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원시인 크로미뇽 웅진 세계그림책 32
미셸 게 지음, 이경혜 옮김 / 웅진주니어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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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6



새롭게 놀면서 문득 그림을 그린 뒤에

― 꼬마 원시인 크로미뇽

 미셸 게 글·그림

 이경혜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0.5.30. 8000원



  아스라히 먼 옛날에 사람들은 하루를 어떻게 누렸을까요. 2000년대를 사는 오늘 이곳에서 이천 해나 삼천 해 앞서 삶을 어느 만큼 헤아릴 만할까요. 또는, 이만 해나 삼만 해 앞서 삶을 어느 만큼 돌아볼 만할까요.


  미셸 게 님이 빚은 그림책 《꼬마 원시인 크로미뇽》(웅진주니어,2000)은 ‘크로마뇽’이라고 일컫는 옛사람이 어떻게 살았을까를 가만히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엮습니다. 오직 사냥으로 먹을거리를 찾았다고 여기는 먼 옛날, 사내들이 사냥터로 나가고 가시내와 어린이만 남은 동굴에서 ‘크로미뇽’이라는 꼬마 원시인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하고 곰곰이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크로미뇽은 뼈를 빨아먹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그 대신에 크로미뇽은 뼈를 입에 대고 “후!” 부는 걸 좋아해요. 그러면 바위에 손자국이 난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7∼8쪽)




  크로미뇽은 ‘뼈다귀 속’을 쪽쪽 빨아먹기를 즐기지 않습니다. 크로미뇽은 뼈다귀 속에 있는 것을 후 불어내어 ‘손바닥 무늬 찍기’ 놀이를 합니다. ‘먹기’에만 모든 마음을 쏟지 않아요.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생각하며, 새롭게 할 만한 일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요.


  이무렵 다른 사람들은 배고픔을 달래서 추위를 이기며 아이를 낳는 일에만 마음을 쏟습니다. 크로미뇽도 똑같이 밥을 먹고 추위를 견디기를 바라지만, 먹고 입고 자는 데에서 그치는 삶이 아닌, 새로운 일거리나 놀잇거리를 찾는 삶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눈밭을 헤치면서 바위마다 손무늬를 척척 찍으면서 다니고, 손무늬를 척척 찍으면서 다니다가 매머드를 보았으며, 바위마다 손무늬를 찍었기에 눈으로 하얗게 뒤덮은 숲속에서도 손쉽게 동굴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매머드는 나무를 겨우 다 먹어치워요. 크로미뇽이 바위 밑에서 빠져나와 보니 벌써 밤이에요. 바위에 찍어 놓은 손자국 덕분에 동굴로 돌아가는 길은 쉽게 찾을 수 있어요. (17∼18쪽)



  아이들은 놀기를 좋아합니다. 아니, 아이들은 언제나 놉니다. 먼먼 옛날에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아이를 데리고 사냥터에 가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직 빨리 달리지 못하고 힘이 세지 못하니, 오히려 사냥감한테 사로잡힐 수 있겠지요.


  오늘날 아이들은 집이나 마을에서 놀기보다 학교나 학원을 더 오래 다녀야 하는데, 아무리 학교나 학원을 오래 다녀야 하더라도 아이들은 틈을 쪼개어 놉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흔히 노닥거리기 마련이요, 때때로 공부나 수업을 빼먹으며 놀기도 해요. 아이한테서는 놀이를 빼앗을 수 없고, 어느 모로 본다면 아이한테서 놀이를 빼앗는 일은 끔찍한 짓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노는 아이들을 가만히 살피면 으레 그림을 그립니다. 누가 시키지 않으나 그림을 그리며 놀아요. 서너 살 아이도 예닐곱 살 어린이도 열서너 살 푸름이도 모두 그림놀이를 쉽게 즐깁니다. 교과서나 공책에 끄적거리는 낙서도 어느 모로 보면 모두 그림이에요. 아이들 마음을 나타내는 그림이요, 아이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이야기가 드러나는 그림이지요.




크로미뇽은 석탄 조각으로 바위에 그림을 그려요. 마침 사냥을 나간 아저씨들이 아무것도 못 잡고 빈손으로 돌아와요. (21쪽)



  《꼬마 원시인 크로미뇽》에 나오는 크로미뇽은 ‘굴러다니는 석탄쪼가리’를 들고서 동굴 벽에다 매머드를 그립니다. 사냥하러 갔으나 빈손으로 돌아온 아저씨들은 크로미뇽이 벽에 그린 그림을 보고는 ‘이 아이가 매머드를 보았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아이는 어른들을 이끌고 매머드를 마지막으로 본 데까지 갑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매머드를 본 자리에 수북히 쌓인 매머드 똥을 보았고 저 먼 곳에서 매머드를 찾아냅니다.


  이윽고 어른들은 커다란 매머드를 사로잡습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매머드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면 ‘설마 이 아이가 매머드를 보았을라구?’ 하면서 못 믿었을 테지요. 왜냐하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아이가 매머드 모습을 척척 그리니 이 아이가 사냥감을 찾아낸 큰일을 해냈다고 깨달아요.


  다만, 아이는 어른들한테서 칭찬을 받으려고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도 함께 사냥터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던데다가, 석탄 쪼가리라든지 뼈다귀 속에 있는 것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줄 알아챘기에 그림을 그려요. 어른들은 매머드를 잡아서 가죽이랑 털을 벗기고 뼈를 바르고 살점을 가르기는 했지만 꼬리는 챙기지 않아요. 크로미뇽은 즐겁게 꼬리를 챙기고는, 이 꼬리를 붓으로 삼아요. 다른 어른과 아이는 매머드 고기를 실컷 먹고 잠든 뒤, 아이는 매머드 꼬리로 빚은 붓으로 벽에다가 매머드 그림을 다시 멋지게 마무리지어 놓습니다.




크로마뇽인들은 다시 힘을 되찾아요. 매머드의 뼈를 가지고 도구를 만들고, 털가죽을 가지고 담요도 짜요. 크로미뇽은 꼬리를 가지고 붓을 만들어요. (35∼36쪽)



  오늘날까지 남은 동굴 벽그림은 누가 언제 어떻게 그렸는지까지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어요. 아스라히 먼먼 옛날에도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었다는 대목을 알 만하고, 아스라히 먼먼, 멀디먼, 머나먼 옛날에 새로운 놀이를 찾아서 하루를 즐겁게 누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대목을 알 만해요.


  똑같은 하루가 아닌 새로운 하루를 바랐기에 그림놀이를 떠올렸고, 그림놀이를 하면서 짐승 꼬리털을 붓으로 삼을 만하다고 알아차렸으며, 이곳저곳에 즐겁게 그림을 그리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도 아이들은 언제나 새롭게 놀려고 꿈을 키웁니다. 이런 놀이도 하고 저런 놀이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놀이 하나가 바탕이 되어 새로운 생각이 태어나고 자랍니다. 작은 놀이 하나에서 비롯한 새로운 생각은 시나브로 아름다운 이야기로 흐릅니다. 4348.11.27.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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