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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 그랜딘
믹 잭슨 감독, 데이빗 스트래던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템플 그랜딘
Temple Grandin, 2010
삶을 사랑하고 꿈을 노래하자, 같은 말을 늘 되새긴다. 이러한 말을 책상맡이며 집안 곳곳에 붙인다. 다만, 글로 써서 붙이지 않는다. 그림으로 그려서 붙인다.
사람한테는 마음을 나타내는 길이 여러 가지 있다. 맨 먼저 마음이 있다. 사람은 맨 처음에는 그저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마음을 나누었다. 이윽고 눈을 뜨면서 눈빛으로 서로 마음을 나누었다. 이 다음에는 손짓이랑 몸짓이랑 낯빛으로 마음을 나누었다. 이러고서 한참 뒤에 입을 열어 말을 지은 뒤, 말로 마음을 나누었다.
말로 마음을 나눌 수 있던 때부터 노래를 지었다. 노래에는 가락만 흐르는 노래가 있고, 말을 얹은 노래가 있다. 이즈음, 말이 노래로 거듭나면서 손짓이랑 몸짓은 춤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림이 태어난다. 손놀림으로 어떤 모습이나 무늬나 결을 나타내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곧 글을 짓는다. 그림을 더 간추려서 나타내려고 하면서 글이 나왔다. 이리하여, 온누리 여러 나라와 여러 겨레 사람들을 살피면, 글을 모르고 책을 읽은 적이 없으면서도 마음을 넉넉히 나누는 이웃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굳이 글을 쓰거나 배우거나 알아야 하지 않는다. ‘말’을 알면 되고, ‘그림’을 보면 된다. 글은 언제나 그림을 간추려서 담는 이야기요, 글은 늘 말을 고스란히 옮기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글에 앞서 말과 그림을 알아야 한다. 말과 그림을 모르고서야 글을 알 수 없다. 책이나 종이에 찍힌 ‘간추린 기호’만 잘 읽을 줄 안다고 해서 ‘말이나 그림’을 잘 헤아릴 수 없고, ‘간추린 기호일 뿐인 글’을 제법 읽거나 많이 읽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왜 그러한가? 마음을 알려면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 내 마음을 너한테 보여주고, 네 마음을 내 마음으로 담을 때에 비로소 마음을 안다.
처음부터 다시 얘기하자면, 모든 기호는, 이를테면 글이나 그림이나 말은, 또 춤이나 노래는, 또 손짓이나 몸짓이나 낯빛은, 언제나 마음을 나타내려고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삶이란 마음으로 짓는 하루요, 삶은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이다.
영화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은 무엇을 짚거나 보여줄까? 영화에만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1947년에 태어나 오늘날에도 꾸준하게 제 발걸음을 씩씩하게 내딛는 템플 그랜딘이라는 분은 무엇을 보여주거나 어떤 마음을 나타내려 하는가? 바로, 언제나, 사랑이다. 소와 마음을 나눌 줄 안다는 얘기는 무엇을 뜻할까? 소가 잡혀서 죽어 고기가 된다고 하더라도, 소우리에서 소가 소다운 삶을 누리기를 바라는 사람은 우리한테 어떤 얘기를 들려주려 하는가?
템플 그랜딘 님은 우리더러 소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소고기를 먹고 싶으면 먹되, 소를 어떻게 키우는지 소우리(축산 농장)에 가서 지켜보라고 말한다. 밥 한 그릇을 먹을 적에, 밥 한 그릇이 어떻게 태어나서 밥상에 놓이는가를 알아보라고 말한다. 왜 알아보라고 할까? 삶을 이루는 바탕은 바로 사랑이고, 이 사랑을 마음에 담을 수 있을 때에 삶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노래를 부르는 기쁨을 누리기 때문이다. ‘자폐증이 아닌 사람’이 보기에 템플 그랜딘 님은 ‘자폐증’일 테지만, ‘자폐증이라는 이름을 받은 사람’이 보기에 ‘자폐증이라는 이름을 받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소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폐증 아닌 사람’한테는 어떤 ‘질병 이름’을 붙여 주면 좋을까?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못 듣는 사람한테는,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못 알아채는 사람한테는, 꽃과 풀이 읊는 노래를 못 듣는 사람한테는, 흙과 냇물과 골짜기가 외치는 소리를 못 알아보는 사람한테는, 참말 ‘어떤 질병 이름’을 붙여 주어야 할까? 4348.11.10.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영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