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쉘 위 댄스 : 일반판 - 투명 엘리트케이스로 출시
수오 마사유키 감독, 야쿠쇼 코지 외 출연 / 디에스미디어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 춤출까요? (쉘 위 댄스)

Shall We Dance?, 1996



  “우리 춤출까요?” 이 한 마디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말을 마흔 살이 넘도록 한 번도 못 들었습니다. 춤추는 집이라고 하는 댄스홀이나 이 비슷한 곳을 간 적이 없으니 “우리 춤출까요?” 하고 말하는 이웃이나 동무가 없었을는지 모르나, 한국 사회는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어울리면서 즐겁고 신나게 춤추며 노래하는 놀이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어요. 집이나 마을이나 학교나 일터에서 서로 허물없이 재미나게 춤을 추며 노는 일이 아주 드물거나 거의 없다시피 해요. 나랑 춤추자고 말하는 동무도 없지만, 나도 동무한테 함께 춤추자고 선뜻 말하지 못했어요. ‘춤’을 달라나라 별나라 이야기라도 되는 듯 여겼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한겨레는 예부터 들일을 하며 들노래를 불렀습니다. 두레와 품앗이를 나누면서 언제나 함께 일하고 함께 춤추며 함께 노래하고 함께 놀았다고 해요. 다만,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며 이러한 삶을 구경하거나 누리거나 지켜보거나 겪거나 한 적이 없습니다. 요즈음에도 이러한 삶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그저 메마르기만 한 터라, 즐겁게 춤추면서 삶을 가꾸자는 목소리나 기쁘게 어깨춤을 추면서 일하자는 노랫소리가 흐르지 못합니다. 먹고살기 바쁜 나머지 일만 하고 돈만 버는 굴레에 갇힙니다.


  “우리 춤출까요?”는 왜 아름다운 말이 될 수 있을까요? 서로 마음을 열고 즐겁게 춤을 추는 동안 찬찬히 피어나는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비가 바람을 타고 춤을 추듯이, 새가 하늘을 가르며 춤추는 몸짓으로 날듯이, 사람도 이 땅에서 고운 발놀림하고 손놀림하고 몸놀림으로 바람결을 어루만질 적에 춤이 이루어집니다. 연예인이나 전문 춤꾼이 선보이는 몸짓이 아닌, 그저 스스로 우러나오는 춤사위일 때에 즐거운데, 이 대목을 알려주는 어른이 몹시 드뭅니다.


  영화 〈우리 춤출까요?(Shall We Dance?)〉를 보면 삶을 새롭게 가꾸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어떻게 해야 삶을 스스로 새롭게 가꿀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는 여느 회사원이 나옵니다. 이녁은 즐거움이나 재미나 기쁨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일하는 보람이나 집을 장만하는 보람 한 가지만 있다고 할 만합니다. 자랑스러운 사회 지위라든지 자가용쯤이 더 있다고 할 만하지요.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학교를 다니는 동안 더 나은 성적을 얻고 더 높은 대학교에 들어가는 길만 걸었을 테지요. 삶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사랑을 찬찬히 가꾸어 사람다운 넋을 곱게 북돋우는 길은 배운 적도 본 적도 느낀 적도 드물었겠지요.


  영화에 나오는 회사원 아저씨는 춤바람이 납니다. 다만, 이 춤바람이란 춤에 미쳐서 다른 일을 젖히는 바보짓이 아닙니다. 이 춤바람이란 식구를 모두 버리고 혼자만 살겠노라 하고 등을 지는 얼간이 노릇이 아닙니다. 춤을 추는 바람이 불면서 마음속에 그동안 맺힌 응어리가 천천히 풀립니다. 춤을 추는 바람을 스스로 일으키면서 새로운 몸이 되고, 새로운 마음이 되며, 새로운 꿈을 키웁니다.


  그런데, 영화에 나온 아저씨는 혼자서 춤을 출 뿐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하고 함께 춤을 추자는 생각을 미처 못 해요. 게다가 이녁 딸하고 함께 춤을 출 생각조차 조금도 못 하지요. 춤사위가 베푸는 기쁨을 누리면서도 정작 춤을 가르치는 학원에서만 춤을 출 수 있다는 생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지요. 이때에 이녁 딸아이는 아버지를 북돋웁니다. 딸아이는 춤을 추는 아버지가 멋있다고 여길 뿐 아니라, 어머니하고 함께 춤을 추기를 바랍니다. 아이 어머니도 곁님더러 ‘왜 나하고는 춤을 추자고 하지 않았느냐?’고 뒤늦게 묻는데, 이렇게 물을 일이 아니라, 이녁 곁님한테 ‘춤 학원에서 배운 춤을 나한테도 가르쳐 주어서 언제나 함께 추어요!’ 하고 먼저 말했어야지요.


  함께 나누기에 기쁨입니다. 혼자만 누리기에 즐거움입니다. 춤은 즐거움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혼자 일하며 춤을 출 적에는 즐거움일 테고, 여럿이 함께 일하며 춤을 출 적에는 기쁨입니다. 삶과 살림을 짓는 춤사위는 기쁜 사랑으로 흐릅니다. 기쁜 사랑이 흐르는 곳에서 마을살이가 곱게 깨어납니다. 기쁜 몸짓이 넘치는 곳에서 살림살이를 아름답게 북돋웁니다. 4348.11.29.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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