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맛 기행 2 -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 바다맛 기행 2
김준 지음 / 자연과생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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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88



맑고 고운 바다맛을 물려주고 싶구나

― 바다맛 기행 2

 김준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5.11.5. 16000원



  어머니 뱃속에서 곱게 열 달을 살다가 씩씩하게 이 땅으로 태어난 아기는 천천히 자라면서 수많은 맛을 보고 겪고 느끼고 생각하고 맞아들입니다. 마치 깊은 바다와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지내며 무엇보다도 사랑맛을 볼 테지요. 사랑맛으로 튼튼히 자라다가 빛이 가득한 이 땅에 태어난 뒤로는 젖맛을 봅니다. 젖맛을 뗄 무렵 밥맛을 보는데, 이동안 아기는 어버이가 일군 삶자리에서 바람맛하고 물맛을 함께 보아요.


  오늘날에는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는 터전이 어떠한가 같은 대목을 찬찬히 살피는 어버이가 몹시 드문데, 아기는 사랑을 받으면서 자랄 뿐 아니라, 고운 밥을 먹으면서도 자라고, 무엇보다 바람이랑 물을 마시면서도 자라요. 교육이나 문화나 여러 가지 사회시설만 따질 일이 아니라, 늘 마시는 바람하고 물이 얼마나 깨끗하거나 아름다운가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밥맛이 늘 새로운 줄 깨닫습니다. 이윽고 아이 스스로 무엇이든 만지작거리며 짓고 싶은 꿈을 키워서 손맛을 배웁니다. 손맛을 배우면서 놀이맛을 보고, 일맛을 깨닫지요. 찬찬히 철이 들면서 새삼스레 삶맛을 보고, 삶을 스스로 짓는 길을 걸으면서 꿈맛을 누리려 합니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생일날이면 소금 독에 묻어 둔 고등어를 꺼내 구웠다. 지글지글 기름기가 불씨로 떨어질 때면 부뚜막의 옹기에 담긴 굵은 소금을 집어 한 토막에는 살살 뿌렸고, 다른 세 토막에는 팍팍 뿌렸다. (19쪽)


“아빠, 아빠, 우리 반 아이 중에 갈치가 네모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어요.” 식탁에 앉자마자 둘째 달이 호들갑스럽게 한 말이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 “그 친구는 마트에서 갈치도 못 본 모양이구나.” … 막내가 “마트에 있는 갈치는 모두 네모잖아.”라며 말을 받았다. (29쪽)



  김준 님이 쓴 《바다맛 기행》(자연과생태,2015) 둘째 권을 곰곰이 읽습니다. 김준 님은 이녁 곁님하고 아이들한테 ‘바다맛’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두 권째 선보이는 《바다맛 기행》은 바로 ‘바다맛’이 우리 삶자락에서 얼마나 넓은 자리를 차지하는가 같은 대목을 건드려요.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를 낚거나 잡아서 손질해서 먹는 맛을 들려줍니다. 물고기가 우리 곁에 있기에 밥상이 한결 소담스럽다는 대목을 알려줍니다. 맛있다고 마구 먹을 일이 아니라, 맛있기에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먹는 몸짓이 되면서, 앞으로도 오래오래 누구나 기쁘게 먹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옛날에는 대하를 살짝 쪄서 조기처럼 짚에 엮어서 말렸다. 가을볕에 잘 말린 대하는 겨울철에 훌륭한 양식이었다. (46쪽)


1980년대 명태 20여 만 톤을 잡을 때, 명태 새끼인 노가리는 40여 만 톤을 잡았다. 노가리를 그렇게 먹어댔으니 씨가 마를 만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남획보다도 기후변화 탓만 하고, 여전히 맥주를 마실 때 아무런 생각 없이 노가리를 찾는다. (117쪽)



  한국은 갯벌을 아주 많이 메워서 없애버린 바보스러운 나라로 손꼽힙니다. 한국은 갯벌이 대단히 훌륭할 뿐 아니라 아름답던 나라였습니다. 나는 1980년대 첫무렵에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은 아름다운 갯벌로 이 지구별에서 첫손가락으로 꼽을 만하다’ 같은 이야기를 배웠습니다. 그무렵 한국에서 내로라 할 만한 것은 거의 없어도, 무엇보다 갯벌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울 뿐 아니라, 한국에 있는 갯벌을 부러워하는 나라가 많다는 이야기를 배웠어요.


  2010년대를 살면서 한국을 돌아보면, 이 나라 갯벌은 매우 초라합니다. 그 드넓던 갯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돈으로만 쳐도, 이른바 ‘경제 논리’로만 따져도, 한국에 있던 갯벌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값어치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갯벌을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메웠을 뿐 아닐, 2000년대로 접어들 적마저 또 어마어마하게 메우려 했고, 메웠습니다.


  요즈음은 인천 영종도를 모두 공항으로 알 테지만, 나한테 인천 영종도는 내 오랜 동무가 살던 섬이요, 언제라도 조개를 한가득 캘 수 있던 너른 갯터였습니다. 갯벌이 몹시 아름다운 영종섬인데다가 소금밭이 대단히 넓게 있던 터전이었는데, 영종섬하고 용유섬 사이 갯벌을 몽땅 메워서 아스팔트를 두껍게 까는 공항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마 한국처럼 바보스러운 나라도 드물지 싶어요. 스스로 바다를 망가뜨리고 갯벌까지 짓밟으면서 공항을 닦으려고 하는 나라는 다른 어디에도 없지 싶어요. ‘인천 앞바다’가 아닌 ‘인천 먼바다’를 더럽히는 짓이 앞으로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뻘짓’이 될는지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어요.



이제는 사라져 버린 마을, 군산시 하제. 새만금사업으로 바다와 갯벌을 잃고, 미군기지가 확대되면서 마을도 사라졌다. (89쪽)


그 많던 조기들이 계화도 간척 이후 사라졌다. 이어서 천수만, 영산강과 금강 일대의 갯벌이 간척되었고, 물길이 막혔다. 조기가 철산바다에서 사라진 것도 그무렵이었다. (188쪽)


홍합은 보통 2∼3년은 자라야 먹을 만큼 자란다. 진주담치는 1년 정도 양식하면 7cm 내외로 자라 시중에 유통된다. 진주담치가 홍합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면서 식탁에서만 아니라 연안의 가까운 갯바위도 점령했다. (158쪽)



  인천에서 나고 자라며 크다가, 전남 고흥으로 삶터를 옮겨서 사는 요즈음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고흥에서 살고 보니, 고흥에는 무시무시한 ‘매립지’가 있습니다. 해창만이라는 곳입니다. 고흥은 해창만이라는 데를 메워서 모두 논으로 바꾸었는데, 해창만으로 드나드는 길목인 고흥 포두면 소재지에는 ‘쌀 수입개방과 수매’와 얽힌 가슴 아린 걸개천이 걸립니다.


  무슨 소리일까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이 나라 중앙정부와 지역정부는 ‘돈으로도 따질 수 없도록 값어치가 대단한 갯벌’을 함부로 짓밟듯이 메우면서 ‘논이나 공장 따위’로 바꾸었는데, ‘논으로 바꾼 갯벌’에서 거두는 쌀은 이제 ‘돈조차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드넓은 매립지 논에는 농약과 비료까지 엄청나게 써야 하지요.


  전남 고흥은 갯벌을 메운 데가 많아도, 아직 이 고장에서 나는 꼬막이 엄청나도록 많아서 전국 곳곳으로 아주 많이 팔립니다. 이름나기로는 ‘벌교 꼬막’이 으뜸일 테지만, 웬만한 ‘고흥 꼬막’은 바깥에 ‘벌교 꼬막’이라는 이름으로 팔립니다. ‘고흥 꼬막’이라는 이름을 쓰면 알아보거나 알아주는 데가 없거든요. 고흥에서 해창만 갯벌을 메우지 않았으면, 교통이 잘 뚫린 오늘날에 고흥 꼬막은 그야말로 그냥 ‘고흥 꼬막’으로 손꼽혔으리라 느낍니다.



한번은 누나와 함께 냇가에서 고마니 풀을 베다 또 일을 저질렀다.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감쌌지만 피가 뚝뚝 떨어져 개울물을 붉게 적셨다. 깜짝 놀란 누나가 냇가에서 하얀 뼈를 주워 돌에 갈아 가루를 뿌려 주었다. 보통 쑥을 찧어 상처에 동여 매는데 이날은 달랐다. (235쪽)


바지락 하나가 하루에 오염된 물 15ℓ를 정화한다고 한다. 바지락이 가득했던 사라진 새만금 갯벌 200㎢는 10만 톤의 물을 처리하는 하수종말처리장 40개와 같았다. (284쪽)



  김준 님이 쓴 《바다맛 기행》에 흐르는 바다맛과 바다내음을 곱씹습니다. 이 도톰한 책에서 흐르는 바다노래에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이 조촐한 책에 깃든 바닷사람 손길이랑 숨결이 얼마나 살가운가 하고 되돌아봅니다.


  들에서 들맛이 들사람을 키웠고, 바다에서 바다맛이 바닷사람을 키웠습니다. 시골에서 시골맛이 시골사람을 키웠고, 숲에서 숲맛이 숲사람을 키웠습니다. 들맛하고 바다맛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하나둘 크면서 모두 도시로 나갑니다. 이제 시골에 남아서 들맛이나 바다맛을 가꾸는 젊은이는 매우 드물고, 시골에서 나고 자라더라도 시골에 뿌리를 박으려는 어린이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다가 시골로 오는 이웃님은 있되, 시골에서 나고 자라면서 그대로 시골사람으로 사는 마을님은 거의 없다고 할 만해요.


  오래도록 손맛과 삶맛과 살림맛으로 물려주는 들맛이나 바다맛은 이제 이음고리가 끊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겨우 이음줄을 간당간당 잇는 곳마저 원자력발전소하고 화력발전소가 떡하니 들어서면서 보금자리와 삶자리를 잃습니다.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가 우람하게 들어선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귀촌하겠다는) 도시사람은 없으리라 느낍니다. 조용하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골일 때에 비로소 도시사람도 시골에 가서 살아야지(귀촌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조용하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골일 때에 들맛도 살고 바다맛도 삽니다. 안 조용하고 안 깨끗하고 안 아름다운 시골에는 들맛도 없고 바다맛도 없어요. 오랜 삶을 물려받는 마을님은 자취를 감추더라도, 새롭게 시골마을을 가꾸려고 하는 이웃님이 시골에 뿌리를 내리려 하는 요즈음, 부디 골골샅샅 어느 시골에서든, 또 어느 바닷마을에서든, 사랑스러운 들맛하고 바다맛이 짙푸르게 흐를 수 있기를 빕니다. 아름다운 삶맛과 살림맛을 아이들이 물려받을 수 있기를 빕니다. 착하고 참된 꿈맛과 이야기맛을 우리 어른들이 슬기롭게 물려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1.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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