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없는 사진말

17. 사진비평 없는 사진잡지



  사진비평이 없는 사진잡지를 읽는다.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읽은 뒤 덮는다. 두 달째 사진비평이 없는 사진잡지를 읽으면서 이런 사진잡지를 구태여 정기구독을 해야 하는지 돌아본다. 이제 우리 사진책도서관에서는 구독을 끊어야겠다.


  ‘사진비평’이란 무엇인가? 사진을 비평하는 일이 사진비평이고, ‘비평’이란 ‘말하기’이다. 그러니까, “사진을 말하는 이야기”가 없는 사진잡지를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사진잡지는 무엇을 다루었는가? 전시회 소식을 다루었고, 전시회에 걸린 작품을 다루었으며, 전시회를 연 사람들을 만난 전문가 생각을 다루었다.


  전시회를 다루는 일은 사진비평인가, 아닌가? 전시회 다루기는 ‘전시비평’이다. 그리고, 전시회라고 해서 모두 ‘사진전시’를 하지 않는다. 설치예술 전시도 하고, ‘사진 매체를 빌어서 예술을 그리려고 하는’ ‘예술작품 전시’도 한다. 그러니까, 사진을 사진으로서 마주한 사진을 다루는 이야기는 빼놓고서, ‘전시’하고 ‘예술’을 다루는 이야기만 흐르고 마는 오늘날 사진잡지라고 하겠다. 이달치 그 사진잡지를 보니, 여기에 ‘디자인’을 더 다룬다. 그래서 ‘설치작품 전시 + 예술 + 디자인’, 이렇게 세 가지를 다루는 사진잡지가 되는 셈이다.


  왜 사진잡지에서 사진을 다루지 않을까? 오늘날 전문가하고 작가는 ‘사진가’이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손에 사진기를 쥐었’어도 ‘아트’나 ‘예술’을 하고, 사진기를 빌어서 ‘설치예술 기록’을 하거나 ‘설치예술 표현’을 한다. 이러면서 사진비평가였던 이들조차 ‘사진비평’은 그만두고 ‘전시비평’하고 ‘예술비평’으로 돌아선다.


  문학잡지에서 문학을 비평하지 않으면 문학잡지가 될까? 문학잡지도 사진이나 그림이나 만화를 얼마든지 비평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잡지는 ‘창작하는 문학’하고 ‘비평하는 문학’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 사진잡지는 ‘창작하는 사진’이나 ‘비평하는 사진’이 아니라 ‘예술하는 몸짓’하고 ‘예술하는 비평’만 흘러넘친다. 434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비평/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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