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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을 타고 온 아이 ㅣ 난 책읽기가 좋아
티에리 르냉 지음, 한지선 그림, 심지원 옮김 / 비룡소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30
별에서 온 따사로운 숨결이 내 곁에
― 별빛을 타고 온 아이
티에리 르냉 글
한지선 그림
심지원 옮김
비룡소 펴냄, 2003.6.23. 7000원
아이는 한 살 두 살 자라면서 궁금한 것을 묻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다 궁금해 하기에 모두 다 물어요. 밥을 왜 먹는지도 묻고, 잠을 왜 자는지도 묻습니다. 이를 왜 닦는지도 묻고, 몸을 왜 씻는지도 묻지요. 그리고 어떻게 이 땅에 태어났는지도 묻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수 있던 까닭이라면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만나서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오직 이 하나만을 아이한테 말할 수 없어요. 아이가 태어나는 일뿐 아니라, 사람이 늙거나 다치거나 아파서 죽는 일을 놓고도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고만 말할 수 없어요. 삶도 죽음도 아이한테는 이야기로 들려주어야 한다고 느껴요.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뿐 아니라, 이 아이들을 낳은 나랑 곁님도 어버이가 있어요. 나도 예전에는 아이로 태어나서 자랐어요. 내가 오늘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로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아이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어느 날 고요히 숨을 거둔다면, 그때에 아이한테 들려줄 이야기는 아이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해야 하는가를 밝히는 실마리가 되어요.
나는 마로니에 나무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나무는 할아버지가 태어나던 날 할아버지의 아빠가 심어 놓은 나무였습니다. 나는 두 주먹으로 나무를 마구 때리면서 소리쳤습니다. “할아버지, 움직여 보세요! 움직여 보란 말이에요…….” (10쪽)
내가 롤라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만 조용히 돌아서서 그 방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너희 부모님은 돌아가셨단다.” (23쪽)
티에리 르냉 님이 글을 쓰고, 한지선 님이 그림을 그린 《별빛을 타고 온 아이》(비룡소,2003)를 읽습니다. 이 어린이문학은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룹니다. 첫째, 죽음을 다룹니다. 둘째, 삶을 다룹니다.
이 책을 읽으면 첫머리에서는 죽음을 먼저 다뤄요. 어느 마을에서 할아버지하고 사랑스레 살던 아이가 있는데, 어느 날 그만 할아버지가 죽었다고 해요. 아이는 죽음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해요. 어제까지 즐겁게 함께 놀고 웃던 할아버지가 오늘부터 없다고 하니 이 대목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는 아이한테 죽음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해요. ‘죽었다’는 말하고 ‘다시 보지 못한다’는 말을 빼고는 더 이야기를 하지 못해요.
아이한테는 할아버지일 테지만 어버이한테는 아버지예요. 아이도 할아버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테지만 어버이도 아버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셈이에요. 그러니 어버이도 아이도 그만 아픈 수렁에서 헤매기만 해요. 아이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 죽음’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요. 가슴이 뻥 뚫린 채 ‘눈물 없는 사람’으로 살아요.
롤라는 어떻게 나를 불쌍히 여길 만큼 강할 수 있을까? 왜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걸까? 왜 롤라는 죽음과 싸우기 위한 나무로 된 칼이 필요하지 않는 걸까? (33쪽)
내 어릴 적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한테 할아버지와 할머니인 두 분이 돌아가실 무렵에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앞으로 어디로 가는가’를 제대로 이야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돌아가셨다’는 말만 해 주었습니다.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이 이 땅을 떠날 적에도 ‘죽었다’는 말만 들을 뿐이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를 놓고도 ‘태어났다’는 말만 들었어요. 새로운 아이가 어떤 숨결로 이 땅으로 찾아왔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이야기로 들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바로 이 대목을 오늘 우리 아이들이 나한테 묻습니다. 사람이 죽는 일은 무엇이고, 아기가 새로 태어나는 일은 무엇인가 하고 물어요.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하고 물으며, 사람은 왜 아기로 새로 태어나는가 하고 물어요.
“나는 별에 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도 많아요. 사실 진짜 사람들은 아니에요. 그곳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거든요. 그리고 나는 별똥별의 꼬리를 타고 여행을 다녔어요 … 처음에는 지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산이랑 숲, 바다, 이런 모든 것들이 참 예뻤지만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곧 떠나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그때 어떤 아름다운 마을 한가운데에서 작은 점 두 개를 발견했어요.” (36∼37쪽)
“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품에 안기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매일 조금씩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갔죠.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엄마 아빠의 대화를 듣게 됐어요.” (38쪽)
《별빛을 타고 온 아이》를 읽으면, 이 책에서는 삶(태어남)을 ‘기쁨을 누리려고 다른 별에서 이 땅으로 왔다’고 하는 이야기로 들려줍니다. 새로운 숨결이 별(별똥)을 타고 지구 둘레뿐 아니라 온 우주를 마음껏 돌아다니는데, 지구라는 별을 둘러보다가 매우 사랑스러운 두 사람을 보았대요. 별(별똥)을 타고 온 우주를 오랫동안 돌아다니던 숨결은 지구라는 별에서 문득 찾아내어 지켜보는 두 사람이 매우 사랑스럽기에 가만히 보고 또 보고 하다가 어느 날 이 두 사람이 마음으로 비는 꿈을 엿들었대요. 그러고는 이 두 사람한테서 태어나기로 마음먹었대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교통사고로 두 어버이를 잃은 아이’가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죽은 뒤로 가슴이 뻥 뚫린 채 눈물이 말라붙은 채 사는 아저씨’한테 들려줍니다. 두 어버이를 잃은 아이는 오히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아저씨더러 기운을 내라면서 북돋아 주어요. 간호사 아저씨는 오히려 어쩔 줄 몰라 하고, 병원에 드러누워 꼼짝을 못 하다가 곧 죽음을 맞이하려는 아이는 둘레에 있는 사람들을 차분히, 따스히, 넉넉히 마음으로 보듬어 줍니다.
“떠나지 마……. 우리와 함께 있어, 롤라…….” 롤라의 입술이 움직였습니다. 롤라는 간신히 숨을 쉬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쥘 아저씨, 별빛 속에서…… 나를 찾으세요…….” 그리고 롤라의 눈은 감겼습니다. (45쪽)
먼 우주에서 별을 타고 온 아이는 다시 먼 우주로 별을 타고 떠났을까요? 먼 우주에서 별을 타고 온 숨결은 이 지구에서 태어나려고 몸을 얻었다면, 이 지구에 나들이를 와서 기쁘게 한삶을 누린 뒤에 다시 먼 우주로 떠날 즈음에는 몸을 이곳에 내려놓고 고요히 숨을 멈춘 셈일까요?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뿐 아니라 오늘 내 곁에 있는 아이들도, 바로 나도, 그리고 우리 어버이도, 모두 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처럼 별을 타고 지구로 찾아와서는 다시 별을 타고 우주로 긴긴 나들이를 떠날까요?
아홉 살 아이하고 ‘별아이’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아홉 살 아이는 ‘별아이’ 이야기를 듣고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다른 별에서 이 지구로 찾아와서 함께 사랑을 짓는 사이로 지낸다고 이야기하고, 저마다 이 지구라는 별에서 기쁜 살림을 가꾸면서 꿈을 키운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모두 받아들일 수 있으면 모두 가슴에 담겠지요.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아직 잘 모르겠으면 아직 모르는 대로 가만히 귀를 기울일 테지요. 우리가 저마다 별아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저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서 기쁜 넋이라는 뜻이에요. 별아이로서, 또 어버이로서, 또 우리 어버이한테는 아이인 삶으로서, 오늘 하루도 기쁨을 가슴에 담고 활짝 웃고 노래하자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4349.1.1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어린이문학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