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미루려다가
읍내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운이 쪽 빠진다. 그렇다고 바로 드러누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두 아이는 마을을 여러 바퀴를 돌면 땀을 쪼옥 빼면서 노느라 흙투성이가 된다. 이 모습을 보니 이 아이들을 얼른 씻겨야겠구나 싶어서 불끈 힘을 내어 씩씩하게 두 아이를 씻긴다.
아이들을 씻긴 뒤에 샛밥을 챙겨서 주는데, 아 이제는 누워서 허리를 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아이들을 씻기면서 바닥에 튀기는 물에 옷을 적셔 놓았다는 생각에, 따순 물로 옷이 젖었으면 빨래하기가 무척 수월할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하룻밤 자고 아침에 이불 한 채를 더 빨면서 빨래기계한테 일감을 맡길까 하고 생각하다가 손으로 다시금 기운을 내어 빨아 보자고 생각한다.
샛밥을 먹은 아이들은 아버지 뒤에 서서 빨래를 지켜본다. “나도 이제 빨래하고 싶어. 빨래 배울래.” 하고 말하면서, 비누질 비빔질 헹굼질 물짜기를 찬찬히 지켜본다. 물짜기를 마친 옷가지가 하나 나오니, 큰아이가 마당으로 가지고 나가서 널어 준다. 이윽고 오늘 빨래를 다 마치고 마당에 나가서 함께 옷가지를 널고 마당을 조금 치워 본다. 작은아이는 이동안 까무룩 곯아떨어진다. 포근한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이월 하루가 지나간다. 2016.2.1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빨래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