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 - 수학 옛이야기
데미 글.그림, 이향순 옮김 / 북뱅크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603



‘쌀 한 톨’에 깃든 힘

― 쌀 한 톨 (수학 옛이야기)

 데미 글·그림

 이향순 옮김

 북뱅크 펴냄, 2015.1.30. 13000원



  쌀 한 톨이 있습니다. 벼라고 하는 풀이 맺은 열매를 깎아서 쌀을 얻습니다. 벼 열매인 ‘벼알’, 그러니까 ‘나락’ 겉껍질인 겨를 살짝 깎으면 누런쌀이고, 겉껍질인 겨를 많이 깎으면 흰쌀입니다. 겉껍질을 살짝 깎으면 누런 빛이 감도는 쌀을 얻고, 겉껍질을 많이 깎으면 하얀 빛이 감도는 쌀을 얻어요. 갓 지어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쌀밥은 바로 벼라고 하는 풀이 우리한테 베푸는 고운 선물입니다.


  이 쌀을 알맞게 씻고 불려서 밥을 지을 적에 늘 아이들이 곁에 달라붙으면서 묻습니다. 날마다 먹으면서도 새삼스레 묻고, 늘 바라보면서도 새롭게 묻습니다. “이 쌀 뭐야?”


  이 쌀은 무엇일까요? 참말 이 쌀은 무엇일까요? 쌀이란 무엇이기에 우리한테 밥이 되고, 우리 목숨을 돌봐 주며, 이 땅에 논을 이루어 열매를 맺어 새로운 숨결을 베푸는 선물이 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배가 부릅니다. 배가 부르면 한결 신나게 뛰어놉니다. 어른도 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배가 불러요. 배가 고플 무렵에는 일을 멈추고 밥상맡에 둘러앉아 느긋하게 밥술을 들지요. 밥을 먹는 동안에는 누구나 평화롭고 평등하며 포근합니다.



그곳 백성들은 벼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농사지은 쌀을 거의 모두 왕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6쪽)



  데미 님이 빚은 그림책 《쌀 한 톨》(북뱅크,2015)을 읽습니다. ‘수학 옛이야기’라고 하는 《쌀 한 톨》인데, 이 그림책은 인도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빚었다고 해요. 굶주리는 백성을 못 본 척하면서 궁궐 곳간에 쌀자루를 가득 모아 두기만 한 임금님을 넌지시 나무란 어느 가시내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어요.




쌀자루 하나에서 쌀이 떨어져 내리는 걸 동네에 사는 라니라는 소녀가 알아챘습니다. 라니는 재빨리 뛰어가 코끼리 곁을 따라 걸으면서 치마폭에 떨어지는 쌀알을 받았습니다. (13쪽)



  계급이 촘촘히 나뉜 인도 사회에서 가난한 시골마을 가시내는 어떻게 임금님을 넌지시 나무랄 수 있을까요? 게다가 고작 쌀 한 톨로 임금님을 구석에 몰아붙이면서 잘잘못을 일깨울 뿐 아니라, 쌀 한 톨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대목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림책 이야기를 살피면,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어느 임금님이 궁궐 곳간에 쌀자루를 모으면서 ‘굶주림이 들 때를 살펴서 미리 쌀자루를 모으고, 나중에 굶주리는 사람이 없도록 하려는 뜻’이라고 밝혔다고 해요. 그런데 막상 나라에 굶주림이 돌자 임금님은 곳간을 안 열었다는군요. 나중에 더 큰 굶주림이 찾아들는지 모르는데 섣불리 곳간을 열 수 없다고 말했다는군요.


  임금님 말마따나 올해보다 이듬해에 더 깊고 고단한 굶주림이 찾아들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농사를 짓는 시골사람은 오늘 밥을 먹지 못해 굶주리다가는 그만 목숨을 잃겠지요. 올해에 굶주림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긴다면, 이듬해에는 ‘일할 사람’이 줄어들 뿐 아니라, ‘일할 힘’도 빠지겠지요. 한 번 굶주리고 나면 이듬해에는 더 굶주리기 마련이고, 그 다음해에는 더욱 굶주릴 수밖에 없어요. 임금님으로서는 ‘나중을 생각하겠다’고 말하면 될는지 모르나, 오늘 굶주리는 사람들로서는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기에 임금님더러 곳간을 열어 달라고 외치지만, 임금님은 이런 목소리를 귀여겨듣지 않아요.




“전하, 상이라니요. 저는 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꼭 그리 하고자 하신다면 저에게 쌀알 한 톨만 주시옵소서.” (16쪽)



  임금님은 밥을 굶은 일이 있을까요? 임금님은 굶주려서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드러누워야 하던 날이 있었을까요? 임금님은 농사가 잘 안 되어 곡식을 거의 거두지 못해 슬픈 삶을 스스로 겪은 적이 있을까요? 백성이 굶주릴 적에 임금님은 무엇을 먹으면서 지낼까요?


  곳간을 열지 않아 사람들은 굶주리다가 죽습니다. 이러는 동안 궁궐에서는 잔치도 열리지요. 배고프지 않은 사람은 배고픈 줄 모르니까요. 이웃이 어느 만큼 배고프거나 고단한지 모르니까요.


  이럴 즈음 어느 시골마을 가시내가 ‘왕실 곳간에서 궁전으로 쌀자루를 싣고 가는 코끼리’를 봅니다. 쌀자루를 싣고 가던 코끼리는 ‘가는 길에 쌀알을 흘립’니다. 이름이 ‘라니’라는 가시내는 이 모습을 보다가 문득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쌀 한 톨만 이녁 치맛자락에 담지요. 그러고는 궁궐로 찾아가서 임금님한테 쌀 한 톨을 바치기로 해요. 코끼리가 흘린 쌀 한 톨을 마음대로 가질 수 없기에 임금님한테 돌려주겠노라 말하면서요.


  자, 임금님은 ‘길에 떨어진 쌀 한 톨을 임금님한테 돌려주겠다’고 밝히는 어린 가시내한테 무엇을 할까요? 임금님은 어린 가시내가 갸륵하다고 여기면서 무언가 선물(상)을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갸륵한 가시내는 임금님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임금님은 거듭 무엇이든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해 보라고 해요. 이때에, 어린 가시내는 하루에 쌀 한 톨만 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합니다. 다만, 이튿날에는 곱으로 두 톨을 주고, 그 다음날에는 다시 곱으로 넉 톨을 주되, 이렇게 서른 날만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해요.


  임금님은 가만히 헤아립니다. 어린 가시내가 그야말로 ‘욕심이 없이 너무 착하기’만 하다고 여깁니다. 코끼리가 싣고 가던 쌀자루에서 흘러내린 쌀알을 치맛자락에 고스란히 담아서 조용히 지나갔으면 더 ‘넉넉히’ 쌀을 얻었을 텐데, 좀 바보스럽기까지 하다고 여깁니다.




9일째 되던 날 라니는 256톨에 이르는 쌀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라니가 받은 쌀은 전부 511톨이었는데, 그건 겨우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양이었습니다. ‘이 소녀는 정직하지만 대단히 영리하지는 않구나. 쌀자루에서 흘러나오는 쌀을 치마폭에 담았더라면 이보다 더 많은 쌀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왕이 생각했습니다. (20쪽)



  쌀 한 톨을 받기로 한 날부터 서른 날이 지난 뒤에는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참말 임금님 말대로 라니라는 가시내는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은 선물을 바랐을까요?


  첫 날에는 한 톨이고, 사흘째에는 넉 톨이며, 닷새째에는 열여섯 톨인 쌀알입니다.  여드레째에는 256이라는 숫자가 되고, 열나흘째에는 8192이라는 숫자가 되어요. 그런데 열여드레째에는 131,072라는 숫자가 되더니 스물이틀째에는 2,097,152라는 숫자가 되어요. 스물여드레째에는 134,217,728이라는 숫자가 되고, 마지막 서른째 날이 되니 자그마치 536,870,912이라는 숫자가 됩니다.


  임금님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어린 가시내하고 다짐을 했기에 이 숫자만 한 쌀알을 모두 선물로 주었고, 서른째 날이 되니 임금님 곳간에 있던 쌀자루는 모두 어린 가시내한테 돌아갔습니다. 어린 가시내는 임금님을 아뢰면서 이 쌀자루는 모두 ‘굶주린 이웃’한테 나누어 줄 생각이라고 밝힙니다. 이때가 되어서야 임금님은 스스로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닫습니다. 굶주린 사람이 코앞에 있을 적에는 참말 ‘코앞에 있는 굶주린 사람한테 밥을 주어’야 하는 줄 깨닫지요. 쌀 한 톨이 한 달 사이에 ‘궁궐 곳간에 있는 쌀자루’를 모두 비우는 숫자가 되듯이, 굶주림이 이렇게 커진다는 대목을 비로소 알아차리지요.


  아이하고 그림책 《쌀 한 톨》을 함께 읽으면서 숫자놀이를 할 뿐 아니라, 숫자하고 얽히는 삶을 나란히 돌아봅니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읽는 눈길이 아니라 속으로 깃드는 삶을 곰곰이 읽을 줄 아는 눈길이 될 때에 비로소 참다운 살림이 되고 사랑이 되는 얼거리를 되새겨요. 곳간에 쟁이기만 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복지’도 될 수 없다는 대목을 생각하고, 작은 씨앗 한 톨을 심어서 새롭게 거두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헤아립니다. 4349.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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