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Kitchien 7 - 완결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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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맛을 내는 솜씨는 늘 네 손길에 있어

― 키친 7

 조주희 글·그림

 마녀의책장 펴냄, 2012.1.30. 1만 원



  조주희 님이 빚은 만화책 《키친》(마녀의책장)은 2009년에 1권이 나왔고, 2012년에 드디어 7권이 나오면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맛있는 이야기를 수수한 밥상에서 찾는 만화책 《키친》이기에 이 만화책이 7권에서 끝나지 말고 10권이든 20권이든 30권이든, 그야말로 오래오래 나올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래도 이 만화책이 일곱 권이나 나올 수 있었다는 대목으로 반가우면서 고맙다고 여기고 싶습니다. 요리 솜씨를 뽐낸다든지, 요리 대회를 겨룬다든지, 맛집 순례를 한다든지, 이런저런 흔하거나 뻔한 얼거리가 아니라, 삶을 사랑으로 짓는 살림이 되어 밥 한 그릇을 나누는 이야기를 만화로 담아낸 숨결이 더없이 고운 《키친》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비온 뒤의 죽순마냥 쑥쑥 자라고, 영감이 아직 듬직한 어깨를 가진 건강한 사내였을 땐, 두부로 온갖 음식들을 만들어냈다. 바싹 부쳐낸 두부를 간장과 갖은 양념으로 조려낸다거나, 호박과 양파로 달달하게 끓여내는 된장국에도 빠짐없이 자리잡았다. 영감에게 바가지를 박박 긁은 저녁에는 미안한 마음에 두부김치를 내놓았었다. (10∼11쪽)



  만화책 《키친》 일곱 권을 읽는 동안 늘 한 가지를 떠올렸습니다. 맛을 내는 솜씨는 늘 네 손길에 있다고, 또는 맛을 내는 솜씨는 바로 내 손길에 있다고, 어디 먼 데에서 맛이나 멋을 찾지 말자고 하는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남이 차려 주는 밥이 아니라 내가 손수 차리는 밥이 맛있고, 내가 온 사랑을 담아서 짓는 밥처럼 남들이 나한테 이녁 온 사랑을 담아서 지어 주는 밥이 맛있다는 대목을 이 만화책을 읽는 동안 새삼스레 되새겨 보았습니다.


  집일이 고단하다면 그야말로 ‘남이 좀 밥을 차려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너무 고단하니까요. 그런데, ‘고단하다는 핑계’로 ‘남이 차린 밥’을 먹을 적에는 으레 뭔가 아쉽거나 섭섭하거나 모자라다고 느끼기 마련이지요. 왜냐하면 ‘돈으로 밥을 사다가 먹을 적’에는 밥맛에 마음이 깃들지 못하거든요.


  편의점 김밥이나 도시락을 사다가 먹더라도, 이 편의점 김밥이나 도시락을 밥상에 차리는 손길이 따스하거나 포근하다면, 이 편의점 김밥이나 도시락도 무척 맛있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과자이기에 덜 맛있지 않아요. 《키친》 일곱째 권에 나오는 짧은 이야기처럼, 소년원에 들어간 제자(학생)한테 과자를 사식으로 넣어 주는 담임교사는 이녁(담임교사)이 나누어 줄 수 있는 가장 ‘사랑스러운 맛’을 아이한테 나누어 주는 셈입니다.



전학 온 첫 날 찾아온 아버지는 한눈에 봐도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 녀석은 사랑은커녕 밥조차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랐겠지? (68쪽)


목록에 적힌 과자 항목을 모조리 체크했다. 같은 방 동료들이 환호성을 지를 만큼.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주어진 것이 없었던 너에게 더 많은 것이 돌아가야 하지만, 달콤하게 반짝여야 할 유년의 세계, 너는 아직 알록달록한 과자들에 열광할 어린아이인걸. 잠깐이라도 행복감을 맛보았으면. (74∼75쪽)



  만화책 《키친》은 ‘밥맛’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잘 밝히기 때문에 더없이 돋보입니다. 라면 한 그릇을 이야기해도, 과자 한 봉지를 이야기해도, 소주 한 잔이나 막걸리 한 잔을 이야기해도, 달걀을 삶거나 부친다고 하더라도, 밥맛이란 늘 ‘삶맛’이요 ‘사랑맛’이며 ‘살림맛’이라고 하는 대목을 찬찬히 잘 들려줍니다.


  가장 빼어난 요리사를 찾아내려고 하지 않는 《키친》입니다. 가장 훌륭한 요리 장인을 밝히려고 하지 않는 《키친》입니다. 수수하다면 수수하고 투박하다면 투박하지만, 우리가 늘 마주할 수 있는 이웃들이 저마다 즐겁게 삶을 사랑하면서 짓는 밥 한 그릇을 이야기하는 《키친》이지요.



“조선은 그저 유교의 감옥일 뿐입니다. 이 작은 계란처럼 꼭꼭 갇혀 있어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요.” (36쪽)


“다들 선비님처럼 숨어서 불평만 한들 조선이 달라질 리는 없지 않습니까. 선비님 같은 양반들이 탁상공론만 일삼으니 조선이 이 모양이 된 겁니다.” “여전히 내가 알 속에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가요. 대영제국이라는 강력한 힘을 가진 강대국이란 알의 껍질은?” (50∼51쪽)



  어버이는 아이한테 밥을 차려 줍니다. 밥을 잘 짓든 못 짓든, 어버이는 어버이 나름대로 가장 맛나게 밥을 차려서 줍니다. 할머니한테서 얻은 김치로 밥상을 차리든,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서 밥상을 차리든, 소시지를 볶거나 된장국을 끓여서 밥상을 차리든, 아이들은 어버이가 나누어 주는 따스한 손길에 어린 숨결을 받아서 먹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밥을 징검돌로 삼아서 사랑을 주는 사람이에요.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밥을 다리로 삼아서 사랑을 받는 사람이지요.


  손맛은 먼먼 옛날부터 고이 흐릅니다. 손맛은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서 더욱 살뜰히 가다듬습니다. 손맛은 내가 나부터 즐기는 맛이면서 내 이웃하고 동무한테 베푸는 맛입니다. 손맛은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가 손수 짓는 꿈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맛입니다.



좋은 음식은 자식에게 내려오는 걸까? 독특한 향이 난다. 흙 냄새인가, 풀 냄새인가, 바람 냄새인가. 깊은 산의 모든 향기를 몇 년이고 안으로 안으로 담아둔 진한 향이 난다. 평범하기 짝이 없던 외갓집의 뒷산은 이런 보물을 조용히 키우고 있었다. (111∼112쪽)


“그럼 넌 성공한 거네. 가출했잖아.” “아니. 난 후회하고 있어. 엄마한테 미안해. 나름 엄마의 방식대로 너무나 사랑했어. 정말 날 사랑했어. 우리에겐 다른 방법들이 있었을 텐데.” (129쪽)



  밥 한 그릇마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빵 한 점에도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부 한 모에도 이야기가 있고, 콩 한 알에도 이야기가 있어요. 만화책 《키친》은 바로 이 같은 대목을 잘 살려서 보여줍니다. 밥 한 그릇에서 수수하게 이야기를 길어올리고는, 이 이야기로 따끈따끈한 사랑을 가꾸는 기쁨을 가만히 보여주어요.


  오늘 이곳에서 이 밥 한 그릇으로 새롭게 기운을 차리지요. 오늘 이 보금자리에서 이 밥 한 그릇으로 새삼스레 힘을 얻지요. 오늘 이 작은 집에서 이 밥 한 그릇으로 조촐하게 이야기꽃을 피우지요. 오늘 이 따사로운 살림터에서 이 밥 한 그릇으로 아기자기하게 웃음을 노래하지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그릇을 두 손을 모아서 쥐면서 나긋나긋 속삭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그릇을 두 손으로 아이들한테 건네면서 상긋상긋 속삭입니다. 우리 몸에 들어오는 이 고운 숨결로 새롭게 놀이를 즐기는 하루를 짓자꾸나. 4349.1.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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