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스케이트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5
유모토 카즈미 지음, 호리카와 리마코 그림, 김정화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22



여우하고 들쥐가 서로 동무로 지내며

― 여우의 스케이트

 유모토 카즈미 글

 호리카와 리마코 그림

 김정화 옮김

 아이세움 펴냄, 2003.10.1. 7000원



  동무 사이라면 서로 아무것도 따지지 않습니다. 너와 내가 동무 사이라면 이른바 ‘조건’을 걸면서 따지지 않아요. 동무이니까요. 동무는 기쁘게 어깨동무를 하는 사이입니다. 동무는 함께 웃고 노래하면서 춤출 수 있는 사이입니다. 동무는 ‘네가 이렇게 해 주어야 나도 너랑 같이 있지’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동무라면 ‘그래, 우리 같이 있자’ 하고 말할 뿐입니다.



호수 한가운데는 색이 왠지 어둠침침하고 칙칙했습니다. 그리고 호수 건너편에는 아주 넓은 숲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숲은 컴컴하고 빽빽했습니다. ‘저 숲에 가 보고 싶다. 저 커다란 숲에는 뭐가 있을가?’ (14쪽)


저녁놀이 비친 호수는 오렌지 맛이 나는 젤리 같았습니다. 여우는 손을 물에 살짝만 갖다 댔는데도 온몸이 달달 떨렸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앞발을 다 담그고 일곱까지 셀 수 있었는제, 지금은 아무리 참아도 셋까지밖에 셀 수 없었습니다. (25쪽)



  유모토 카즈미 님이 빚은 어린이문학 가운데 하나인 《여우의 스케이트》(아이세움,2003)를 읽으면서 ‘동무 사이’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 어린이문학은 ‘여우’가 주인공이고, 들쥐가 주인공하고 동무가 되는 숨결이며, 여우가 발에 끼워서 얼음을 지치는 스케이트가 수많은 동무하고 잇는 징검돌입니다.


  《여우의 스케이트》에 나오는 여우는 아직 새끼 여우인데, 어미 품에서 씩씩하게 잘 자란 뒤 처음으로 어미 품을 떠나서 홀로서기를 하려 합니다. 혼자서 숲을 달리고, 혼자서 먹이를 찾으며, 혼자서 꿈을 짓는 삶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혼자 먼먼 길을 나서다가 어느 날 숲 가장자리 못가에서 풀썩 쓰러져요. 지치고 힘들어서 그만 넋을 잃습니다.


  이때에 여러 숲짐승이 여우를 봅니다. 이 여우를 본 숲짐승은 살짝 망설이는 듯했지만 따스한 마음으로 여우를 돌보기로 합니다. 여우는 따스한 손길을 받고는 다시 기운을 차리는데, 기운을 차린 여우는 숲 가장자리 못가 마을에서 아주 개구진 짓을 하면서 설치고 놉니다.



“나도 먹어 본 적은 없어. 우리 할머니한테서 들었어. 그 열매는 머리칼이 쭈뼛해질 정도로 맛있대. 할머니가 어렸을 때 이 숲에 그 파란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딱 한 그루 있었대. 엄청나게 큰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면 모두들 배부르도록 먹었대. 그 나무가 있었을 때는 이 숲도 이렇게 조용하지는 않았다고 할머니가 그러셨어.” (32∼33쪽)



  여우는 몸이 다 나았으나 ‘사는 재미’를 좀처럼 찾지 못합니다. 애써 홀로서기 길을 나섰으나 ‘심심한 곳’에 얽매인다고 느낍니다. 날이면 날마다 짓궂은 장난을 일삼습니다. 작고 여린 들쥐를 꽁꽁 묶어서 으르렁거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작고 여린 들쥐는 여우가 무서우면서도 여우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작고 여린 들쥐는 여우 속내는 막상 무척 보드랍고 너른 숨결이라고 느낍니다. 작고 여린 들쥐는 여우를 저한테 둘도 없이 살가운 동무로 여깁니다.


  여우는 처음에 작고 여린 들쥐를 그냥 잡아먹을 생각만 했지만, 이 작고 여린 들쥐가 저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동무로 여기는’ 모습을 보고는 그악스럽다고도 여기지만, 어느새 천천히 마음이 바뀝니다. 아니, 이제 막 철이 들려고 하는 ‘어미 품을 떠난 지 첫 해째인 새끼 여우’는 차츰 어른이 되면서 너르고 따스한 마음이 찾아든다고 할 만합니다.



솜사탕처럼 달지는 않았지만, 여우와 들쥐는 눈 맛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37쪽)



  들쥐는 쉬지 않고 여우한테 말을 겁니다. 여우는 들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습니다. 이러면서 넓디넓은 못 너머에는 어떤 숲이 펼쳐질는지 궁금해 합니다. 아무도 저 못 너머로 갈 엄두를 내지 않지만, 여우는 숲 너머를 찾아가 보고 싶습니다.


  들쥐는 겨울이 되면 이 넓디넓은 못을 건널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여우는 왜 겨울에 이 못을 건널 수 있는지 아직 모르지만, 또 들쥐가 하는 말을 못 미덥게 여기지만, 드디어 겨울이 되어 못물이 꽁꽁 얼어붙으니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얼음판을 가로지르면 되는 일입니다.



들쥐는 젤리를 딱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서랍장 깊이 잘 넣어 두었습니다. 여우가 돌아오면 같이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53쪽)



  숲마을 숲동무가 모두 힘을 모아서 스케이트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여우가 떠나고 싶어 하는 먼 마실길에 쓰라고 스케이트를 선물합니다. 여우는 숲동무가 선물로 준 스케이트를 신고 꽁꽁 언 못을 지치며 나아갑니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자꾸 앞으로만 나아갑니다. 작고 여린 들쥐는 여우가 한 번이라도 뒤를 돌아보아 주기를 바라지만, 여우는 그야말로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내체 달리기만 합니다.


  여우는 못 너머로 건너간 뒤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까요? 들쥐는 저한테 둘도 없는 동무라고 여기는 여우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다른 숲짐승은 모두 여우가 다시 안 돌아오리라 여깁니다. 오직 들쥐만 여우가 꼭 돌아와 주리라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겨울이 저물고 봄이 되려 하기까지 여우는 돌아올 낌새가 없습니다. 봄이 되어 얼음이 녹으면 이곳으로 다시 건너올 수 없는데 들쥐는 동무를 잃었다는 생각이 슬픕니다.



그때 작은 숲에서 나무가 일제히 흔들렸습니다. 호수에 작은 물결이 일었습니다. 여우와 들쥐는 향긋한 바람을 한껏 들이마셨습니다. (74쪽)



  어린이문학 《여우의 스케이트》에 나오는 여우는 얼음이 모두 녹는 날 아슬아슬하게 들쥐 곁으로 돌아옵니다. 여우는 등에 큰 나무 한 그루를 짊어지고 돌아옵니다. 여우가 짊어진 나무는 들쥐가 할머니한테서 이야기로만 듣던 열매 나무입니다. 여우는 들쥐가 저한테 얼마나 사랑스러운 동무인가를 찬찬히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사랑스러운 동무가 바라고 꿈꾸던 ‘들쥐 할머니가 이야기한 열매 나무’를 숲 너머에서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이 열매 나무가 있으면 이곳 숲짐승 모두 맛난 열매를 실컷 누릴 수 있으리라 여겼다고 합니다. 들쥐뿐 아니라 다른 숲짐승한테도 고마운 뜻을 돌려주고 싶었을 테지요.



“야, 참말 맛있다! 여우야, 어쩜 넌 이렇게 나무 열매를 잘 따니. 넌 참말 참말 대단한 여우야.” 들쥐는 자기가 묶인 줄도 잊은 채 감탄했습니다. (29쪽)



  여우와 들쥐 사이에 따스한 마음은 언제부터 싹이 텄을까요? 아마 여우가 들쥐를 꽁꽁 묶으며 괴롭히던 때에도 들쥐가 여우한테 늘 상냥하게 말을 걸고 ‘여우로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일’을 들쥐가 몹시 고마워하는 몸짓을 늘 느끼면서, ‘어미 여우한테서 홀로서기를 하려던 마음’에 문득 ‘사랑이라고 하는 씨앗이 싹이 텄’으리라 봅니다. 이때에 싹이 튼 작은 씨앗인 사랑은 무럭무럭 자라서 새끼 여우가 이제는 ‘의젓하게 철이 든 어른 여우’로 거듭나는 밑거름이 되었구나 싶어요.


  참말로 사랑이란 아무것도 토를 달지 않습니다. ‘조건 없는 마음’이기에 사랑입니다. 동무 사이에서도 토를 달 까닭이 없습니다. 짝을 짓는 두 사람뿐 아니라, 어깨를 겯는 두 사람 사이에서도 토를 달지 않으면서 빙그레 웃고 노래하기에 동무가 되면서 사랑이 흐릅니다.


  아이들이 어버이한테 바라는 마음도 바로 이 ‘토를 안 다는 사랑’이리라 봅니다.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물려주거나 가르치거나 보여줄 수 있는 마음도 바로 이 ‘토를 안 다는 사랑’이리라 느낍니다. 사랑이 싹트는 자리에서 웃음하고 노래가 흐릅니다. 사랑이 싹트는 두 사람은 기쁘게 손을 맞잡으면서 춤을 추고 삶을 새롭게 짓습니다. 4348.11.2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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