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원의 봄
조호진 지음 / 삼인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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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를 노래하는 시 108



봄볕은 소년원에도 깃들 수 있을까

― 소년원의 봄

 조호진 글

 삼인 펴냄, 2015.12.9. 8000원



  조호진 님이 빚은 시집 《소년원의 봄》(삼인,2015)은 소년원에도 소년원 바깥에서와 똑같이 봄날이 찾아오고 봄볕이 찾아들지만, 막상 따스한 숨결이나 기운은 흐르지 못하는구나 싶은 사회 모습을 시로 찬찬히 그립니다. 날씨는 봄이지만 마음은 봄이기 어려운 사람들 이야기를 시로 그리고, 햇볕은 따사롭게 내리쬐지만 따사롭다 싶은 사랑이 깃들지 못하는 구석진 삶자리 이야기를 시로 그려요.



가난한 이들 덕에 칭찬받은 그대여 / 가난한 이들 덕에 유명해진 그대여 / 가난한 이들 덕에 훈장 받아 놓고서 / 어찌하여 그대 안에 가난함이 없나요 (무료급식소에서 5)


아내는 호박죽을 좋아하고 저는 그 샛노란 빛깔을 좋아해서 / 팔 아픈 아내 대신해 호박죽이 타니 않도록 잘 저었습니다. (묵정밭 늙은 호박)



  한겨울이지만 포근한 날씨인 전남 시골마을에서 시를 한 줄 읽다가 아이들하고 마실을 나옵니다. 이틀쯤 드센 바람이 불었지만 이 바람이 가라앉으면서 한겨울이 무척 포근합니다. 아마 이 고장뿐 아니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고장도 제법 포근하리라 생각합니다. 한겨울에도 바람이 자는 날이라면 어디에도 봄볕 같은 기운이 퍼지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마음이 포근하지 못하면 포근한 겨울바람이 찾아와도 몸이며 살림이며 집이며 포근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포근할 적에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도 몸이나 살림이나 집이나 포근하게 지키거나 건사할 수 있어요.


  이 같은 대목을 예전에도 알았는지 몰랐는지 가만히 돌아보면, 아마 예전에도 알았을는지 모르나 똑똑히 못 깨달았구나 싶습니다. 아니,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했고, 모르면서도 새롭게 알려고 나서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따뜻한 집일 적에도 따뜻할 수 있으나 마음이 따뜻하지 못하면 난방이 잘 되는 집이어도 따뜻하지 못하다는 대목을 나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추운 집일 적에는 그야말로 추울 테지만 마음이 따뜻할 적에는 추위를 잊거나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대목을 나 스스로 똑똑히 알아차리려 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가난한 시인을 위해 / 아내를 특별한 선물로 주셨다. (임무)


목숨 걸고 / 지켜야 할 것은 / 이따위 조국이 아니라 / 내 목숨보다 귀한 자식이다. // 어린 목숨들 죽이는 / 이따위 조국은 조국 아니다. / 우리들의 자식 빼앗아 가는 / 이따위 조국은 조국 아니다. (당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한 가지라면 바로 삶이지 싶습니다. 목숨을 바쳐 살려야 하는 한 가지라면 바로 사랑이지 싶습니다. 아이들을 바닷속에 가두어 버리는 나라라든지, 군부대를 새로 짓는다며 땅과 바다를 모두 망가뜨리는 나라라든지, 경제성장율만 바라보면서 쌀이며 곡식이며 끝없이 수입하려는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나라라든지, 아직도 원자력 발전소를 놓지 않으려는 나라라든지, 평화로운 학교가 아닌 입시지옥 학교로 가는 교육정책을 바꾸지 않으려는 나라를 지킬 노릇이 아닙니다. 삶이 삶답고 사랑이 사랑다울 수 있는 길로 나아갈 노릇이요, 우리 아이들부터 삶과 사랑을 배우도록 할 노릇입니다. 이러면서 어른인 나도 삶과 사랑을 새롭게 배워야지요. 아이와 어른이 살가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삶과 사랑을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가르치며 배워야지요.



잡혀 가는 거리의 소년아 / 너의 죄는 얼마만큼 무겁기에 / 고개도 못 든 채 울기만 하느냐 (자복)


소년들이 예수를 알겠느냐 구원을 알겠느냐 / 사랑을 알겠느냐 은혜를 알겠느냐 그냥 둬라 / 받아본 적도 맛본 적도 없는데 어찌 알겠느냐 / 어린 나이에 죄의 진흙탕에 빠진 게 누구 죄냐 (소년원 예수)



  조호진 님은 시 한 줄로 사회를 바라봅니다. 아이들한테 죄를 들씌우는 사회가 아닌, 아이들한테 사랑을 보여줄 사회를 바라면서 시를 한 줄 씁니다. 아이들한테 차가운 감방을 안기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들을 포근하게 감싸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어른들이 아름답게 일굴 사회를 꿈꾸면서 시를 한 줄 씁니다.


  아주 마땅한 일인데 더 나은 복지가 되어야 아이들이 즐겁지 않습니다. 더 나은 복지를 정책으로도 꾸릴 노릇이지만, 이에 앞서 어른들 스스로 사랑과 평화와 평등으로 삶을 슬기롭게 가꿀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사랑과 평화와 평등이 없이 복지 정책만 꾸리려 한다면, 복지 정책조차 제대로 서지 못해요. 사랑을 모르면서 무슨 복지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평화와 평등을 모르고서 어떤 복지를 살필 수 있겠습니까. 따스한 기운이 없는 제도나 규칙이나 법이 아니라, 언제나 따스한 기운으로 삶을 북돋울 수 있는 사회가 된 뒤에 비로소 제도나 규칙이나 법을 살필 수 있어야지요.



눈물도 사랑도 없는 / 저것은 죽은 십자가다 / 저것은 탐욕의 십자가다 / 저것은 허위의 십자가다 (벽면예배)



  봄볕은 소년원에도 깃들 수 있을까요? 네, 틀림없이 소년원에도 깃들 수 있습니다. 봄볕은 청와대에도 시청에도 깃들 수 있습니다. 봄볕은 공장에도 발전소에도 깃들 수 있습니다. 봄볕은 겨울 빈들에도 깃들 수 있고, 봄볕은 낙동강이나 영산강에도 깃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봄볕은 우리 가슴에 깃들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지을 하루이고, 사랑으로 닦을 살림입니다. 사랑으로 찾을 꿈이요, 사랑으로 누릴 이야기입니다.


  아이들 눈물을 바라보면서 쓰는 시는 눈물을 씻으려는 시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눈물을 씻고 나서 웃음꽃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손길로 쓰는 시입니다. 이 눈물이 돋은 자리에 새롭게 웃음이 자라기를 바라는 손으로 시를 찬찬히 쓰고, 한 걸음 두 걸음 씩씩하게 나아갑니다. 이 땅에, 온누리 모든 곳에, 아이들이 겨울볕도 포근히 누리고 봄볕도 따사로이 맞이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서기를 빕니다. 죄도 잘못도 아닌 기쁜 사랑이 새싹처럼 터져나올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2.3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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