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을 위하여
홍윤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114



시와 빈자리 (빈자리 든자리 난자리 보금자리)

― 쓸쓸함을 위하여

 홍윤숙 글

 문학동네 펴냄, 2010.6.28. 7500원



  “든 자리 난 자리”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이 말을 흔히 들으면서도 그냥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그 어릴 적에도 어머니가 하루쯤 집을 비우면, 어머니 한 분이 안 계신 집이 얼마나 쓸쓸한가 하고 깊이 느꼈어요. 마치 집안이 멈춘 느낌이라고 할까요. 어릴 적에 학교에서도 동무 하나가 하루를 거르면, 한 반에 쉰 남짓 바글거리더라도 꼭 그 “난 자리”가 허전했습니다. 한 자리라도 비면 어쩐지 제대로 차지 않는구나 싶었어요.



어떤 시인은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하고 / 어떤 화가는 평면을 보면 모두 일으켜세워 / 그 속을 걸어다니고 싶다고 한다 / 나는 쓸데없이 널려 있는 낡은 널빤지를 보면 / 모두 일으켜세워 이리저리 얽어서 집을 짓고 싶어진다 (쓸쓸함을 위하여)



  홍윤숙 님이 빚은 시집 《쓸쓸함을 위하여》(문학동네,2010)를 읽습니다. 1925년에 태어나고 2015년 가을에 숨을 거둔 홍윤숙 님은 2010년에 이 시집을 선보이면서 ‘마지막 시집’이 될 듯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집을 선보이고 나서 2012년하고 2013년에 새로운 책을 한 권씩 더 내셨어요. 마지막 책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더 새롭게 시를 엮어서 선보일 수는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떠나셨으니까요.


  떠나고 없는 자리를 고요히 돌아보면서 시집을 읽습니다. 아이들이 방에서 시끌벅적하게 뛰면서 노는 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싯말을 하나하나 새겨 봅니다. 겨울이 저물고 봄이 다가오는 하루를 새삼스레 느끼면서 시집에 깃든 노래를 헤아립니다. 늦겨울 빗소리와 바람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싯말마다 흐르는 이야기를 되새깁니다.



카랑카랑 마른 내 뼛속에는 / 고장난 바이올린이 숨어 있나보다 / 작은 바람에도 큰 소리 울리며 / 반음쯤 틀리는 소리를 낸다 (반음半音)


명아주 까마중 괭이풀 토끼풀 / 고만고만한 풀들이 서로 기대고 비비며 / 한 세상 모여 사는 마을에 들어서면 / 문득 어린 시절 잃어버린 꽃반지 하나 (풀밭에서)



  시집 《쓸쓸함을 위하여》는 홍윤숙 님이 아픈 몸으로 적바림한 노래라고 합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늙은 나이에 느낀 쓸쓸함이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 물으면서, ‘시란 바로 쓸쓸함과 싸우면서 쓰는 글’이라고 여기는 마음으로 엮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여든을 지나 아흔으로 나아가면서 어릴 적 꽃반지를 떠올립니다. 망가진 몸에서 나는 소리는 망가진 바이올린에서 나는 소리 같다고 합니다. 반음쯤 틀리는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반음쯤 틀리더라도 이 소리는 ‘악기가 내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노랫소리예요.


  낡은 널빤지를 세워서 집을 지으며 살고 싶다는 마음처럼, 아이들은 뭔가 있으면 하나하나 갈무리해서 새롭게 지으면서 놉니다. 아이도 어른도, 어린이도 할머니도, 참말로 누구나 새로 지으려는 몸짓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집을 짓든 장난감을 짓든, 살림을 짓든 밥을 짓든, 시를 짓든 꿈을 짓든, 우리는 저마다 마음에 품은 생각대로 하루를 지으면서 이 길을 걷는구나 싶습니다.



눈을 감으면 떠돌던 내가 / 내 안으로 돌아오고 / 온 세상 소요도 잠잠히 잦아들고 / 내 안의 물결치던 크고 작은 이랑들이 / 하나로 모여 허공을 만들고 (눈을 감고)


다복솔보다 키가 큰 그는 / 바다를 가리키며 / 언젠가는 바다로 가겠노라고 이야기했다 / 그리고 문고판 작은 헤세 시집 한 권을 주었다 (헤세의 시집)



  낮볕이 덥다던 아이들은 “아버지, 오늘 봄이야? 겨울 맞아?” 하고 묻습니다. 밤바람이 차다는 아이들은 “아버지, 아직 겨울이야? 봄인데 왜 이리 추워?” 하고 묻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을 뿐 딱히 아무 말을 안 합니다. 조금 뒤 “네가 스스로 생각해 봐.” 하고 말합니다. 달력에 적힌 숫자 말고 우리 몸으로 느끼는 날씨하고 철을 생각해 보면 봄인지 겨울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날씨를 알려주는 방송으로는 봄인지 겨울인지 알 길이 없어도, 우리가 스스로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결을 느낄 수 있으면 오늘 이곳이 어떤 날이며 철인지 알 테니까요.


  눈을 감고서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눈을 감고서 내 모습을 바라봅니다. 둘레에서 퍼지는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번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할머니 시인이 스스로 이녁 마음속 목소리를 들으려 하듯이, 나도 아이들하고 우리 시골집에서 마주하는 바깥소리 말고 우리 마음속 노랫소리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자, 자, 이제 손발낯 씻고 자리에 누워야지? 이제는 잠자리에 들어 신나게 꿈나라를 날아야지?


  이부자리를 반반히 깝니다. 아이들을 눕힙니다. 이불깃을 턱 밑까지 여밉니다. 토닥토닥 달래니 어느새 두 아이 모두 곯아떨어집니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볼에 뽀뽀를 합니다.



거울 속의 내가 / 거울 밖의 나를 / 탄식하며 고개 돌린다 / 거울 밖의 나는 / 거울 속의 나를 / 무섭고 낯설어 / 고개 돌린다 (거울 앞에서 1)


낙서로 가득한 / 빈 공책이다 // 문 앞에서 맴돌다 / 놓쳐버린 막차 (일생 2)



  밤이 지나고 아침이 다가올 무렵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하루를 엽니다. 아이들이 언제 일어나든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늘 내가 일어나야 할 때에 일어나서 쌀을 씻어서 불립니다. 다시마도 알맞게 끊어서 불려 놓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서 재잘거리며 놀다가 배가 고플 즈음 되면 찬찬히 밥을 지어야지요.


  내가 짓는 하루는 내가 새롭게 쓰는 이야기입니다. 할머니 시인이 아흔 해를 걸어오며 적바림한 공책은 “낙서로 가득한 / 빈 공책”이라 하지만, 그 ‘낙서’란 바로 ‘숱한 이야기’이리라 느낍니다. 그때그때 휘갈긴 글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때그때 새삼스럽고 기쁜 숨결로 맞이한 하루를 가만히 적바림한 글이라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삶자리를 가꾸면서 기지개를 켭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새로이 꿈을 키우면서 보금자리를 일구자고 다짐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언제나 이 자리에서, 웃음이 퍼지는 웃음자리를 누리고, 노래가 흐르는 노래자리를 누리며,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하는 사랑자리를 누리자고 생각을 다스립니다. 내 “든 자리”를 고이 돌보는 마음이 된다면, 나는 오늘 이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재미나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으리라 봅니다. 2016.2.1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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