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에서 네 시간 동안 글쓰기
서울에서 하룻밤 볼일을 보고 고흥으로 돌아왔다. 시골에서는 까마득하게 먼 서울 같은 곳을 하룻밤만 묵고 다녀오기란 아주 안 만만한 일이지만, 서울 같은 도시는 그리 길게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씩씩한 시골사람으로 차츰 여물기에, 고흥에서 서울을 오가는 시외버스 아홉 시간 남짓을 참말 씩씩하게 이긴다.
어제 고흥으로 돌아오는 버스길에는 옆에 어린이 둘이 앉았다. 서울 사는 아이들인데, 가시할아버지(또는 버시할아버지)네에 나들이를 가는 길이다. 나는 아이들 옆에 앉아서 고흥으로 돌아가며 삼십 분 즈음은 살짝 눈을 붙이거나 《찰리와 초콜릿 공장》 영문판을 읽었다. 나머지 네 시간은 글을 썼다. 공책에도 쓰고, 판을 뒤에 댄 종이꾸러미에도 썼다. 앞으로 새로 쓸 책을 어떻게 엮을까 하는 이야기를 한참 썼는데. 옆에 앉은 아이가 때때로 ‘내가 하는 일’을 쳐다보았다.
우리 집 큰아이보다 한 살 어리거나 또래로 보이는 아이였는데, 이 아이 눈에는 ‘시외버스에서 연필을 손에 쥐고 글을 쓰는 아저씨’는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한창 글쓰기에 빠져들어 머리를 굴릴 적에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지만, 글쓰기를 쉬고 살짝 눈을 붙이면서 머리를 쉴 적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골집 우리 아이들한테 ‘우리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하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다.
나는 아이들한테 ‘글을 쓰는 삶’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몸짓을 물려줄 생각일까? 아니면, 우리 아이들은 새로운 사랑이 흐르는 삶을 아이들 스스로 찾아서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내가 이 아이들만 하던 일고여덟 살 나이를 더듬으니, 그무렵 둘레에서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모습.” 같은 노래를 그야말로 지겹도록 틀어 주면서 춤을 추게 시켰다. 나는 이 짓이 아주 싫었다. 이 노래도 끔찍하게 싫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따위는 저리 가라 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모습”은 틀림없이 맞다고 느낀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춤추고 노래하면서 웃는 삶일 때에 그야말로 예쁘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우리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든 늘 춤추고 노래하고 웃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구나 하고 느낀다. 나 스스로도 이런 사람으로 살겠노라 하고 늘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도 춤추고 노래하고 웃는 사람이요, 흙을 만지면서도 춤추고 노래하고 웃는 사람이면서,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거나 걸레질을 할 적에도 늘 춤추고 노래하고 웃는 사람인 어버이로 살자고 늘 생각한다. 4348.10.17.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글쓰기/삶글)