서 보람이 있고 아름다운가 하고 돌아보도록 북돋울 만하리라 느껴요.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행동에 날개를 달아 준다(67쪽)”고 하는 대목을 새롭게 되새겨 봅니다. 어른이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될 때에 어른부터 스스로 즐거우면서 홀가분해요. 아이를 돌보는 어른이 스스로 즐거우면서 홀가분하다면 아이한테 늘 웃음짓는 얼굴로 노래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만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이 스스로 안 즐거우면서 안 홀가분하다면, 그러니까 어른 스스로 늘 안 웃고 안 노래하면서 산다면, 이때에 이 어른은 어떤 몸짓이 될까요?


  다시 말하자면, 어른 스스로 즐거움이 없고 사랑이 없으며 웃음이 없을 적에는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는 길을 가로막거나 괴롭히는 짓을 어른 스스로도 모르는 새에 저지르지 싶어요. 사회에서 흔히 벌어지는 안타까운 일들은 어른이 어른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삶이기 때문에 벌어지는구나 싶습니다.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이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변신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행운이 되어 줄 수 있다. (105쪽)


내 마음을 넘어서서 상대방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사회적 마음을 상상하는 일은 소중하다. (116쪽)



  아이를 낳기에 어른이 아니라,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기에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를 가르치기에 교사가 아니라, 아이와 사랑으로 함께 배우는 숨결이기에 교사이지 싶습니다. 아이 곁에 있기에 어른이 아니라, 아이를 따사로이 품고 사랑할 수 있기에 어른이요 어버이라고 느껴요. 아이한테 책을 읽히고 교과서를 건네기에 교사가 아니라, 아이하고 함께 책을 읽고 아이하고 함께 선 이 자리에서 슬기롭게 함께 배우려는 몸짓이기에 교사이지 싶어요.


  어린이문학다운 어린이문학이라면, 언제나 사랑을 담으리라 봅니다. 교훈이나 훈계가 아닌 ‘사랑을 보여주고 사랑을 이야기하며 사랑을 느끼도록 북돋우는’ 이야기가 바로 어린이문학이 되지 싶습니다. 삶을 사랑하고, 살림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해요. 새로운 하루를 사랑하고, 싱그러운 숲을 사랑하며, 슬기로운 이웃을 사랑하지요.



어린이들이 좀처럼 슬퍼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눈물을 흘리는 대신 욕설을 한다. (160쪽)


환상은 선과 악의 정의를 내리거나 명확한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시공간에서 잘못과 잘못 아닌 것에 대해 돌이켜보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199쪽)



  어린이문학 비평인 《거짓말하는 어른》은 여러 어린이문학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어린이문학을 어린이한테 읽히려는 뜻’을 새삼스레 되새기자고 살며시 말을 겁니다. 책을 많이 읽히자는 목소리가 아니고, 좋은 책을 읽히자는 목소리가 아닙니다. 어떤 책을 어린이한테 읽히더라도 아이들이 즐거운 삶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책을 어른도 함께 즐기자는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이 판타지를 좋아한다고 해서 판타지를 골라서 읽힐 까닭은 없어요. 더 재미있거나 더 나은 판타지를 찾아서 읽힐 까닭도 없겠지요. 그리고 판타지이든 아니든 대수롭지 않아요. 어떤 책이건, 어떤 문학이건, 어느 작가가 썼건, ‘내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찾고 느끼며 생각하도록’ 북돋우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도록 하면 되리라 느낍니다.


  이 작은 집에서, 이 작은 마을에서, 이 작은 고장에서, 이 작은 나라에서, 이 작은 별에서, 이 작은 우주에서, 그리고 드넓은 온누리에서, 우리 숨결은 어떠한 뜻이고 넋이며 마음이고 빛이며 사랑이요 노래인가 하는 대목을 어린이가 스스로 되돌아보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우리 어른들이 슬기롭게 헤아려서 가만히 들려줄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운 삶이나 살림이 될 만하리라 봅니다.



아이들이 집을 되찾는 일은 학교가 달라지는 것, 나아가서 사회가 달라지는 것과 연관이 깊다. (222쪽)


집은 이런 곳이다. 우주를 꿈꾸는 곳이다. 회사가 학교가 주지 못하는 평온함을 듬뿍 안겨 주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는 곳이다. 내 꿈을 어떤 잣대로도 잘라내지 않는 곳이다. (226쪽)



  우주를 꿈꾸는 작은 집에서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쳇바퀴를 도는 사회가 아닌, 크고작은 말썽이나 사건·사고가 끝없이 터지는 사회가 아닌, 체벌과 따돌림과 폭력이 춤추는 학교나 사회가 아닌, 불평등과 전쟁과 반민주가 넘실거리는 사회가 아닌, 그러니까 아름다운 삶이 흐르는 곳에서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이 흐를 수 있는 곳을 꿈꾸며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아름다운 살림을 가꿀 수 있는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마음 깊이 생각하면서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아이도 꿈을 꾸고 어른도 꿈을 꿀 수 있는 삶터를 헤아리며 어린이책을 읽어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함께 꿈을 꾸면서 이 꿈을 키워 삶으로 이룰 수 있는 길을 걸으며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참말로 ‘우주를 꿈꾸는 집’에서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사건이나 사고나 전쟁이 아니라 삶과 사랑과 살림을 일으킬 수 있는 집·마을·고장·나라를 꿈꾸면서 어린이책을 읽어요. 조그마한 문학비평인 《거짓말하는 어른》이 이러한 삶길이나 책길이나 꿈길로 우리 어른들을 찬찬히 이끌 수 있기를 빕니다. 글을 쓰는 어른도, 그림을 그리는 어른도, 집살림을 도맡는 어른도, 교과서로 가르치는 어른도, 마을살림을 다스리는 어른도, 정치나 행정을 맡는 어른도, 기계를 다루는 어른도, 모두 홀가분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사랑스러운 어린이책’ 한 권을 손에 쥐고서 활짝 웃는 몸짓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2016.3.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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