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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9
오시미 슈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월
평점 :
만화책 즐겨읽기 555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면
― 악의 꽃 9
오시미 수조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1.25. 4500원
열한째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만화책 《악의 꽃》입니다. 아홉째 권에서는 이 만화책을 이끄는 사내 주인공이 드디어 굳게 마음을 다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제껏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하던 이 아이는 여러 해에 걸친 긴 수렁길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하루 빨리 삶을 끝내고 이 지구별에서 없어지기를 바랐는’지, 아니면 ‘하루 빨리 살아갈 뜻을 찾고 이 지구별에서 웃고 노래하기를 바랐는’지를 스스로 생각하여 마무리짓기로 합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신경 쓰지 마.” “괜찮아. 나도 괜히 폐를 끼쳤다 싶고, 게다가, 그렇게 계속 도망치기만 해선, 지금까지와 다를 게 없으니까.” (20쪽)
“그건 너 혼자 멋대로 그렇게 믿어버린 거잖아? 넌 의존하고 있을 뿐이야. 그 소설을, 너 자신을 위로하는 도구로 삼고 싶은 거잖아? 넌 쭉 의존해 왔어. 책에, 사에키에, 나카무라에, 그리고 넌 이제, 도키와와 그녀의 소설에 의존하고 있어.” “그렇지 않아. 난…….” “뭐가 다르지? 넌 나카무라가 왜 널 밀쳤는지도 모르잖아.” (52∼53쪽)
다짐은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다짐하는 삶이란 어려울까요, 아니면 어려울까요. 스스로 다짐하고 이 다짐처럼 살기는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스스로 꿈을 품으면서 이 꿈을 이룰 길을 걷자고 다짐하는 삶이란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하지만, 난 할 수 없어. 평생을 유령의 세계에서 살 순 없어.” (67쪽)
“아, 아, 따뜻해.” (106쪽)
아이들을 섣불리 학교에 넣지 말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만화책 《악의 꽃》을 보아서 이런 대목을 느낀다기보다, 모든 아이는 저를 낳은 어버이한테서 더 사랑받기를 바란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다섯 살이든 열 살이든 열다섯 살이든 제대로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어른도 그렇잖아요?
어른은 툭하면 연애소설을 읽고 툭하면 연속극을 보며 툭하면 사랑영화를 봅니다. 그런데, 어른으로서 저희가 낳은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는 일은 드뭅니다. 그저 나이에 맞추어 학교에 툭툭 집어넣고는 아이하고 얼굴 볼 틈조차 얼마 안 됩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돈을 벌러 바깥일을 하느라 바쁘다면서 아이랑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눌 틈도 제대로 안 내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고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나요? 그러면 아이들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셔요. 하루 한두 시간이 아니라 하루 스물네 시간을 아이들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이 아이들 마음을 읽으려고 해 보셔요.
“카스가. 산책이라도 갈까? 날씨도 좋고 하니.” “아, 글 안 써도 돼?” “잠깐 휴식.” (128쪽)
“시골이라도 상관없어. 카스가가 자란 곳이라 가 보고 싶은 것뿐이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카스가. 전부터 좀 궁금했던 건데, 무슨 일 있었어? 중학교 때. 뭔가 있었던 거지? 말하고 싶지 않다면 할 수 없고.” (164∼165쪽)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스스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이러한 생각대로 씩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이 아침에 눈을 뜨고 수저를 들면 삶이 무엇인가를 놓고 골머리만 앓기 마련입니다. 죽는 길도 어렵지 않아요. 죽으려면 그냥 죽으면 돼요. 그러나 살아야 할는지 죽어야 할는지 도무지 모르겠으니 이도 저도 하지 못합니다. 살아야 할 뜻도 죽어야 할 뜻도 모르니까, 더군다나 죽은 뒤에 어떻게 되거나 무엇이 되는지는 까맣게 모르니까 이도 저도 아닌 삶이 됩니다.
자, 생각해 보아야지요. 이대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아무것을 하지 않고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대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아무것을 하지 않고 죽으면, 곧바로 이러한 삶대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면 어떻게 하렵니까? 스스로 내 굴레를 내가 깨닫고 내가 제대로 바라보면서 내가 떨치지 않으면, 이 굴레는 스스로 빨리 목숨을 끊어서 죽어버린다 한들, 곧바로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나서 이 굴레를 고스란히 뒤집어쓴다면, 그래도 그냥 쉽게 죽음길로 가렵니까?
“나도 갈래.” “아니, 하지만 널 그 마을에 데려가는 건.” “그래, 이제 겨우 3년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 이 상처가 설령 아문다 해도, 흉터는 사라지지 않을 거야. 어디선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날이 올 거야.” (180∼181쪽)
죽는다고 빚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는다고 괴로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는다고 걱정이나 근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음은 그저 죽음입니다. 죽으려 하면 그저 죽을 뿐입니다.
빚을 없애고 싶으면, 살면서 빚을 없애면 됩니다. 괴로움을 떨치고 싶으면 살면서 이 괴로움에 당차게 맞서면서 씩씩하게 떨치면 됩니다. 걱정도 근심도 잊고 싶다면 살면서 기운차게 꿈을 품고 사랑을 나누면 됩니다.
만화책 《악의 꽃》에 나오는 아이는 이 만화 흐름에서 아홉째 권에 이르러 드디어 스스로 제 삶을 마주하려 합니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아무도 돕지 않으나, 이 주인공 아이 곁에서 이 아이를 지켜보는 따사로운 눈길을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주인공 아이가 ‘살아야겠다’는 뜻을 북돋아 준 따사로운 동무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되면서 비로소 새롭게 한 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새로 내딛는 한 걸음은 두렵거나 무서울 수 있지만, 새롭기 때문에 언제나 기쁨입니다. 새로 내딛는 한 걸음은 가시밭길을 헤치고 지나가야 할 수 있지만, 스스로 새롭기 때문에 언제나 노래하며 웃을 수 있습니다.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