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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19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75
왜 너하고만 놀아야 하니?
― 경계의 린네 19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10.25. 4500원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은 “오늘 뭐 하고 놀까?” 하고 묻습니다. “오늘 나랑 놀자!” 하고 외치기도 합니다. 오늘 뭐 하고 놀겠느냐고 물으면 “그래, 네가 한번 생각해 봐.” 하고 말하고, “어떻게 생각해?” 하고 되물으면 “놀고 싶은 사람이 스스로 어떤 놀이가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해야지.” 하고 이야기해 줍니다.
“쿠로스 6단은 평가가 짜기로 유명해.” “그럼 반대로 저분에게 인정받으면 독립할 수도 있단 말이군요!” “뭐, 그렇죠.” (9쪽)
“당연한 결과지. 훔친 초콜릿은 어차피 남의 것이니, 네 마음의 구멍을 메워 주진 못해.” (36쪽)
놀이는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놀이는 얼마든지 스스로 생각하고 살피고 찾고 빚고 누릴 수 있습니다. 남이 놀아 주어야 놀이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일 적에 놀이가 되어요.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5) 열아홉째 권을 읽으면서 이 대목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어느덧 열아홉째 권이 한국말로 나오는데, ‘린네’를 둘러싸고 여러 아이들이 하나하나 새삼스레 나타납니다. 그런데, 린네 둘레에 나타나는 아이들은 ‘린네를 혼자 차지하면서 놀고’픈 마음이기 일쑤입니다. 다른 동무하고 린네랑 함께 놀기보다는, 오직 저 혼자서 린네를 차지하려고 하는 마음이에요.
그리고 린네 아버지는 가난한 린네조차도 등쳐서 조금이라도 돈을 가로채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린네는 아버지 때문에 자꾸 빚쟁이가 되어야 하기에 아버지를 ‘못난’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나무랍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나무라지 않고, 아이가 아버지를 나무라요.
“길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건 할 수 없지만, 새전 도둑 같은 질 떨어지는 범죄를 저지르다니!” “자판기 밑을 훑는 건 괜찮고?” “거기까진 괜찮겠죠.” (85쪽)
“내게 감사해라, 로쿠도 린네. 덕분에 동창회 회비 3천 엔을 내게 됐잖아?” (128쪽)
아이들하고 놀다가 힘들면 자리에 벌렁 눕습니다. 아이들은 놀고 놀아도 지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벌렁 자리에 누운 아버지 배에도 올라타고 다리에도 올라탑니다. 이때에 이불을 재빨리 돌돌 말아서 아이들을 감쌉니다. 까르르 웃는 아이더러 “요 김밥 먹어야지!” 하고 외치는데, 아이가 돌돌 몸이 말린 이불에서 손을 빼려 하면 “아니, 단무지가 튀어나왔나!” 하면서 손을 야금야금 먹는 시늉을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손을 도로 넣고, 다시 손을 빼내려 하면 “아니, 시금치가 튀어나왔나!” 하면서 또 손을 냠냠 먹는 시늉을 해요.
한참 김밥말이 놀이를 하다가 두 아이는 아버지 배나 등을 ‘물살을 가르는 배’로 여겨서 뱃놀이를 합니다. 그러면 나는 눕거나 엎드린 채 몸을 실룩실룩 움직이지요. 이때에 아이들은 아버지 배나 등을 타고 거친 물살을 헤친다고 여깁니다.
“결과적으론 잘 됐잖아.” “그 노력도 모두 오늘을 위해서야.” ‘로쿠도에게 복수하기 위해?’ “다시 태어난 나를 보고, 그때 심술부리지 말걸, 하고 후회하게 만들기 위해!” (152∼153쪽)
‘이제 과거에 연연하는 건 그만두자. 하지만 로쿠도, 너는 역시 그 시절 그대로 상냥한 로쿠도였구나.’ (165쪽)
《경계의 린네》에 나오는 린네는 무척 상냥한 아이입니다. 다만,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엄청난 빚을 갚느라 늘 쫄쫄 굶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린네는 아버지하고 달라서, 빚에 허덕이더라도 돈에 홀리지 않습니다. 가난해서 끼니를 굶어야 해도 피눈물을 삼키면서 제 넋을 지키려고 해요.
가만히 보면, 린네만 상냥한 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린네를 둘러싼 여러 동무도 상냥한 넋입니다. 이모저모 어설프거나 어수룩하거나 바보스럽거나 너무 똑똑한 동무들이라고도 할 텐데, 이 아이들은 저마다 따스한 마음으로 삶을 짓고 놀이를 누리기에 도란도란 모일 수 있어요.
“팬시 배후령이 보고 들은 상황은, 영적 통신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러면 나는 언제나 린네와 함께 있는 기분이지.” “그건 스토킹용 몰래카메라잖아.” (172∼173쪽)
“좋아하는 상대라면 좀더 소중히 해.” “오호.” “마음이 서로 통하지 않으면, 그런 초커는 그저 스토킹용 아이템일 뿐이야.” (184쪽)
만화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 무슨 놀이를 할 적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서로 어떤 삶을 지을 적에 기쁠까요? 나 혼자서만 재미있으면 다른 사람도 즐거운 놀이가 될까요? 나 혼자서만 배부르면 다른 사람도 배부른 삶이 될까요?
나는 너하고만 놀아야 하지 않습니다. 너도 나하고만 놀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아끼는 어깨동무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모든 아이하고도 즐겁고 기쁘며 반가운 사이입니다. 따사로운 마음으로 빙그레 웃으며 마주보는 동안 새로운 놀이가 태어나고, 새로운 놀이를 누리면서 삶도 살림도 사랑도 새롭게 가꿉니다. 4348.11.1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