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라도닷컴> 2016년 3월호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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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서관 풀내음

― 봄을 기다리는 빗물놀이



  겨울이 저물고 봄이 찾아오려는 문턱입니다. 한겨울에도 맨발차림으로 놀고팠던 아이들은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자꾸 “이제 곧 봄이야?” 하고 물어요. 그러면 나는 아이들한테 되물어요. “너희가 보기에 봄이 언제 올 듯하니? 나무한테 물어보고, 바람한테 물어보렴. 봄이 얼른 오기를 바라면 해님한테도 얘기해 봐.”


  집에 텔레비전을 놓지 않으니 우리는 텔레비전을 안 보며 삽니다. 텔레비전을 안 보니 사건이나 사고 이야기를 안 보고, 날씨 이야기도 안 봐요. 우리가 보는 곳은 마당이요 뒤꼍이며 나무이고 하늘이며 땅이고 도랑물하고 냇물입니다. 서로서로 얼굴을 바라봅니다.


  바야흐로 따스하구나 싶은 바람이 새삼스레 찾아오는 때를 맞이하여 이불빨래를 신나게 합니다. 한겨울에 이불을 빨면 제대로 마르지 않아 눅눅해요. 가을에 빨래한 뒤 겨우내 덮던 이불은 봄을 앞두고 발로 힘차게 꾹꾹 밟으면서 빨아요. 마당 한복판에 아침에 널면 해질녘이면 보송보송하게 마릅니다. 이렇게 포근한 날씨가 되니 아이들은 저희한테 가장 재미나다는 흙놀이를 즐깁니다. 두 손으로 흙을 뭉쳐서 흙만두를 빚습니다. 흙빵을 구우며, 흙밥을 짓습니다. 한겨울에도 맨손으로 흙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봄맞이 흙놀이를 새롭게 합니다. 땅이 보들보들하게 녹으면 이 아이들하고 함께 괭이를 쥐고 뒷밭을 갈면서 일놀이를 할 만하겠네 싶습니다.


  그런데 포근해졌다가 갑자기 쌀쌀해지면서 잎샘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리면, 혀를 내밀면서 눈을 받아먹으며 놀지요. 모처럼 마을길에 눈이 쌓이면 함께 빗자루를 들고 고샅을 쓸다가 눈을 뭉치다가 슬그머니 눈덩이를 먹습니다. “눈 맛있니? 겨울맛이지? 이제 겨울이 가면 한동안 구경할 수 없는 재미난 맛이야.”


  잎을 시샘하고 꽃을 시샘하던 추위가 다시 꺾이고 봄더러 어서 오라며 비가 옵니다.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놀던 아이들은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놉니다. “아버지, 우산 안 쓰고 비놀이 해도 돼요?” 하고 빙글빙글 웃으며 묻는 아이를 바라봅니다. “네가 놀고 싶으면 얼마든지 놀아야지.” 추위도 더위도 벗님이고, 바람도 햇볕도 이웃님입니다. 눈님도 비님도 동무님이에요. 모두 우리 곁에 있는 살가운 숨결이면서 놀이벗이자 놀이이웃이고 놀이동무입니다.


  웬델 베리 님이 쓴 《소농, 문명의 뿌리》(한티재,2016)를 읽어 봅니다.


  “내 소년 시절 이 지역은 그냥 시골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시골이었다. 농장 규모는 보통 다 작았다. 이런 농장들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농장은 단순히 생계 수단일 뿐 아니라 주거의 장소이자 삶의 원천이었다(93쪽).”


  우리는 먹고살려는 뜻으로 땅을 부칩니다. 돈을 벌려는 뜻이 아니라 ‘먹고’ ‘살려고’ 땅을 부쳐요. 오래된 한국말인 ‘먹고살다’인데, 한국말사전에서는 이 낱말을 “생계를 유지하다”로만 풀이하지만, 먼 옛날부터 ‘먹고살다’라 말할 적에는 “생계 유지”를 넘어서, 삶을 짓는 ‘밥(먹다)’하고 기쁨을 짓는 ‘살림(삶·살다)’을 함께 나타냈다고 느껴요. 예부터 시골사람은 누구나 ‘먹고살려’는 뜻에서 땅을 부쳤어요. 전쟁을 하려는 뜻이 아니고, 정치권력을 드높이거나 종교 목적으로 땅을 부치지 않아요. 경제발전이나 사회발전 때문에 땅을 부치지 않습니다. 첫째, 몸을 살찌우는 밥을 얻으려고 땅을 부쳐요. 둘째, 마음을 가꾸는 슬기로운 살림을 사랑스레 지으려고 땅을 부쳐요.


  바쁜 일철에는 부지깽이도 일손을 거들고, 한갓진 ‘쉼철’에는 나그네도 한집붙이가 되어 나란히 밥상을 받으면서 넉넉하게 잔치를 벌입니다. 함께 짓는 살림이면서 서로 북돋우는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고형렬 님이 쓴 《은빛 물고기》(최측의농간,2016)라는 책도 읽어 봅니다.


  “치어들의 어미 연어는 사라지고 그 대신 자연이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은 연어 생명이 의지하고 진화해 온 오묘한 은혜다(65쪽).”


  사람뿐 아니라 물고기도 어미 혼자 새끼를 기르지 않습니다. 새도 벌레도 어미 혼자 새끼를 돌보지 않습니다. 들짐승도 이와 같아요. 온누리 모든 어버이(어미)는 아이(새끼)가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레 자라도록 온힘을 쏟습니다만, 어버이 사랑이나 손길로만 아이들이 자라지 않아요. 아이 하나가 오롯이 자라는 데에는 온마을 어른이 모든 슬기와 사랑을 모은다고 했듯이, 어버이를 비롯해서 온마을 어른이 따스히 아낄 뿐 아니라, 바람도 해도 별도 비도 눈도 흙도 나무도 풀도 나비도 벌레도 짐승도 벌도 꽃도 ‘돌봄이’ 구실을 해 줍니다. 숲에서 난 것을 먹는 삶이고, 숲에서 난 것으로 옷을 짓는 살림이며, 숲에서 난 것이 집을 짓는 바탕이 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누구나 숲살림이고 숲살이요 숲사람이자 숲넋이랄까요.


  시골에는 학원이 적고, 놀이시설이나 문화시설도 적으며, 읍내 도서관도 작아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와 푸름이는 도시 아이들처럼 학원 열 군데를 다니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학원 서너 군데조차 다니기 어렵습니다. 학원이 워낙 적고 읍내에만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어린이와 푸름이한테는 더없이 고운 바람이 있고 해하고 별하고 달이 있어요. 밤마다 별잔치를 누리고, 낮에는 따사로운 햇볕에다가 싱그러운 바람을 타고 흐르는 구름을 지켜볼 수 있어요. 텔레비전에 기대지 않아도 하늘을 보며 날씨를 읽는 눈썰미를 배우지요. 대학교를 안 다녀도 흙을 손수 만지고 일구면서 흙살림을 익히고요.


  봄을 기쁘게 기다리며 빗물놀이를 합니다. 봄을 꿈꾸며 흙놀이를 합니다. 봄을 마음에 고이 품으며 살림놀이를 합니다. 시골아이는 소꿉놀이를 즐기면서 새로운 삶과 살림과 사랑을 이 땅에 짓는 작은 손길을 스스로 북돋웁니다. 어머니한테서 뜨개질을 배우고, 아버지한테서 말을 배웁니다. 이제 함께 밭자락을 새로 가꿀 기쁜 봄입니다. 2016.2.1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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