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지키기’와 ‘사람 지키기’



  공원이라고 하는 곳마다 ‘잔디 밟지 마시오’ 같은 푯말이 선다. 잔디를 밟으라고 하는 공원은 한국에서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운동선수가 되어 운동장을 뛰거나 달릴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잔디를 밟거나 뒹굴어 볼 수 있다. 그런데, 축구장이나 야구장에는 왜 잔디를 깔까? 잔디를 깔아야 미끄러지거나 넘어질 적에 덜 다치거나 안 다치기 때문이다. 잔디를 깔아야 운동장에서 뛰거나 달릴 적에 땅이 덜 패이거나 안 패이기 때문이다.


  공원은 어떤 구실을 하는 곳일까. 사람들이 쉬도록 마련하는 곳이다. 그러면 공원 잔디밭은 어떤 구실을 해야 할까.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자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시골이라면 어디에서나 풀밭을 밟을 만하니까 굳이 공원이 없어도 되지만, 도시에서 애써 큰돈을 들여 공원을 짓고 잔디밭을 두는 까닭은 ‘흙과 풀을 밟을 땅’이 없기 때문이다.


  공원이라는 데는 모름지기 ‘사람 지키기’에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잔디 지키기’는 애써 안 해도 된다. 잔디가 얼마나 대단한 풀인데, 사람들이 밟는대서 사라지겠나? 사람들이 엄청나게 드나들어서 엄청나게 밟아댄다면? 그러면 공원지기가 잔디를 새로 심거나 더 심으면 되지. 잔디 말고 다른 들풀도 마음껏 돋도록 보살피면 되지.


  공원지기가 할 몫은 ‘사람들이 잔디를 못 밟도록 하는 일’이 아니다. 공원지기가 할 몫은 바로 ‘사람들이 언제나 즐겁게 잔디나 들풀을 밟으면서 쉬고 웃고 노래하면서 어우러지는 공원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 4348.10.17.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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