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죄 - 국가의 죄와 과거 청산에 관한 8개의 이야기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권상희 옮김 / 시공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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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범죄 같은 잘못은 누가 뉘우쳐야 하는가

― 과거의 죄

 베른하르트 슐링크 글

 권상희 옮김

 시공사 펴냄, 2015.10.30. 13000원



  독일사람 베른하르트 슐링크 님이 쓴 《과거의 죄》(시공사,2015)는 독일사람이 저지른 잘못과 얽혀서, 이 잘못이 앞으로 언제까지 이어져야 하는가를 헤아리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입니다. ‘한 번 저지른 잘못’을 ‘한 번 뉘우치거나 용서를 빌’면 될는지, ‘한 번 저지른 잘못’은 나한테서 그치지 않고 내 아이한테까지 이어지거나 ‘내 아이가 낳은 아이가 낳은 아이’한테까지도 이어질는지, 또는 내 이웃이 저지른 잘못을 나하고 내 아이도 물려받아야 할는지를 다룹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1900년대 첫무렵에 독일이라는 나라가 이웃 여러 나라로 쳐들어가서 저지른 잘못은 ‘모든 독일사람’이 저지른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도 전쟁에 반대한 사람이 있고, 독일에서도 전쟁이 안 터지도록 애쓰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어요. 이와 달리, 독일 바깥에서 독일하고 손을 맞잡은 나라와 정치꾼과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저지른 잘못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1933년에서 1945년 사이에 범죄를 저질렀거나 범죄에 동참했던 사람들 이외에도 저항하고 반대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도 죄를 지은 사람과 동일시된다. 왜냐하면 일상적 죄개념에는 규범을 인정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동참하지 않으며 이에 저항하여 맞서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13쪽)


저항과 반대를 하지 않은 피해자들은 공포스러운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범죄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확신이 없어 눈을 감아버리고 판단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34쪽)



  아이가 두 살에 어떤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로서는 잘잘못이 아니라 ‘그냥 움직이면서 한 일’이지만 어른 눈에는 잘못으로 비칠 수 있어요. 이를테면, 힘이 여리고 손놀림이 어설픈 아이가 물잔을 들다가 그만 미끄러뜨려서 깰 수 있어요. 이때에 두 살 아이더러 “너! 잘못했어!” 하고 나무라거나 윽박지를 만할까요? 여섯 살 아이가 문득 궁금해서 어떤 단추를 눌러 볼 수 있습니다. 이 단추가 어떤 단추인지는 모르지만 살짝 튀어나온 모습이 재미있구나 싶어서 살그마니 손가락을 대고는 가볍게 누를 수 있어요. 이 때문에 무언가 말썽이 나거나 일이 틀어질 수 있겠지요. 그러면 이 아이더러 “너 말이야! 잘못했어!” 하고 따지거나 꾸짖을 만할까요?


  아이뿐 어른도 이와 비슷한 일을 숱하게 겪습니다. 어떤 일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잘 하지 못할 수 있어요. 자동차를 마흔 살이나 쉰 살 나이에 처음 몰기에 운전이 서툴 수 있지요. 운전이 서툴어 다른 자동차를 콩 박거나 전봇대에 쿵 박을 수 있어요. 어른도 아이도 얼마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잘못을 놓고 언제까지 어느 만큼 뉘우치거나 ‘잘못한 값’을 치러야 할까요?



이러한 역할에는 노동자도, 입안자와 관리자도, 재판관도, 의사도, 기술자도, 교사와 연구가도 동참했다. 그들 모두가 동참을 거부했더라면 동독은 어쩌면 훨씬 더 좋은 국가가 되었거나 아니면 벌써 예전에 붕괴되었을 것이다. (81쪽)


무관심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사람들을 무덤덤하게 만들어 그들을 불법행위의 공범자가 되게 한다. 기억은 무관심을 깨뜨릴 수 있고 불법행위의 결과에 대해 인식하게 하고 불법행위의 근원에 대해 민감하게 만들 수 있다. (104쪽)



  한국하고 이웃에 있는 일본은 지난날 한국으로 여러 차례 쳐들어왔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한국사람을 몹시 괴롭힌 적이 있습니다. 한국하고 이웃에 있는 중국도 지난날 한국으로 여러 차례 쳐들어왔고, 매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온갖 전쟁 때문에 목숨을 빼앗기거나 보금자리를 잃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 같은 옛 나라는 중국으로 거침없이 쳐들어가기도 했어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오늘 여기에 있는 아무개가 아니곤 합니다. 그리고 지구별 근현대사를 살피면, 머잖아 독일에서나 일본에서는 ‘전쟁범죄자’가 모두 목숨을 잃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전쟁범죄자뿐 아니라 ‘전쟁부역자’도 곧 나이가 들어서 모두 죽어서 이 땅에서 사라질 테지요. 그러면, 앞으로 스무 해쯤 뒤에는, 또는 쉰 해나 백 해쯤 뒤에는, 이러한 전쟁범죄나 전쟁부역을 놓고 어떤 눈길로 바라보거나 마주할 때에 슬기로울까 궁금합니다.


  오백 해가 지나도 잊을 수 없기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오백 해 앞서 다 죽고 없지만, 오백 해 뒤에 이곳에서 사는 ‘이웃나라 뒷사람’한테 ‘잘못한 값’을 따지거나 물어야 할까요? ‘어버이 몸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어버이가 저지른 잘못’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야 할까요?



피해자 측이 무엇을 하든 우리는 피해자 측이 하는 일을 무시하지 않고 그런 일에 대해 분개하지 않아야 하며, 피해자 측이 우리 독일로 인해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자신들의 과거를 힘겹게 다루는 것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133쪽)


우리가 애도를 건너뛰지 않고 애도했더라면 우리 연방헌법재판소의 실증주의가 이리 애매모호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156쪽)



  《과거의 죄》라고 하는 책은 ‘전쟁범죄 같은 잘못’은 누가 뉘우쳐야 하는가 하고 묻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묻습니다. ‘전쟁부역이라는 잘못’은 누가 뉘우쳐야 하는가 하고 묻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를 더 묻습니다. ‘전쟁범죄와 전쟁부역을 모르는 척하고 팔짱 끼며 살던 사람’한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가 하고 묻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새삼스레 덧붙여서 물을 수 있어요. 역사는, 역사가는, 역사책은 지난날 일을 어떻게 적어서 아이들한테 가르치거나 물려주거나 알려주어야 하느냐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범죄자가 용서를 구하는 데 다른 사람이 중재하고 간청할 수는 있지만 대신 용서를 구할 수는 없다. (194쪽)


세대가 지난 후에도 용서, 특히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적 압제, 착취, 노예화, 학살의 부당함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은 여전히 남아 있다. (198쪽)



  어떤 잘못을 한 번 저질렀다고 해서 그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목숨을 내놓아야 하지 않습니다. 어떤 잘못을 그만 한 번 더 저질렀다고 해서 그 잘못을 다시 저지른 사람이 목숨을 내놓아야 하지 않습니다. 어떤 잘못을 자꾸 저지르기에 그처럼 잘못을 자꾸 저지르는 사람더러 ‘넌 이제 죽어야겠네’ 하고 다그칠 수 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저지른 잘못은 고이 내려놓고서, 이제부터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이제까지 잘못을 저지른 까닭은 바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은 탓’인 줄 깨달아서 바로 오늘부터 ‘나와 이웃을 모두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야지 싶습니다.


  ‘잘못했으니 죽으라’고 해 본들 잘못을 뉘우칠 수 없고, 잘못한 값을 치르지 못하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잘못했으니 잘못을 되돌리는 삶으로 새롭게 태어나야지 싶습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기쁨이나 보람을 모르는 채, 즐거운 웃음이나 밝은 노래가 없이 지낸 삶을 모두 내려놓고, 그야말로 스스럼없고 환한 사랑이 되어야 할 테지요. 지난 잘못을 짊어지는 굴레가 아니라, 새로운 꿈을 가꾸는 삶이 되어야 하고요. 4348.12.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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