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에서 온 소녀와 이야기 양탄자 희망을 만드는 법 3
안드레아 카리메 지음, 김라합 옮김, 아네테 폰 보데커 뷔트너 그림 / 고래이야기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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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32



이라크에 떨어지는 폭탄은 독일에는 안 떨어진다

― 바그다드에서 온 소녀와 이야기 양탄자

 안드레아 카리메 글

 아네테 폰 보데커 뷔트너 그림

 김라합 옮김

 고래이야기 펴냄, 2009.9.5. 9000원



  밤에 아이들을 고요히 재울 수 있는 까닭은 우리 보금자리와 마을이 차분하면서 따사롭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평화가 있기에 어버이는 아이를 기쁘게 보살피면서 하루를 지을 수 있습니다. 평화가 없는 곳이라면 어버이는 아이를 느긋하거나 넉넉하거나 따사롭게 보살피기 어려워요. 평화가 있기에 즐겁게 하루를 열어서 기쁘게 살림을 짓습니다.


  안드레아 카리메 님이 글을 쓰고, 아네테 폰 보데커 뷔트너 님이 그린을 그린 《바그다드에서 온 소녀와 이야기 양탄자》(고래이야기,2009)를 읽으면서 평화와 전쟁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는 이라크 가시내입니다. 이라크에서 나고 자랐으나 더는 이라크에서 살지 못하면서 다른 나라로 가서 살아야 하는 아이입니다. 어머니처럼 고향을 그리고, 고향집을 그리며, 고향마을에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그리는 아이예요.



저는 지금 이모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그래도 엄마는 이모한테 편지를 쓰라고 했어요. 편지를 써서 바그다드에 있는 우리 집 주소로 보내래요. (5쪽)


여기에서는 엄마가 저를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보내세요. 이라크에서처럼 유괴를 당하거나 갑자기 폭탄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요. (10쪽)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네 식구는 이라크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이라크에 전쟁이 터질 무렵 적잖은 이라크 사람들은 이라크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래저래 살림이 안 되어 이라크를 못 떠난 사람도 많고, 이래저래 살림이 안 되더라도 어떻게든 이라를 떠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라크를 떠난다고 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즐겁거나 넉넉하게 살기는 만만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이라크에 남는다고 해서 그곳에서 즐겁거나 넉넉하게 살기에도 똑같이 만만하지 않아요.


  이라크에서는 폭탄 걱정을 하면서 살지만, 이라크를 떠나 독일로 온 아이는 학교에서 따돌림하고 괴롭힘을 받습니다. 이라크에서는 하지 않던 걱정을 독일에서 합니다. 이라크에서는 받지 않던 따돌림하고 괴롭힘을 독일에서는 고스란히 받습니다.




이모가 그랬죠? 이야기는 슬픔과 걱정을 잊게 해 준다고요. 정말 그런가 봐요. 제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나자 엄마가 웃었거든요. 그리고 누리야, 누리야, 이러면서 저를 몇 번이나 껴안았어요. (21쪽)


어젯밤에 파트릭이 저를 괴롭히는 꿈을 꾸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 아이의 괴롭힘에서 스스로 벗어났어요. 제 양탄자가 저를 구해 준 셈이죠. (27쪽)



  《바그다드에서 온 소녀와 이야기 양탄자》에 나오는 아이는 고향집에 편지를 씁니다. 이라크에서 함께 빠져나오지 못한 이모한테 연락이 닿기를 바라면서 편지를 써요. 편지는 고향집에 제대로 닿을까요? 전쟁이 한창이더라도 우체국 일꾼은 폭탄 물결을 뚫고 씩씩하게 편지를 나를 수 있을까요? 아니, 전쟁이 한창이더라도 우체국은 꿋꿋하게 문을 열까요?


  아무튼, 이라크 아이는 다른 모든 걱정은 내려놓으면서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이 편지에는 이모를 그리는 마음뿐 아니라 아이 나름대로 짓는 이야기를 붙입니다. 집과 마을과 학교에서 느끼는 고단한 삶을 아이 나름대로 짓는 이야기로 풀어내어 날마다 조금씩 써요.




전쟁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갔어요. 밖에 나가 놀 수도 없게 되었고요. 그런데 여기(독일)에서는 모든 게 괜찮은 걸까요? (41쪽)


“알라신이 여기 사막에 살고 있는 거 맞아요?” “그래, 나는 알라신이 여기 어디엔가 살고 있다고 믿는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거기가 어디라고는 말해 줄 수가 없구나.” (49쪽)



  이라크 아이는 ‘검은니 왕’ 이야기를 씁니다. 누구한테서도 들은 적이 없는 이야기를 아이 스스로 새롭게 씁니다. 드넓은 사막에서 작은 짐승하고 벌레를 괴롭히는 검은니 왕하고 얽힌 이야기를 써서 스스로 마음풀이를 하고 꿈짓기를 합니다. 동무도 이웃도 없이 모든 이를 괴롭히기만 하던 검은니 왕 이야기를 그리는 아이 마음속에는 동무랑 이웃이랑 사이좋게 어울리는 평화로운 꿈이 있어요. 검은니 왕이 무시무시하게 으르렁거릴 수 있던 ‘검은니’를 슬기롭게 몽땅 뽑아 버리는 이야기를 쓰면서, 이 지구별에, 그러니까 이라크뿐 아니라 온누리에 따사로운 평화가 흐르기를 바라는 꿈을 이야기 하나에 살포시 담아요.


  이라크에 떨어지는 폭탄은 독일에는 안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이라크 아이가 받은 생채기는 더없이 큽니다. 이라크 아이가 한국이라는 나라로 왔다면 어떻게 지낼까요? 이 아이는 한국에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지 않으면서 느긋하고 사랑스러우면서 기쁘게 하루를 누릴 만할까요? 한국 사회는 이웃나라 작은 아이들을 넉넉하게 품으면서 평화를 가르치거나 들려주거나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베풀 만할까요?




그제야 검은니 왕은 사정을 알아차렸어요. 입 안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주 아주 작은 이빨뿐이었어요. 검은니 왕은 이제 자기가 더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놀림당하는 왕을 왕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67쪽)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는 스스로 이야기를 지으면서 스스로 새롭게 일어서려고 합니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가 지은 이야기를 들은 아이 어머니는 아이한테서 듣는 이야기로 슬프며 고단한 마음을 달랜다고 합니다. 이라크에 남았던 이모도 뒤늦게 이 편지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으면서 전쟁 불구덩이에서도 밝은 꿈씨앗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이 땅에 씨앗을 심는 숨결이지 싶어요. 평화라는 씨앗을 심고, 꿈이라는 씨앗을 심으며,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는 숨결인 아이들이지 싶어요. 참말로 아이들은 전쟁무기를 만들지도 않고, 군대도 거느리지 않아요. 아이들은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고, 다툼질이나 싸움질도 좋아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포근하고 넉넉한 품을 좋아하고, 동무들이 서로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놀이를 즐겨요.


  이 어여쁜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적에 온누리에 평화가 흐르겠지요. 이라크에도, 독일에도, 한국에도, 그리고 모든 지구별 나라마다 아이들이 맑으면서 밝은 넋으로 평화와 꿈과 사랑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9.1.22.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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