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내가 우리 아버지·어머니를 가리킬 적에는 ‘아버지·어머니’처럼 쓰고, 동무나 이웃 아버지·어머니를 가리킬 적에는 ‘아버님·어머님’처럼 씁니다. 다른 집 딸·아들을 높이려는 뜻에서 ‘따님·아드님’처럼 써요. 어버이는 제 아이를 놓고 ‘님’을 붙이지 않아요. 아이도 제 어버이를 놓고 ‘님’을 붙이지 않고요. 그런데 ‘딸·아들’을 높일 적에 ‘딸님·아들님’처럼 안 적어요. ‘ㄹ’이 떨어져서 ‘따 + 님’이고 ‘아드 + 님’이에요. 이와 같은 얼거리로 “하늘에 계신 님”을 가리킬 적에도 ‘하늘 + 님’은 ‘하느 + (ㄹ 떨굼) + 님’이 되어 ‘하느님’처럼 적어요. ‘님’은 누군가를 높일 적에 붙여요. 흔히 사람을 높일 적에 붙이지만, 사람이 아닌 자리에도 붙이지요. ‘해님’이나 ‘달님’은 해와 달을 사람으로 여겨서 섬기려는 뜻이에요. 그래서 ‘땅님·숲님·비님·눈님’이라든지 ‘풀님·꽃님·나무님·벌레님’처럼 쓸 수 있어요. 동무한테는 ‘동무님’이라 할 만하고, 이웃한테는 ‘이웃님’이라 할 만해요. 학교에서 어린이와 푸름이를 가르치는 교사를 두고는 ‘선생 + 님’이라 ‘선생님’이지요. 그러면 학생은 ‘학생님’이라 하면 될까요? 배우는 사람이 학생이니까 ‘배움님’이라 해 볼 수 있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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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치마가 길면 어떤 치마일까요? ‘긴치마’이지요. 바지가 길면 어떤 바지일까요? ‘긴바지’예요. 다리가 길면 어떤 다리일까요? ‘긴다리’일 테지요. 팔이 길면 ‘긴팔’일 테고요. 다리는 우리 몸에도 있지만,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자리에도 있어요. 돌로 지은 ‘돌다리’, 나무로 지은 ‘나무다리’, 쇠로 지은 ‘쇠다리’가 있어요. 골짜기에 놓는 ‘흔들다리’가 있고, 나무나 잔가지로 엮은 뒤에 흙을 덮는 ‘섶다리’가 있어요. 냇물이나 도랑이나 웅덩이에 돌을 하나씩 놓는 ‘징검다리’도 있는데, 다리 구실을 하도록 사이사이에 놓는 돌을 가리켜 따로 ‘징검돌’이라 해요. ‘징검돌’은 ‘다릿돌’이라고도 하는데, 여러 사람 사이를 살뜰히 잇는 구실을 슬기롭게 하는 사람을 가리킬 적에 ‘징검돌’과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이곳하고 저곳을 잇는 다리가 길면 이때에도 ‘긴다리’라 할 수 있어요. 두 곳을 잇는 다리가 커다랗다면 ‘큰다리’라 할 테지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를 보면 ‘긴다리·큰다리’ 같은 이름보다는 ‘대교’라는 한자말을 흔히 쓰지만, 길거나 커다란 다리를 ‘한강큰다리’나 ‘광안긴다리’ 같은 이름으로 즐겁게 붙일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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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마늘을 넣어 밥을 지으면 마늘밥이 됩니다. 고구마를 넣어 밥을 지으면 고구마밥이 됩니다. 쑥을 넣으면 쑥밥이요, 팥을 넣으면 팥밭이며, 콩을 넣으면 콩밥입니다. 보리로 지으면 보리밥이고, 쌀로 지으면 쌀밥이에요. 이리하여, 마늘을 써서 빵을 구으면 마늘빵이 될 테지요. 한국사람도 오늘날에는 빵을 널리 먹으니, 마늘로 얼마든지 빵을 구울 만합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마늘’이 아닌 ‘갈릭’이라는 낱말을 쓸 테니 ‘갈릭 브레드’라 해요. 한국말에서는 ‘빵’이지만 영어에서는 ‘브레드’이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바게트’ 같은 서양말도 한국에서는 그냥저냥 쓰기 일쑤입니다. 한국말로 손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막대빵(막대기빵)’이라 해도 될 텐데 말이지요. 마늘을 써서 구운 빵이기에 ‘마늘빵’이라 하면 누구나 쉽게 알아볼 만하고, 막대기처럼 길게 구운 빵이기에 ‘막대빵’이라 하면 참말 누구나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요. 팥빵도 한국말로 ‘팥빵’이라 해야 알아듣기에 좋아요. 일본말로 ‘앙꼬빵’이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본말로 쓰는 ‘소보로빵(소보루빵)’도 ‘곰보빵’이나 ‘오돌빵’이나 ‘못난이빵’ 같은 한국말로 고쳐서 쓰면 한결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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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자


  밥을 먹으면서 새롭게 힘을 내요. 몸을 움직인다든지 다른 것을 움직이려면 ‘힘’이 있어야지요. 힘이 없으면 어쩐지 축 처져요. 힘이 빠지면 고단하거나 고달파요. 힘이 없으니 아무것도 못하기 마련이고, 힘이 여리면 여러모로 벅차거나 버겁기까지 해요. 몸을 살찌우려고 밥을 먹으면서 힘을 낸다면, 마음을 가꾸려고 사랑을 받아들여서 힘을 내요.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꿈을 꾸는 힘을 길러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온누리에 따사로운 기운이 퍼져요. 해님이 곱고 따스히 베푸는 기운을 받아서 꽃이며 풀이며 나무가 자라요. ‘봄기운’을 받아서 씨앗이 싹이 트고 겨울눈이 터져요. 오래달리기를 하다가 힘이 빠져서 축 처질라치면 “자, 조금 더 힘내렴!” 하고 옆에서 북돋아 줘요. 아무래도 안 되거나 못 하겠구나 하고 느껴서 기운이 빠질 적에 “괜찮아, 다시 기운을 내 보자!” 하고 곁에서 빙긋 웃으면서 일으켜세워 주어요. 새롭게 힘내고, 다시금 기운내요. 때로는 “젖 먹던 힘”을 내기도 하는데, 이때에는 한꺼번에 힘을 모아서 내려고 ‘용’을 쓴다고 할 수 있어요. 있는 대로 다 모아서 기운을 쓴다든지, 모질고 단단하게 기운을 내려고 할 적에는 ‘악’을 써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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