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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 - 누구나 행복한 사람이 되는 곳
김경희 지음 / 공명 / 2015년 12월
평점 :
책읽기 삶읽기 225
기쁨은 돈으로 따지거나 재지 않습니다
―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
김경희 글·사진
공명 펴냄, 2015.12.30. 13800원
방송작가로 일하는 김경희 님은 좀처럼 말미를 내어 차분히 쉬거나 여행을 다니지 못했다고 합니다. 열 살 난 아이가 있어서 이 아이를 두고 보름씩 집을 비우면서 나라밖을 다녀올 생각을 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부탄을 둘러보려는 마음이 커서 체류비를 씩씩하게 냈고, 마흔 문턱에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넋으로 비행기를 탔다고 합니다.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공명,2015)라는 책은 부탄이라고 하는 나라가 참으로 얼마나 ‘기쁨 나라(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인가를 몸으로 겪어서 느껴 보려고 하는 발걸음으로 태어납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김경희 님은 2014년에 바닷속에 슬프게 가라앉은 세월호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잊거나 잃은 ‘사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부탄에서 찾아보고 싶었다고 해요.
부탄 사람들에게는 순박하고 착해 보인다는 흔한 말로는 부족한 정갈한 매력이 있었다. 그게 뭘까, 한참 생각하던 나는 어느 순간 그것이 ‘품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농부는 농부대로, 공항 경비원은 또 그들대로, 자기 나름의 분위기와 품위가 있었다. (28쪽)
부탄의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겠지만 거대한 산자락 아래 위치한 이 학교는 시야가 탁 트여 있으면서도 무척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운동장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정경은 최고였다. (87쪽)
경제성장율이나 국민소득으로 치자면 부탄이라는 나라는 거의 맨끝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해요. 숫자로 쳐도 부탄은 국민소득이 3000달러 즈음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부탄에서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기쁨’은 무척 높다고 나와요.
한국은 경제성장율이나 국민소득으로 치자면 꽤 앞쪽에 든다고 할 수 있어요. 숫자로 치면 한국사람은 제법 잘사는 나라라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부탄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기쁜 삶’이라고는 느끼지 못한다고 해요. 부탄하고 견주면 얼추 아홉 곱(2014년 잣대로 한국 국민소득은 27090달러)이나 되는 국민소득인 한국이지만, 정작 한국사람이 살갗으로 느끼는 기쁨은 무척 떨어진다고 할 만해요.
다시 말하자면, 부탄은 숫자로 기쁨을 따지지 않는 나라요, 한국은 기쁨보다는 숫자를 따지는 나라입니다. 부탄이라는 나라에서는 국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사는 기쁨’하고 ‘사는 보람’을 생각한다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살며 벌어야 하는 돈’하고 ‘살며 가져야 하는 돈’에 많이 얽매이는 셈입니다.
20달러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을 가진 기업들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스카프 한 장이 수십만 원에 팔리는 세상에서 대자연의 기도가 담긴 머플러를 20달러에 두 장이나 산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더마가 내게 차 한 잔을 더 권했다. (112쪽)
“하하, 요리를 재미로 하나요? 가족들과 함께 맛있게 먹기 위해서 하죠.” “그렇구나. 초키는 정말 좋은 남편이에요.” “누구나 하는걸요, 뭘. 한국 남자들은 요리를 안 하나요?” (120쪽)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를 쓴 김경희 님은 방송작가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다큐작가로서 쓰지 않습니다. 보름에 걸쳐서 부탄에서 조용히 살며 겪은 대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때때로 사진기를 들어서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두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으며 느낀 이야기를 적바림해요.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책을 덮고서 부탄하고 얽힌 여러 가지 ‘지표(숫자)’를 살펴보고, 한국하고 얽힌 여러 가지 지표도 살펴봅니다. 한국하고 얽혀 땅뙈기는 세계 109위라 하고, 인구는 세계 26위라 하며, 국민소득은 세계 11위라고 나옵니다. 부탄은 땅뙈기가 세계 137위라 하고, 인구는 세계 165위라 하며, 국민소득은 세계 159위라고 나와요.
한국에 있는 학교에서는 세계 역사나 문화를 가르칠 적에 으레 이러한 숫자를 바탕으로 가르치겠지요. 매체에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룰 적에도 으레 이러한 숫자를 들 테고요. 그러면 이러한 숫자에는 어떤 기쁨이나 즐거움이나 보람이나 사랑이나 꿈이 깃들었다고 할 만할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정부는 언제나 경제성장율을 높이겠다는 정책만 밝히는데, 경제성장율을 높이면 우리는 얼마나 기쁘거나 즐겁게 살 만할는지요.
와이파이가 되지 않으니 음악을 들을 수도 없었고 불빛이 없으니 책을 읽기에도 좀 애매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요함 속에 누워 있으니 평소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귀에 들렸다. 몇 시간 사이에 빗줄기가 굵어졌는지 처마를 타고 흐르는 빗소리가 전해졌다. (172쪽)
현명한 부탄 아가씨들은 돈이나 배경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구애를 펼치는지 본능으로 받아들인다. (184쪽)
부탄도 부탄이지만 내가 지내는 보금자리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아이들한테 어머니나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벌어서 집안으로 가지고 와야 아이들이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랑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벌 때보다는 저희랑 함께 있으면서 함께 놀고 웃고 노래하고 어울리고 잠들고 이야기할 적에 기뻐하거나 즐거워합니다. 밥상맡에 함께 둘러앉아서 수저를 들 때에 기뻐하거나 즐거워합니다. 밥상에 온갖 먹을거리를 잔뜩 차려야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언제나 따스한 사랑하고 너른 꿈을 바라요. 아이들은 어떤 숫자나 지표를 따지거나 챙기거나 살피지 않아요. 과자 한 점을 먹을 적에도 서로 나누고 어머니나 아버지 입에도 똑같이 주고 싶은 아이들은 기쁜 마음하고 즐거운 숨결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나게 뛰놀 수 있는 마당을 좋아하는 아이들이고, 마음껏 달릴 수 있는 들길을 좋아하는 아이들입니다.
“점배, 아이들이 어쩜 저렇게 인사를 잘하죠?” “학교에서 배우고 집안에서 배우고 마을 어른들에게도 배우니까요.” (263쪽)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번다는 사실은 잊어버린 듯하다. 부탄 사람들은 돈을 버는 것에도 성공하는 것에도 능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확실히 우리보다 더 행복하다. (311쪽)
김경희 님이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라는 책에서도 쓰듯이, 기쁘기에 기쁘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돈을 벌기에 기쁜 삶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벌려 하면 돈을 벌 뿐입니다. 국민소득이 높으면 그저 국민소득이 높다는 뜻일 뿐, 사람들이 서로 돕고 아끼고 돌보고 사랑하고 어깨동무를 한다는 뜻이 되지 않아요.
참말로 기쁨은 숫자로 따질 수 없습니다. 기쁨은 돈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기쁨은 시험성적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기쁨은 집 넓이나 자동차 크기로 따질 수 없습니다. 기쁨은 키나 몸무게로 따질 수 없습니다. 기쁨은 언제나 마음으로 살펴서 삶으로 누릴 뿐입니다.
노래하는 마음이 되기에 노래가 흘러나오고, 춤추는 마음이 되기에 춤사위가 샘솟습니다. 노래방에서만 소리를 빽빽 질러대는 몸짓이 아니라, 여느 자리에서 밥을 짓고 길을 걷고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느긋하고 살가이 노래할 수 있는 몸짓이 될 때에 비로소 기쁜 삶이 되리라 봅니다. 돈을 내고 들어가는 춤판이 되기에 춤을 추는 몸짓이 아니라, 밥을 짓다가도 춤을 추고 길을 걷다가도 춤을 추며 마당에서 아이들하고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는 몸짓이 될 적에 바야흐로 기쁜 사랑이 되리라 느껴요. 멀리 있는 기쁨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 있는 기쁨이니, 바로 이 기쁨을 눈여겨보고 아낄 때에 스스로 웃는 삶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4349.1.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