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기다려 준다
아이들은 늘 기다려 준다. 저희 똥그릇에 똥을 뽀직 누고는 “똥꼬 닦아 주세요!”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기다려 준다. 부엌일을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비질을 하다가, 빨래를 하다가, 옷가지를 개다가, 이불을 가지런히 갈무리하다가, 작은아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기다려. 곧 갈게.” 하고 외친다. 작은아이는 “알았어요. 기다릴게요.” 하면서 기다려 준다.
배고픈 아이들은 늘 기다려 준다. “곧 밥 다 지어서 줄 테니까, 놀면서 기다려 주렴.” “네, 알았어요. 놀면서 기다릴게요.” 배고픈데 무슨 놀이를 할랴 싶을 수 있지만, ‘놀이’라는 낱말은 배고픔을 살짝 가시도록 도와준다. 소꿉놀이를 하면서 밥짓는 놀이를 할 수 있고, 놀다가 틈틈이 ‘밥 다 되었어?’ 하고 물으면서 기다려 준다.
그러고 보면, 어른이 기다려 주지 않을 뿐이다. “얼른 와!”라든지 “빨리 해!”라든지 “싸게싸게 다녀!” 같은 말을 외치면서 아이를 닦달한다. 아이를 다그치면서 서두르라 외치는 모든 어버이는 웃는 낯이 아니라 찡그린 낯이다. 이와 달리 아이들은 언제나 기다려 주면서 웃는다. 어른이 안 기다리는데다가 웃지도 않을 뿐이다. 아이들은 노상 기다려 주면서 또 기다리고 다시 기다린다. 어른은 기다릴 줄도 모르고 기다릴 생각조차 없다.
어떡해야 할까? 이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활짝 웃으면서 함께 기다리고 함께 살림을 짓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 2016.2.1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