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유교수의 생활 31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67



날마다 새롭게 배우며 즐거운 삶

― 천재 유교수의 생활 31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3.25. 4500원



  사람은 누구나 날마다 바뀐다고 느낍니다. 바뀌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바뀌고, 이틀을 살면 이틀만큼 바뀌지 싶어요. 한 해를 산 아기는 한 해만큼 삶을 지은 셈이고, 다섯 해를 산 아이는 다섯 해만큼 삶을 지은 셈입니다. 그리고, 다섯 살 아이한테도 쉰 살 어른한테도 하루는 늘 새롭습니다. 다섯 살에 맞이하는 가을은 언제나 꼭 한 번이요, 쉰 살에 맞이하는 가을도 언제나 꼭 한 번이에요. 두 번이나 세 번 겪을 수 없는 ‘다섯 살 가을’이고 ‘쉰 살 가을’입니다.



“당신 어쩐지 변했군.” “변하다니?” “전에는 마모루 걱정하느라 온종일 신경이 곤두서서 난리도 아니었잖아. 내가 바쁜 동안에 무슨 일 있었어?” “글쎄,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고 하니까.” (7쪽)


“아, 오랜만에 마모루랑 놀아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나저나 모르는 사이에 마모루도 많이 컸네요.” “그럴까? 변한 것은 오히려 자네가 아닐까 싶네만.” (31∼32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12) 서른한째 권을 가만히 읽습니다. 여덟 살 아이가 내 옆에 달라붙으며 묻습니다. “아버지, 천재 유교수, 나도 봐도 돼?” “글쎄, 네가 이 책에 나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만화라고 해서 다 볼 수 있지 않아. 네가 모르는 말이 많으니까.”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여덟 살 아이가 볼 만할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무 해 넘게 그린 이 작품에는 ‘젊은 유택 교수’나 ‘중년 유택 교수’를 지나서 ‘할아버지 유택 교수’가 나옵니다. 이제 이 만화책에 아이들이 꽤 자주 나옵니다. ‘유택 교수네 네 딸’ 가운데 세 딸이 시집을 가며 낳은 새로운 아이들입니다. 이리하여 나는 이 만화책을 우리 집 여덟 살 아이더러 한번 읽어 보라고 건넵니다.



‘곧 깜깜해지는데, 집은 보이지 않고, 나는 울었다. 언니는 웃고 있었다.’ “괜찮아. 아무리 깜깜해져도 반드시 내일은 오잖니? 울어도 웃어도 내일은 온단다. 돌아갈 수 있어.” (60∼61쪽)


“선생님이 나하고 하나코를 혼냈니?” “아뇨. 다른 사람을, 혼냈어요.” “다른 사람, 이라니?” “음, 그게 아니고 사람 아니구요, 뭔가를 향해, 여러 가지 나쁜 걸 다 혼냈어요.” (89쪽)



  여덟 살 아이가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흐르는 이야기를 모두 알아차리리라 느끼지 않습니다. 여덟 살 나이에는 여덟 살 나이만큼 알아차릴 테지요. 나중에 열두 살쯤 되어 다시 본다면 여덟 살 나이였을 적에는 알아차리지 못한 이야기를 알아차릴 테고요. 스무 살이 되어 다시 본다면 스무 살 나이일 적에 알아차릴 만한 대목을 새롭게 느끼리라 봅니다. 서른 살에는 서른 살만큼, 마흔 살에는 마흔 살만큼 이 만화책 이야기를 받아먹을 만합니다.



“내 강의는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나는 불쾌하지 않다네. 내 강의를 들을 의지가 있나?” (130쪽)


‘남자라서, 여자라서는 아니라고 보지만, 내가 너무 한쪽 면으로만 사람을 보고 있었나? 언제나 강하게 주장하는 이미지였던 오오에 카오루가 불안으로 목소리를 낮추고, 언제나 소리 높여 웃는 줄만 알았던 아오키 모모카가, 내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의 연속이었다.’ (140쪽)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도 나이를 한 살씩 새로 먹으면서 언제나 새롭게 배웁니다. 그리고, 유택 교수뿐 아니지요. 유택 교수 같은 사람을 곁님으로 둔 아주머니도 할머니가 되는 동안 천천히 삶을 새롭게 배웁니다. 유택 교수네 네 딸도 저마다 다르지만 저마다 새롭게 삶을 새롭게 배워요. 유택 교수네 손자와 손녀도 저마다 새로운 삶을 늘 즐겁게 배우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즐거움을 누리는 삶입니다. 너도 나도 새로움을 배웁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새로움을 찾아서 이 삶을 누립니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픕니다. 때로는 고단하고 때로는 신납니다. 때로는 웃음꽃이요 때로는 눈물나무예요.



‘내 근황을 이야기할 사이도 없이, 몇 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말은 오가지만 주제가 어디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대화. 하지만, 그런데도, 공기만은 틀림없이 오가고 있다. 저녁놀 속에서 참새들이 모여 지저귄다.’ (155쪽)


“왜 도와주지 않았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좋은 기록이 남은 것 같군.” “기왕 찍으려면 좀더 근사하게 차려입었을 때 찍지!” “아니, 좋은 기록은 생활감과 긴박감이 넘치는 것이오.” “아무튼 정리하는 거나 도와줘요!” (161쪽)



  아이들은 오늘 하루도 새롭게 깨어나서 새로운 놀이를 찾습니다. 나도 아이들처럼, 또는 아이들과 다르게, 또는 아이들하고 엇비슷하게, 또는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새롭게 하루를 헤아립니다.


  어젯밤에도 늦게 똥을 눈 다섯 살 아이가 오늘은 아침 일찍 다시금 똥을 눕니다. 참 많이 즐겁게 먹었나 보구나. 똥을 눈 다섯 살 아이가 “응가 다 했습니다! 휴지로 닦아 주세요!”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휴지를 두 칸 뜯어서 밑을 닦습니다. 토실토실 복숭아 같은 궁둥이는 더없이 귀엽습니다. 아이들은 복숭아를 늘 엉덩이에 매달면서 심심할 적마다 스스로 뜯어먹을까요? 나도 이 아이들처럼 어릴 적에 심심하면 내 복숭아를 재미나게 뜯어먹었을 테지요. 모처럼 비가 오면서 쌀쌀한 새 하루가 흐릅니다. 4348.10.27.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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