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메자 (사진책도서관 2015.10.23.)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고,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는 여덟 살 큰아이한테는 ‘가방 메기’가 그리 익숙한 일은 아니다. 이제껏 가방을 메고 다닌 일이 매우 드물다. 바깥마실을 멀리 다닐 적에 드문드문 가방을 멨으나, 큰아이는 홀가분하게 달리면서 뛰고 놀려고 할 적마다 가방을 아버지한테 맡겼다. 맨몸으로 폴짝폴짝 뛰면서 달리는 기쁨을 한껏 누리면서 살았다.
문득 생각해 보면, ‘무거운 가방’은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뛰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구나 싶다. 나도 어릴 적에 ‘가방을 벗어야’ 놀았지, 가방을 멘 채 놀지 못했다. 가방을 멘 채 노는 아이들은 ‘놀이와 공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셈이다. 놀고는 싶으나 집이랑 학교에서 받는 짐 때문에 차마 가방을 벗지 못하고 뛰다가 땀으로 흠뻑 젖고, 아무래도 성가시니까 끝내 가방을 휙 집어던진다.
가방이 없어야 논다. 가방을 메면 놀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공부는 아예 안 하고 놀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배울 때는 배우되 홀가분하게 뛰놀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이 나라 아이들을 보면 ‘하루 가운데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 하루 가운데 홀가분하게 놀 틈이 얼마 없다. 게다가 아이들이 놀려고 하더라도 넉넉한 빈터가 없다. 손바닥만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무슨 놀이를 할까?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무슨 놀이를 하나? 흙바닥이 아니라서 돌멩이로 금을 그리면서 온갖 놀이를 할 수도 없는 인조잔디 운동장이다. 인조잔디 운동장에서는 넘어지면 더 크게 다칠 수 있다.
나는 한 가지를 더 헤아려 본다. 아이들은 그저 마냥 놀아도 된다. 아이들하고 함께 살면서 지켜보니, 이 아이들은 열 살 나이까지 실컷 놀아도 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열 살 나이가 될 때에는 스무 살 나이까지 실컷 놀아도 된다고 느낄 수 있고, 이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면 서른 살이나 마흔 살까지 마음껏 놀아도 된다고 느낄 만하리라 본다.
어떻게 놀기만 하면서 사느냐고 물을 분이 있다면, 아이들은 차츰 철이 들면서 ‘놀이와 일과 배움’을 스스로 알맞게 갈무리하는 슬기와 기운이 늘어난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스스로 놀고 스스로 일하며 스스로 배운다. 굳이 옆에서 억지로 ‘나이에 맞추어 밀어붙여야’ 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는 다 다르기 때문에 다 다른 나이에 다 다르면서 저마다 씩씩하게 제 일이랑 놀이랑 배움을 찾고 누린다. 어버이는 아이가 바라거나 물을 적에 곧바로 한손을 내밀어서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배울 수 있도록 기다리거나 지켜보면 된다.
요새는 도서관에 오갈 적에 큰아이더러 가방을 메라고 이른다. 다만, 억지로 시키지는 않고 틈틈이 말을 한다. 큰아이가 깜빡 잊고 가방을 안 메면? 그러면 나는 큰아이 책이나 장난감을 하나도 안 들어 준다. 도서관에 ‘책을 보러’ 가고, 또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져와서 보고픈 책이 있다’면, 또 ‘집에 있는 책을 도서관으로 갖다 놓고 싶다’면, 이제 여덟 살 큰아이는 스스로 가방을 메고 챙길 줄 알아야 한다고 느낀다. 다만, 애써 시키지는 않고 곧잘 이야기를 들려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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