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의사에게 가르쳐준 것 - 하버드 의학박사가 농장에서 찾은 치유 비결
대프니 밀러 지음, 이현정 옮김 / 시금치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숲책 읽기 92



항생제와 첨단장비로는 ‘아픈 데’를 못 고쳐

― 땅이 의사에게 가르쳐 준 것

 대프니 밀러 글

 이현정 옮김

 시금치 펴냄, 2015.11.25. 18000원



  ‘내 땅’을 누리는 사람하고 ‘내 땅’을 못 누리는 사람은 그야말로 삶이 다릅니다. 내 땅 한 뙈기라도 있는 사람은 삶을 새롭게 가꾸는 꿈을 키울 만하지만, 내 땅 한 뙈기조차 없는 삶은 삶을 새롭게 가꾸는 꿈을 좀처럼 못 키웁니다.


  땅이 없어도 돈이 있으면 되지 않느냐 하고 여길는지 모르나, 돈은 있되 땅은 없는 사람은 아직 삶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돈으로 사서 얻을 수 있는 살림은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사서 얻는 모든 것은 ‘땅에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당이 한두 평이라도 있는 집하고 마당이 한두 평조차 없는 집은 사뭇 다릅니다. 마당이 있어 텃밭이나 꽃밭을 둘 수 있는 집하고 마당은 손바닥만큼조차 없어서 텃밭도 꽃밭도 두지 못하는 집은 그야말로 달라요.



나는 이때 처음 ‘공장형 농업’에 대응하는 ‘공장형 의료’라는 말이 떠올랐다. (33쪽)


“이 땅에 대해 걱정이 엄청 많았죠. 황폐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나는 양분이 부족한 농산물을 기르는 많은 사람들 중 일부가 되기를 원하는가?’ 양분이 부족한 흙에서 양분이 풍부한 음식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거든요.” (47쪽)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는 대프니 밀러 님이 쓴 《땅이 의사에게 가르쳐 준 것》(시금치,2015)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땅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의사로 일하는 대프니 밀러 님은 환자를 마주할 적에 항생제 같은 약품이나 여러 첨단장비만으로는 ‘아픈 곳’을 모두 다스릴 수 없다는 대목을 깨닫습니다. 의사인 대프니 밀러 님 스스로도 어디가 아프거나 힘들 적에 항생제 같은 약품만으로는 하나도 낫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되레 아픈 데를 도지게 하거나 다른 데까지 더 아프게 한다는 대목을 깨닫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의사 스스로도 아픈 데가 있다는 뜻입니다. 의사 스스로도 아픈 데를 바로잡거나 고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바보스러운 노릇일까요? 아니면 ‘자기고백’이나 ‘내부고발’일까요?



전통적인 농부들은 살충제, 제초제, 화학비료 없이 땅을 일구었고, 거름을 만들어 땅으로 돌려보내는 농사를 지었다. 이런 농사 시스템은 여러 세대 동안 지속되었는데, 그것은 그 방식이 땅과 가축의 건강, 그리고 사람의 건강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61쪽)


큰 유통 체인이 제공하는 유기 농산물은 거의 예외 없이 엄청 큰 규모의 농장에서 생산된 것이고, 유기농 인증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지켜서 재배한 것이다 … 그리고 무경운 농법을 활용하는 대신 해마다 밭을 갈아엎어서 비옥한 표토가 강으로 쓸려가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땅이 다음 작물에게 영양분을 줄 수가 없게 된다. (66쪽)



  의사이자 어머니인 대프니 밀러 님은 ‘환자가 아픈 데를 말끔히 터는 길’을 찾으려는 뜻에서 ‘땅’을 찾아나섭니다. 환자도 환자이지만 의사인 이녁 스스로 ‘아프지 않은 삶’을 살피고 ‘아프지 않은 삶을 넘어서 즐거운 삶’을 생각하고 싶어서 땅을 돌아봅니다.


  오늘날 불거진 관행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땅과 사람을 살핍니다. 이런 뒤에는,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자연농법으로 흙을 가꾸는 땅과 사람을 살펴요. 공장 축산이 이루어지는 땅을 찾아가서 몸소 살펴보고, 자연 방목을 펼치는 땅을 찾아가서 몸소 살펴봅니다.


  의사로서 대프니 밀러 님은 ‘두 가지 땅’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를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도시에서는 조그마한 텃밭조차 받아들일 틈이 없고, 이러한 도시에서는 시골에 커다랗게 지은 ‘관행농법 농장’에서 한꺼번에 엄청나게 많이 거두는 곡식이나 고기를 받아들이는 얼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달리 경제와 사회 모두 ‘작은 고장’이나 ‘작은 마을’ 얼거리로 나아가는 곳에서는 돈을 투자해서 더 큰 돈을 버는 얼거리가 아니라 즐겁게 일해서 즐겁게 나누는 삶이 됩니다.



앨리는 자신이 냉동 요리, 테이크아웃 음식, 에너지 바, 보조제에 그만큼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았다. (80쪽)


“정말 개처럼 열심히 일했지만, 호르몬, 백신, 구충제, 인공수정 비용, 사료, 질소비료, 트랙터 연료 따위에 점점 더 돈이 많이 들어가더군요. 그런데도 쇠고기 가격은 20년간 변하지 않았고요.” (93쪽)


“쓰레기가 들어가서 쓰레기가 나오는 것과 같아요. 많은 소들이 똥이 배에 닿도록 가득 찬 곳에 살고 있고, 영양가 있는 것을 먹지 못해요. 그 소젖을 살균한 것은 인간이 섭취하기에 적당하지 않아요. 맞아요. 그런 우유는 살균해야 돼요.” (112쪽)



  《땅이 의사에게 가르쳐 준 것》을 쓴 의사는 농사꾼이 아닙니다. 이 책을 쓴 분은 흙을 잘 안다거나 풀이나 나무를 잘 알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흙이나 밥이나 땅이 어떠한가를 느낄 줄 아는 마음이 있습니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공장 양계장’에 갇힌 닭이 어떠한가를 살핀 뒤에, 자연 방목을 하는 닭이 어떠한가를 살필 적에, 두 닭이 어떻게 다를 뿐 아니라 두 닭이 낳은 달걀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대목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 있어요.


  의사로서는 처방전만 쓰면 될는지 모릅니다. 의사로서는 진찰만 하면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의사도 사람이기에 아플 수 있겠지요. 의사 스스로 아플 적에는 의사 스스로 항생제 처방만 하면 다 나을까요? 의사 스스로 아플 적에는 다른 의사한테 진찰을 받고 처방만 받으면 다 나을까요?


  《땅이 의사에게 가르쳐 준 것》이라고 하는 책은 ‘뭔가 아니다’ 하고 느끼는 마음에서 태어납니다. 항생제와 처방전과 첨단시설로는 ‘아픈 데’를 낫게 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마음에서 태어납니다.



일찍 젖을 뗀 송아지들이 풀을 먹지 않으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어미 소와 함께 풀을 뜯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코디는 자신 있게 말했다. (128쪽)


“닭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더 행복해 하니까 달걀이 좋아요. 나도 행복하고, 경제적으로도 더 낫습니다.” (150쪽)


앤드루는 방울뱀을 보이는 대로 죽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가끔 뱀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렸다. 새로 묘목을 심은 포도밭에 조그만 땅굴이 움푹움푹 파여져 묘목들이 땅속에서부터 눈에 안 보이는 적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212쪽)



  햇볕을 쬐고 빗물을 마시면서 자란 남새하고, 비닐집에서 석유난로와 비료와 수돗물로 자란 남새는 생김새도 맛도 냄새도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비닐집에서 석유난로와 비료와 수돗물을 써서 남새를 키워도 얼마든지 유기농 인증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유기농 인증은 ‘유기농’으로 짓기만 하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햇볕을 못 쬔 유기농 남새나 열매를 먹는 사람은 무엇을 먹는 셈일까요? 사료만 먹고 자란 고기를 먹는 사람은 무엇을 먹는 셈일까요? 항생제와 촉진제로 한 달 만에 몸뚱이가 불어나서 고기닭으로 잡히는 살점을 먹는 사람은 무엇을 먹는 셈일까요?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물어볼 만합니다. 어미 소하고 들판을 노닐며 풀을 뜯은 적이 없는 송아지는 사료에만 길들기 때문에 나중에 풀밭에 풀어 놓아도 어찌할 줄 모르면서 풀을 안 먹거나 못 먹는다고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어릴 적부터 보육원과 어린이집과 학교와 학원에서 아주 오랫동안 지내는데, 이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거나 무엇을 할 줄 모를까요?



“저는 도시농업이 질병 예방 역할을 한다고 봐요.” 캐런은 이렇게 말하고는 뉴욕 시의 독립구 중에 브롱스만큼 질병 예방이 필요한 곳도 없다고 덧붙였다. (254쪽)


“그렇지만 한 종류의 성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는 마세요.” 애니가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되면 제약회사와 똑같이 사고하는 거예요. 허브로 약품을 만들려고 하는 것과 같지요.” (302쪽)



  사람들이 저마다 ‘내 땅’을 누릴 수 있다면 삶도 사회도 마을도 송두리째 바뀔 만하리라 봅니다. 사람들이 층층이 올린 건물에서만 살지 말고,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며 저마다 나무를 심고 텃밭을 조그맣게라도 가꿀 수 있으면, 삶이며 사회며 마을이며 나라며 모두 새롭게 거듭날 만하리라 봅니다.


  곰곰이 살피면, 정부에서는 ‘주택 정책’을 세우면서 ‘마당 없는 아파트’만 지으려 합니다. ‘마당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는 길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주차장은 없어도 마당이 있어야 할 노릇이고, 도시가 아닌 시골이어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삶터입니다. 아파트를 때려지은 뒤에 나무 몇 그루 장식품처럼 박는 겉치레가 아니라, ‘내 땅’과 ‘내 집’을 누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무를 심어서 보금자리하고 나무하고 땅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사회 얼거리가 될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삶이 태어나리라 봅니다.


  ‘아픈 데’를 낫게 하려면, 아니 처음부터 ‘아픈 데’가 없는 삶이 되도록 하려면, 우리는 누구나 내 땅을 누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내 땅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내가 먹을 남새나 곡식이나 열매에 섣불리 항생제나 비료나 농약을 치지 못합니다. 가장 좋으며 가장 나은 밥을 먹으려 할 테니까요. 4348.12.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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