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금풀, 감풀, 토마토풀
감을 얇게 썹니다. 동글배추를 얇게 썹니다. 케챱과 마요네즈를 뿌린 뒤에 둘을 섞습니다.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립니다. 네 살 아이는 ‘감과 동글배추를 섞어서 놓은 접시’를 보더니 “‘감풀’이네.” 하고 말합니다. “그래, 감풀이로구나.” 아이들한테는 감과 풀이 함께 있는 접시입니다. 이 아이들한테 ‘샐러드’라는 이름을 알려줄 수 있지만, 아이들이 처음 느끼면서 스스로 붙인 이름대로 ‘감풀’이라 하기로 합니다. 며칠 뒤, 능금을 얇게 썹니다. 동글배추를 또 얇게 썰어요. 이런 뒤에 마요네즈만 넣어서 섞습니다. 이제는 ‘능금풀’이 됩니다. 며칠이 또 지난 뒤에는 토마토를 얇게 썰어서 동글배추하고 섞습니다. 이제 어떤 풀이 될까요? ‘토마토풀’이 될 테지요. 당근을 넣으면 ‘당근풀’이고, 고구마를 넣으면 ‘고구마풀’이 돼요. 달걀을 넣으면 ‘달걀풀’이고, 딸기를 넣으면 ‘딸기풀’입니다. 자, 우리 함께 감풀도 능금풀도 토마토풀도 모두 맛나게 먹자. 밥도 맛나게 먹고, 국도 맛나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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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알빛, 감잎빛
가을에 감알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감은 ‘감빛’으로 나타냅니다. 살구는 ‘살구빛’이고, 앵두는 ‘앵두빛’입니다. 딸기는 ‘딸기빛’이에요. 그런데 딸기꽃이나 앵두꽃은 하얗습니다. 그래서 빨강을 나타내려면 ‘앵두알빛’이나 ‘딸기알빛’이라 가르고, 하양을 나타내려면 ‘앵두꽃빛’이나 ‘딸기꽃빛’처럼 새롭게 적어 볼 수 있어요. 찔레를 살피면, 꽃은 하얗고 열매는 빨개요. 그러니 ‘찔레꽃빛’하고 ‘찔레알빛’도 새삼스레 다르게 적을 만합니다. 이처럼 ‘석류꽃빛’하고 ‘석류알빛’을 나눌 수 있고, ‘감알빛’하고 ‘감꽃빛’을 쓸 만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잎빛을 말할 수 있으니, ‘감잎빛’도 말할 만해요. 잎빛은 모두 풀빛이라 할 테지만, 나무나 풀마다 잎빛이 저마다 다르기에 ‘딸기잎빛’이나 ‘앵두잎빛’이나 ‘찔레잎빛’ 같은 빛깔말을 써 볼 만합니다. 그리고 감알을 놓고도, ‘풋감알빛·말랑감알빛·단감알빛’처럼 갈라서 쓸 수 있어요. ‘감잎빛’을 말할 적에도 새봄에 돋는 옅푸른 감잎빛이랑 한여름에 짙푸른 감잎빛이랑 가을에 누렇게 물드는 감잎빛은 저마다 다르니, ‘봄감잎빛·여름감잎빛·가을감잎빛’ 같은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기쁘게 나눌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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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천
마루문하고 창문에 쓰려고 천을 끊습니다. 마루문에 대는 천은 ‘마루문천’이나 ‘마루천’이라 할 수 있고, 창문에 대는 천은 ‘창문천’이나 ‘창천’이라 할 수 있어요. 요새는 흔히 ‘커튼’이라고 하지요. 어떤 천을 쓰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창문에 대는 두꺼운 천은 겨울에 쓰기 때문에 눈송이가 펄펄 내리는 무늬가 박힌 천을 맞춥니다. 그런데 이 천을 본 우리 집 아이들이 문득 “사랑이 가득 있네. ‘사랑천’이야?” 하고 묻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 천에는 눈송이뿐 아니라 ‘사랑’을 나타내는 ‘하트’ 무늬가 가득 있습니다. 다른 천에는 사슴 무늬가 큼직하게 있습니다. 이 무늬를 보더니 어느새 “와, 이건 ‘사슴천’이네!” 하면서 웃습니다. 나는 마당에 나가서 길다란 대나무를 들고 들어옵니다. 이레쯤 앞서 미리 잘라 온 대나무입니다. 마루문 길이에 맞게 자른 대나무에 천을 엮습니다. 이리하여, 마루문하고 창문에 ‘사랑천’하고 ‘사슴천’을 대면서 ‘마루문천’하고 ‘창문천’을 새로 꾸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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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뿅뿅이
남녘에서 ‘거위’라고 하면 오리하고 닮았으나 목이 더 길고 덩치도 한결 큰 새를 가리켜요. 그렇지만 북녘에서 ‘거위’라고 하면 “사람 몸으로 들어와서 사는 벌레”인 ‘회충’을 가리켜요. 어느 모로 본다면 ‘회충’은 ‘거위(붙어살이벌레)’를 가리키는 한자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북녘에서는 오리하고 닮은 새를 어떤 이름으로 가리킬까요? 북녘에서는 이때에 ‘게사니’라는 이름을 써요. 그리고, 북녘에서는 ‘물뚱뚱이’라는 이름으로 가리키는 짐승이 있어요. 자, 남녘에서는 ‘물뚱뚱이’를 어떤 이름으로 가리킬까요? 바로 ‘하마’입니다. 물에서 살기를 좋아하면서 몸집이 뚱뚱한 짐승이라고 하기에 북녘에서는 ‘물뚱뚱이’라는 이름을 붙여요. 우리 집 아이들하고 읍내 가게에 갔다가 ‘물게임기’라는 장난감을 보았어요. 이 물게임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아이들은 “그거 있잖아요. 물 뿅뿅 쏘는 거. 그거 사 주세요.” 하고 부릅니다. 그래요, 아이들 말마따나 물을 뿅뿅 쏘는 장난감은 ‘물뿅뿅이’입니다. 단추를 눌러서 바람을 뿅뿅 넣으면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면서 고리가 춤을 추는데 작은 막대기에 꽂힐랑 말랑 흔들려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