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꽃게 문학동네 동시집 4
박성우 지음, 신철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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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68



꿈을 키울 수 있는 이야기로 들려주기

― 불량 꽃게

 박성우 글

 신철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08.11.24. 8500원



  키가 1미터하고 30센티미터 가까이 큰 여덟 살 큰아이를 다독다독 하면서 재운 뒤 예전 사진을 돌아봅니다. 작은아이는 일찌감치 잠들었습니다. 큰아이가 갓 태어나던 날 찍은 사진을 보니 그야말로 조그맣습니다. 키가 1미터하고 30센티미터라 하더라도 어른 몸집에 대면 그리 크다 할 수 없으나, 한손에도 안을 수 있을 만큼 조그맣고 가볍던 숨결이 이만큼 컸으니 그야말로 크다고 느낍니다. 큰아이가 대여섯 살 무렵에는 두 아이를 한팔씩 감싸서 안고 걸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두 아이를 한팔씩 안고서 걷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갓 태어나던 무렵, 또 어머니젖을 물면서 자라던 무렵, 막 걸음마를 떼려고 하던 무렵 사진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새삼스레 느낍니다. 나는 이제껏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대학교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한다거나 ‘연봉 많이 받는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생각은 할 일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아이들한테 바라는 한 가지라면, 부디 어버이 사랑을 듬뿍 물려받으면서 너희 나름대로 새로운 꿈을 키우렴, 하는 마음입니다.



도대체 고추잠자리는 무얼 그릴까 // 고추잠자리가 그리는 그림은 / 동생이 그린 그림처럼 / 무엇을 그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고추잠자리)



  박성우 님이 빚은 동시집 《불량 꽃게》(문학동네,2008)를 읽습니다. 책이름으로도 붙은 〈불량 꽃게〉는 “수평선을 찰카닥찰카닥 / 지 맘대로 자르며 노는 불량 꽃게”라고 합니다. “어깨를 으쓱 들고 / 건들건들 건들대다 / 잽싸게 도망치는 불량 꽃게”라고 해요.


  동시를 쓴 박성우 님 눈에는 꽃게가 ‘불량스럽게’ 보였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불량하지 않은’ 꽃게도 있을까요? 불량하지 않다면 ‘우량 꽃게’일까요, 아니면 ‘범생이 꽃게’일까요, 아니면 ‘얌전이 꽃게’일까요?


  가만히 보면 이 동시집에 나오는 이야기는 거의 다 학교와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룹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불량·우량(모범)’으로 가릅니다. 시험성적으로 이를 가르고, 말씨와 몸짓을 놓고 이렇게 갈라요.



마당에서 노는데 / 할머니가 부른다 // 우리 똥강아지 어디 갔냐? // 강아지도 뛰어가고 나도 뛰어간다 (누굴 부른 걸까)



  동시는 아이들한테 재미난 말놀이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동시는 낱말 하나와 글월 하나를 알뜰히 엮어서 말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동시는 어른들이 지은 이 마을에서 아이들이 어른한테서 무엇을 물려받으면서 자랄 때에 즐거운가 하는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박성우 님은 《불량 꽃게》라는 동시집에서 여러모로 말놀이를 잘 보여줍니다. 집하고 얽힌 이야기는 으레 할머니를 불러서 아이가 할머니한테서 새로운 모습을 느끼는 실타래를 풀어요.



토끼풀은 토끼풀 / 염소가 먹어도 토끼풀 / 토끼풀은 토끼풀 / 암소가 먹어도 토끼풀 / 토끼풀은 토끼풀 / 할머니가 먹일 때만 퇴깽이풀 (토끼풀)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지켜보면서 배웁니다. 어른도 어른 나름대로 지켜보면서 가르칩니다. 아이는 좋고 싫거나 밉거나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모두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배웁니다. 어른은 좋고 싫거나 밉거나 나쁜 것을 가리려 하면서 알맞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동시를 쓸 적에는 어떤 마음이 될 때에 즐거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은 어떤 동시를 읽으면서 꿈을 키울 만할까요? 아이들은 말놀이가 가득한 동시를 읽으며 말놀이는 배울 텐데, 말놀이 다음에는 무엇을 보거나 느껴서 무엇을 배울 만할까요? 말놀이 동시를 읽는 아이들은 어떤 꿈을 스스로 키우는 힘을 얻을 만할까요?



엄마가 마른 미역을 / 그릇에 담는 모습 / 지켜본 뒤에야 알았어 (미역)


아침에 보니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원래 눈을 감고 있어서 잠자는 줄 알았는데 만져 보니 땅땅하게 굳은 찰흙 뭉치 같았다 (새끼 강아지)



  어떤 사물을 좀 다르게 바라보는 눈길로 동시를 쓰기에 말놀이 동시가 됩니다. 그런데, 말놀이 동시는 어떤 사물을 좀 다르게 바라보는 눈길은 되지만, 한결 깊거나 넓게 들여다보거나 어루만지는 손길이나 품까지 이르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요. 아이들한테는 ‘사실 알려주기’나 ‘사실 보여주기’에서 그치는 동시가 아니라, ‘삶을 사랑으로 가꾸는 꿈’을 함께 나누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밝히는 동시로 나아갈 일이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동시는 어른시하고 다르게 ‘문학’으로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른시는 여러 실험시도 나오고 아주 어려운 철학이나 사상을 담는 작품도 나올 만하지만, 동시에서는 실험시도 어려운 철학이나 사상도 섣불리 담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동시에 철학이나 사상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라, 동시는 철학이나 사상을 어린이 눈높이와 삶자락에 맞추어서 부드럽고 쉬우면서 아름답게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어, 밴드가 다 어디 갔지?” 망치질하다 손가락을 다친 아빠가 / 약통에서 일회용 밴드를 찾았다 / 나는 그만 얼굴이 빨개졌다 // 아침에 일어나니까 / 책상 위에 예쁜 브래지어가 놓여 있었다 // 쪽지를 펴 보니까 아빠였다 (일회용 밴드)



  우리 어른들이 밥을 차려서 아이들한테 아침저녁을 먹일 적에는 영양소만 먹이지 않습니다. 영양소만 입에 집어넣는 몸짓은 밥먹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밥상맡에 들러앉은 어른하고 아이는 사랑을 나누지요. 밥 한 그릇으로도 사랑을 나누고, 반찬 한 점으로도 사랑을 나누어요.


  아이들은 밥 한 숟갈을 입에 넣고도 신나게 떠듭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만 이야기를 더 터뜨리고 싶어서 밥풀을 튀기면서 밥상맡에서 노래합니다.


  나들이를 다닐 적에도 아이들은 더 먼 좋은 곳에 가기를 바라지 않아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하고 신나게 뛰놀 수 있으면 어디이든 기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여겨요. 아무리 대단한 놀이기구가 있다 한들, 아무리 멋진 자연 풍경이 흐르는 곳이라 한들, 제 어버이가 저하고 신나게 놀아 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재미없거나 따분하거나 지겨워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동시에서도 말놀이로 재미나게 이야기를 빚으려고 하는 글쓰기가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말놀이 동시로만 그치면 아이들이 받아먹을 ‘마음밥’이 너무 적거나 없다는 뜻입니다.



메미와 귀뚜라미는 / 이어달리기 선수다 (매미와 귀뚜라미)


올챙이들은 / 쉼표를 마구마구 찍어 / 봄더러 천천히 가라 하지요 (올챙이)


새싹들이 / 햇살의 엉덩이에 / 봄 똥침을 놓는다 (봄 똥침)


내가 찍은 발자국은 / 과학자가 될까 선생님이 될까 (발자국)



  매미와 귀뚜라미가 “이어달리기 선수”라면, 그 다음에는 무엇일까요. “이어달리기 선수”라고 하는 어른들 눈높이로 바라보는 운동경기(스포츠) 이야기를 굳이 엮어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어른시라면 “올챙이들은 쉼표를 마구마구 찍어” 같은 말놀이가 재미있을 만하지만, 동시에서 이러한 말놀이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궁금합니다. 새싹은 참말 “엉덩이 똥침”을 놓을까요?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발자국은 “과학자나 선생님” 사이에서 더 나아가기 어려울까요? 아이들은 청소부가 되어도 아름답고, 농사꾼이 되어도 아름다우며, 가정주부가 되어도 아름답습니다. 어떤 일을 앞으로 찾아서 누리든, 아이들은 꿈을 키울 수 있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처음부터 어떤 주어진 틀로 이야기를 빚는 동시에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꿈을 키우는 힘을 북돋우는 슬기를 글 한 줄에 실을 수 있다면, 오늘날 한국 동시는 사랑꽃을 활짝 피우리라 봅니다. 재미있는 동시를 쓰려면 쓰되, 재미와 함께 있을 꿈이랑 사랑이 삶으로 녹아드는 이야기를 가만가만 헤아린다면 더욱 즐거우리라 봅니다. 4348.11.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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